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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재윤 May 24. 2022

왜 나만 빼고 다 행복한 걸까

세상을 오해하지 않으려면

  “왜 내 친구는 나보다 친구가 많아 보일까?”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는가. 이 사실이 옳다는 것을 수학으로 증명할 수 있다. 다음 그림은 A, B, C, D의 친구 관계를 점과 선으로 나타낸 그래프다. 문자 옆의 빨간 숫자는 꼭짓점에 연결된 변의 숫자로 친구 수다. A는 친구가 3명 B는 2명 C는 3명 D는 2명이다.

  B를 ‘나’라고 가정하자. 내 친구 수는 2명이다. 그렇다면 내 친구의 친구 수는 어떻게 될까? 나의 친구인 C와 A 친구 수는 모두 3명이다. 2<3이므로 내 친구 수보다 내 친구의 친구 수가 1명 더 많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다. 애초에 내가 B가 아니라 A였다면 어떨까? 모든 경우에 내 친구의 친구 수가 많다고 할 수 있을까?


  X를 임의로 뽑은 나의 친구 수로 두자. ‘나’는 A, B, C, D 모두가 될 수 있으며 확률은 1/4로 같다. X값은 3, 2, 3, 2 모두 될 수 있다. X를 대표하는 값인 기댓값(평균)을 구하면 5/2다.


 Y를 임의로 뽑은 나의 친구들의 친구 수로 두자. 여기서도 A, B, C, D 모두 내가 될 수 있으므로 모든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 내가 A라고 가정하면 나의 친구들은 B, C, D다. B의 친구는 2명, C의 친구는 3명, D의 친구는 2명이므로 나의 친구들의 친구 수는 평균적으로 (2+3+2)/3 = 7/3 명이다. 나를 C로 해도 이와 같다.

 내가 B라고 가정하면 나의 친구들은 A와 C다. A의 친구는 3명, C의 친구도 3명이다. 따라서 나의 친구들의 친구 수는 평균적으로 (3+3)/2=3이다. 나를 D로 해도 이와 같다.     

  임의로 뽑은 나의 친구들의 친구 수를 괄호 숫자로 표시했다. A의 친구들의 친구 수는 7/3, B는 3. C는 7/3, D는 3이다.

Y값은 7/3, 3, 7/3, 3 모두 될 수 있으므로 Y를 대표하는 값인 기댓값(평균)을 구하면 8/3이다.


  X(임의로 뽑은 나의 친구 수)의 기댓값은 5/2 Y(임의로 뽑은 나의 친구들의 친구 수)의 기댓값은 8/3이다. 각각 통분해서 비교하면 Y의 기댓값이 X의 기댓값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내 친구보다 친구들의 친구가 더 많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표본의 편향(bias) 때문이다. 편향을 살펴보기 이전에 만약 우리가 사는 세계가 아래 그림과 같은 완전 연결 그래프(fully connected graph)라면 어떨까. 온 세상 사람들 모두가 서로를 알고 있다. 마치 유토피아와 같다.

*표본 : 통계조사를 위해 추출된 조사 대상을 표본이라 한다.
완전 연결 그래프 (출처 : 위키백과)

 이런 경우면 모든 사람의 친구 수는 같으니 편향이 발생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는 다음 그림처럼 모두 친구 수가 다르다. 이 그림을 소셜 네트워크 그래프(social network graph)라고 말한다.

일반적인 소셜 네트워크 그래프는 친구 수가 많은 빨간색 점보다 친구 수가 적은 파란색 점이 훨씬 많다. 임의로 뽑은 내 친구 수의 기댓값을 구해보자. 적은 친구 수를 가진 파란색이 많으므로 내 친구 수의 기댓값은 작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임의로 뽑은 나의 친구들의 모임에서 뽑은 친구는 친구 수가 많은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편향이 생긴다.

 편향이 발생하는 이유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다음 과정을 따라 해보자. 만약 내가 초록색 점이라면 나의 친구 수는 3명이다. 이때 각각 3명의 친구 수는 3명, 4명, 16명이다. 대부분 어떤 점을 택하든 친구 수가 많은 친구를 포함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내 친구 수의 기댓값보다 내 친구들의 친구 수의 기댓값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를 친구 관계의 역설(Friendship paradox)이라 말한다.


우린 편향으로 인해 세상을 오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오류란 내 생각과 같은 정보만 찾고 이와 다른 정보는 배척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인지적 편향을 말한다. 즉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말만 본다는 말이다. 가짜 뉴스가 그 예시다. 코로나 19로 인한 불안 때문에 가짜 뉴스가 세계에 퍼졌다. 실제로 독한 술을 먹으면 바이러스가 죽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이란에서 일어났다. 이란 국민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술을 판매하거나 마실 수 없었기에 소독용 알코올을 물에 희석해 마셨다. 그 결과 522명이 죽었고 95명은 실명했다. 심지어 공업용 메탄올을 소독용 알코올로 속여 팔아 이득을 취한 사례도 있었다. 정보를 편향적으로 수용한 탓이다. 사람들이 SNS를 보며 “왜 나만 빼고 다 행복한 걸까?”라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SNS에 특별한 순간과 행복한 일상만을 올리니까.




  《팩트 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슬링의 말처럼 세상을 오해하지 않으려면 편향된 사실보다 정확한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린 세상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의심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정보만 믿고 편향된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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