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론(Game Theory)이란 2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전략을 선택하여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보상을 최대로 만드는 활동을 말한다. 천재적인 수학자 폰 노이만과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 존 내쉬 교수에 의해 만들어진 응용수학의 한 분야다. 게임이론은 경영학, 외교학, 경제학, 정치학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예시인 죄수의 딜레마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그는 상금을 지급하는 물주와 게임에 참여하는 두 명의 플레이어를 예로 들며 죄수의 딜레마를 설명했다.
물주는 플레이어에게 판정을 내려 돈을 지불한다. 두 플레이어의 손에는 협력과 배신이라고 표시된 두 장의 카드가 있다. 두 명의 플레이어는 카드 한 장을 뽑아 동시에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모두 협력의 카드를 내면 물주는 양쪽에 300만 원을 지급한다. 이 큰 금액은 상호협력의 포상이다. 모두 배신의 카드를 내면 물주는 배신의 벌로 양쪽에 벌금 10만 원을 징수한다. 이것은 상호 배신의 벌이다. 만약 둘 중 한 사람만 배신 카드를 냈다고 가정하자. 물주는 배신 카드를 낸 사람에게 500만 원을 지급한다. 물주는 협력 카드를 낸 사람에게 벌금 100만 원을 징수한다.
<표> 죄수의 딜레마에서 나올 수 있는 전략
게임을 한 번만 진행했을 때 서로 win-win 할 수 있는 전략은 모두 협력하여 300만 원을 얻는 일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협력은 상대의 배신으로부터 100만 원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플레이어는 협력보다 배신했을 경우만 생각한다. “만약 내가 배신한다면 거액의 500만 원을 얻거나 푼돈 10만 원을 잃는 정도야. 그럼 배신이 최선이겠구나!” 두 플레이어는 서로 배신해야 하는 결론에 이른다. 이 결론을 최선의 대응 전략, 내쉬 균형이라 말한다. 내쉬 균형은 플레이어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략을 바꿀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다음 그림처럼 죄수의 딜레마에서 최적의 전략과 내쉬 균형은 서로 다르다.
내쉬 균형은 보상 혹은 벌금의 액수를 바꾸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다음 그림처럼 한 사람만 배신했을 때 이득이 겨우 10만 원이며 모두 배신했을 때 벌금이 무려 300만 원인 “배재윤 게임”을 만들었다고 하자.
이 게임은 배신해도 협력보다 큰 이득을 취할 수 없다. 오히려 100만 원 혹은 300만 원을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최적의 전략과 내쉬 균형은 다음 그림처럼 일치한다. 배신은 없고 협력만이 존재하는 세상. 마치 유토피아와 같지만, 과연 우리 삶은 그럴까? 협력과 배신의 선택을 고민해야만 하는 죄수의 딜레마와 같을 테다.
만약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상황이 여러 번 진행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최선일까. 지속적인 협력을 해야 할까. 상대가 협력할 때 매번 배신하며 이득을 취해야 할까. 어쩌면 배신과 협력을 적재적소에 적절히 사용하는 교묘한 전략이 최선인 것처럼 보인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액설로드 교수 역시 어느 것이 최선의 전략인지 궁금했다. “그는 게임이론 전문가들에게 최선의 전략을 제안하는 시합 대회를 열었다. 여기서 전략은 미리 프로그램된 행동 규칙이다. 응모자들은 전략 아이디어를 컴퓨터 언어로 보냈다. 액설로드는 보다 나은 비교를 위해 협력과 배신을 아무렇게나 내는 랜덤이란 전략을 추가했다. 만일 어떤 전략이 랜덤보다 득이 되지 않으면 나쁜 전략임이 분명하다. 어떤 전략이 과연 게임에서 승리했을까.
승리를 거둔 전략은 놀랍게도 가장 단순하고 가장 덜 교묘해 보이는 전략이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 전략을 ‘이에는 이, 눈에는 눈(Tit for Tat)’ 줄여서 TFT 전략이라 불렀다.
TFT는 관대한 전략이라고 불리는데 최초의 승부를 협력으로 시작하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협력을 취한다. 하지만 상대가 배신해도 계속 협력만 내는 바보 같은 전략은 아니다. 상대가 배신하면 다음 차례엔 배신을 선택하지만, 절대 배신으로 보복하지 않는다. 이후엔 상대가 배신하기 전까지 무조건 협력한다. 즉 TFT는 먼저 배신하지 않으면 무조건 협력하는 전략이다.
TFT는 우리에게 배신이란 딜레마를 극복할 힘을 준다. 단순해 보여도 삶에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이다.
아프리카 부족을 연구하는 어느 인류학자가 한 가지 실험을 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간식이 담긴 바구니를 나뭇가지에 건 뒤 아이들에게 말했다. “바구니가 걸린 나무에 가장 먼저 뛰어간 아이는 바구니에 담긴 간식을 모두 주도록 하겠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어떻게 했을까?
달리기 경주가 시작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은 누구 하나 앞다투어 가지 않았다. 모두 함께 손잡고 바구니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간식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인류학자는 한 아이에게 물었다. “왜 함께 손잡고 달렸니?”, “한 사람만 행복하면 나머지 다른 아이들이 슬픈데 어떻게 기분 좋을 수 있겠어요?” 나머지 아이들은 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우분투!” 우분투는 아프리카 말로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의미다. 아이들은 교묘한 배신보다 지속적인 협력이 더 낫다는 수학적 결과를 삶으로 증명했다.
이미지 출처 : http://m.blog.daum.net/lsak21/6101445
삶이란 경주 속에서 먼저 배신하지 않기를. 아이들처럼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함께 달려가길 소망한다. 혼자 보다 함께함이 기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