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 속의 억압
각자의 다양성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라는 명제로 정 없음, 예의 없음을 퉁치려고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서운하고 마음이 다쳐서 속마음을 전하면 '그건 니 기준이고.'라고 자주 말했던 이가 있다.
그도 때때로 상대에게 바라는 자기 기준이 확고하고 '적어도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냐?'라는 말을 하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에게 묻고 싶었다.
식당에 가서 수저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밥상을 받아도 '식당도 다양한 형태가 있는 거니까.'라고 할 거냐고. 너무 극단적인 예시라면 바꿔 묻고 싶다.
만나고 있는 사람이 다정한 눈 맞춤도 없고 이야기하고 있을 때 자주 자리를 비워도
'다정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라고 할 거냐고.
다양성도 내가 인격적으로 대해지고 있으며 온정을 받고 있다고 느껴질 때 존중해 줄 마음이 생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당연한 건 없지만 세월과 관계의 정도에 따라 '마땅히 받음직한 온정'이 있다.
그것 조차 받지 못해 서운해하는 사람에게 '그건 니 기준이고.'라는 말은 상당히 억압적이다.
받을 만한 마음을 받지 못해 텅 빈 마음인데 아량 없는 사람이 되어 죄책감까지 덤으로 얻게 한다.
말을 하지 않은 상태는 공허하고 말을 하면 바라는 것 많은 피곤한 사람이 될 뿐인 관계.
어떤 발전을 할 수 있을까.
무례함을 다양성으로 생각해주는 그들끼리 지내면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