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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bob 심지아 Jul 24. 2019

30년 발효 3년 구운 빵, "디저트노트"

드디어 오븐에서 나왔다. 






영어 표현중 흔히 쓰이는 말

'a bun in the oven' 이라고 하면 

자궁속의 아기가 자라고 있다는 뜻이다.


난 이번에 출산 아니, 출간으로

삼년이나 오븐안에 굽고 있던 아기를 세상에 내어놓았다.

아기의 이름은 "디저트 노트"


물론 글 그림 내가 다 했으면 좋았겠지만

베이킹은 먹는것만 전문가이기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글쓴이는 미녀 유민주 파티시에로

<글래머러스 펭귄> 이라는 위트있는 타이틀을 가진 

한남동 베이커리 카페의 미녀 오너셰프이다.

(미녀라는 말을 자꾸만 붙이는 이유는 너무 미녀라서.) 


지금은 언니 동생 하며 각별해진 그녀와 나의 인연은 

삼년전 전화 한통으로 시작되었다.

어느날 친한 언니가 전화를 해서는 물었다.

'유민주라고 알아? 글래머러스 펭귄의. 마리텔에도 나오고 유명한데?'

일년에 한번가량 한국에 들어왔다 나갔다하지만

아는 장소만 겨우 찾아다니고

티비도 잘 보지 않는 나는 부끄럽지만 모른다고 고백했고

곧바로 그녀를 전화로 만날 수 있었다.


너무나 유쾌하고 밝은 목소리로 

"저기 작가님 그림이 너무 예뻐서요" 라고 말을 건넨 그녀는

우리 둘이 정말 예쁜책 한번 만들어보지 않겠냐? 라고 말을 했다.

예쁜, 책. 

이 세 글자는 내게서

계약조건 상황 기간등등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인 예쓰를 이끌어내었고

이후 삼년간 우리는 한 배를 타고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Life of Pi 급 항해를 떠나게 된다.


책. 

저자.

왜 그렇게 그 말들은 나를 들뜨게 하는가?

멋진 곳에서 전시를 한적도 있고

작가님이라는 과분한 호칭을 매일 듣는데도

넘치고 넘치는 인쇄물 홍수의 세상

점점 더 불황인 출판 시장에

내 이름 석자 박힌 책 한권,

Published Author - 책을 출간한 저자.

그 한줄의 타이틀이 그리도 가지고 싶었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아직 온기가 다 식지도 않은

책을 박스에서 꺼냈을때의 느낌은

평생 잊을수가 없을듯 하다.






바시락 하고

갓 구운 크로아상의 껍질 만지듯

크리스피한 커버에

먹박을 입혀 까맣게 도드라진 제목. 

<디저트 노트>

지은이 유민주 그림 심지아.



내가 그린 그림들이 표지부터 표지까지

단 한페이지도 빠지지 않고 나온 이 책을

지난 삼년을

한 손에 몰아 쥐고 후루룩 넘기는 그 기분.

몇십번도 더 본 내 그림들을

다 다시 보며

이쁘다.. 이쁘게 나왔네, 반복하며 말하고

넘기어 보고 넘기어 보고

다시 처음부터 다 다시 넘기어 보고

오지에서 살아돌아온 조카라도 보는 듯

그만 보려고 하는데 자꾸만 눈이 가고

여기 저기 털어주고 쓰다듬어주게 된다.


그간 거쳐온 유명 브랜드들과의 협업이나 

큰 계약금이 걸린 굵직한 프로젝트들보다도

특별히 몇배로 이 책에 대해 감격을 하는 이유는

나의 여러 꿈들이 이 한권의 책으로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만 보면 잘 믿을 수 없지만

어린시절의 나는 매우 내성적이었다.


새로운 환경이나 모르는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어떻게 말을 걸지도 아니 어떻게

서있을지조차 몰랐다.

늘 사람들에게 섞이는것이 불편하고

어색했던 나에게 

책은 최고의 놀이터이자 친구였다.

그 안에 있는 인물들은 대답도 잘 해주고

친절했다. 불편한 질문을 하는 사람도

놀려대는 사람도 없었다. 

난 책 안에서 웃고 울고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들을

설명받거나 이해하곤 했다.


유난히 부끄러움이 많고

유난히 섞여들지 못했던 유년기를

책의 도움으로 무난히 지나보냈다.

책은 내 첫 친구이자

첫사랑이자 첫 꿈이었다.


그림은 언제 만났다고 딱히 말할 수 없으나

아파트 단지내에 있던 동네 미술학원에

다녔던 것이 첫 기억이다.

유치원생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쩜 초등학교는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 기억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그림을 내게서 따로 떼어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림을 전혀 그리지 않았던 몇년동안조차도.


몇년간 돌고 돌아 다른 직업들을 거쳐

그림 그리는 직업을 다시 가지게 되었을때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림을 이렇게 나중에야

다시 만지게 된 것은

그림은 결국 마지막으로 갈 곳이었고

변덕심한 내가 정착할 곳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을.




그림을 다시 그리겠다고 마음 먹었을때도

가장 처음 생각한 것은 그림책이었다.


왜 책이었을까?


커다란 화폭에 속시원히 색들을 던져내어

전시로 보여주고 싶었을수도 있고,


지금 많이 하는 광고나 브랜딩 관련일을

하고 싶어했을수도 있고,


직업으로 현실가능화 시키기에 비교적 대중적인

그래픽쪽을 해보려 했을수도 있었을텐데


왜 책이었을까.


요즘은 책을 사지 않는 시대라고 한다.

나 역시 무거운걸 싫어하는 편이라

오디오북도 많이 듣고 e-book 도 다운받곤 한다.


그럼에도 서점엘 가면 서너권은 꼭 사서 들고 나온다.

결국은 읽지 못하고 그냥 두게 되는 경우도 많고

이사를 많이 다니는 유학생활을 거치면서

매번 가장 무겁고 큰 짐보따리는 책보따리가 되어

늘 후회를 하면서도 책 사랑은 멈출수가 없다.


기기로 접하는 편리함이나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수 있는 정보성같은

합리적인 이유들을

들이대봤자

나는 그냥 책이 좋을뿐이다.

파삭 

팔락

책이 가지고 있는 소리가 좋고, 

종이의 온도가 참 좋다.

책에 묻은 잉크가 다 마른 후

종이와 적당하게 섞여진 냄새도 좋다.

페이지를 휘리릭 넘길때

얼굴에 잠시 부는

책바람도 좋다.

책을 손에 들었을때

팔이 기우는 각도도 좋고

가방에 넣었을때

쳐지는 무게감과 모양조차 완벽하다.

책이란 그냥 그렇게

흉을 잡을데가 없이 좋다.


정말 단지 그래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온길을 다시 가기도 하고

다녀온 길을 또 다녀오고

오고 가고 돌고 돌아

한권의 책을 그려냈다.


좋아해서.

꿈이었어서.


나이 마흔에 이렇게 순수하게

꿈을 꿀 수 있었고

그것을 이루어내서

소리없이 날뛰고 있는 나를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책 한권 엮어내는 꿈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꿈이다.


꿈같은 무드로 이루어진 우리 책.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빵 굽는 냄새로 가득찬

디저트 노트.


첫 꿈,

평생의 꿈.


그것도 

독자가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폴폴 피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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