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도예 선생님이 부탁을 하셨다.
“학생 한 명이 오전에 일이 생겨서 오후에 수업을 하고 싶어 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만 같이 수업을 해도 될까요?”
나는 사람 만나기를 싫어한다. 공방에 다닐까 고민할 때도 가장 큰 걸림돌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대여섯 명이 같이 수업을 한다면 도자기가 아니라 말속에 섞여 스트레스만 커질 것 같았다.
상담받을 때 걱정스럽게 물으니 1대 1 수업이라고 하셨다. 괜한 걱정으로 시간만 지체한 것이었다.
그런데 2대 1 수업이라고요?
하지만 내 반응은 나도 예상 밖이었다.
“괜찮아요.”
선생님은 미안해하셨지만 난 속으로 잘됐다 싶었다. 물레를 돌릴 때는 사람들과 말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시선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었다. 배움에도 사춘기가 있는지 좀 ‘마음대로’ 흙을 만지고 싶었다. 두 사람을 가르치다 보면 선생님 관심이 2분의 1로 줄어들 테니 '내 마음대로' 흙을 만져야지, 속살거렸다.
두 시가 되자 여학생 한 명이 들어왔다. 곱고 밝다. 통성명을 나누다 보니 둘째 딸보다 두 살이 어리다.
“^^씨 안뇽!”
“소려 언니, 잘 부탁드려요.”
언니라고? 하하하!
딸보다 어린 친구
내 친구는 눈이 맑다
젖살 통통한 볼
언니하고
배시시
웃으면
저 먼 내가 태어난 날
하얀 배냇짓
속살이 간지러워
나도 웃었다
배시시
- 소려의 못된 시 '딸보다 어린 친구'
수업 분위기는 선생님과 단둘이 있을 때처럼 편했다.
친구와 나는 일주일에 두 번 모두 같이 수업을 하기로 의기투합했다.
친구는 수업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어가고, 나는 두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내가 딱 살아온 시간의 배율만큼 수업도 앞서가고 있었다. 그래 봐야 한 달이지만 원래 키는 도토리들이 재는 거니까.
내가 가르쳐 줄 것은 없었지만 선생님이 자리를 잠깐 비운 사이 ‘무슨 일이 생기면’ 친구는 나를 찾았다.
“소려 언니 이거 어떡해요? 아무리 해도 중심이 안 잡혀요.”
같이 해결해보려고 애쓰지만 내 키는 그리 크지 않다. 두 손으로 바둥거리지만 닿지 않았다.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손보다 입이 빨랐다. 한 마디씩은 가르치려고 들었다. 그런 나를 볼 때면 입을 닫기 위해 머리를 열어야 했다.
“언니는 다른 나라 어디 가보셨어요?”
해외여행이 다시 편해지는 분위기를 이야기하다가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이것저것 떠올리다 보니 간 나라가 많았다. 추억을 따라가다 말이 길어졌고 아차, 머리 열 생각을 못했다.
‘라떼는 말이야’를 시작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친구가 원하지도 않는 ‘라떼’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부끄러웠다. 내가 친구보다 두 배 넘게 살았으니 경험도 두 배 넘게 했을 것이고 가 본 나라도 두 배가 넘을 것이다.
도자기를 배운 시간도 두 배, 그만큼 쌓인 도자기도 두 배.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가르쳐 줄 것도 없고 잔소리할 것도 없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잊어버렸다니….
그 친구는 친구다. 직장 후배도 아니고 딸도 아니다. 딸보다 어리다고 내 이야기를 강요해서는 안된다.
나는 친구 이야기를 들어주면 된다. 친구로서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그 당연한 사실을 새로이 머리에 각인시켰다.
그리고 친구와의 즐거운 수업 시간.
살아온 시간이 길다고 말이 길어질 때면 빨간 불을 깜박인다.
“자랑 아니거든!”
“그 입 다물라~.”
* 사진은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에 있는 보성여관 정원을 찍은 것입니다.
등록문화재 제132호로 조정래 님의 작업실도 재현되어 있는데요, 소설 태백산맥의 한 장면에 들어가 앉은 듯 고즈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