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고블렛 잔이 좋다. 고블렛 이름도 좋다. 고블렛 고블렛, 운율감도 있고 개구리나 맹꽁이 먼 친척쯤 되는 새로운 파충류를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 골룸 골룸 하던 영화 '반지의 제왕' 속 괴물도 생각나고 영국의 민화에 나오는 난쟁이 고블린도 떠오른다. 고블렛! 왠지 웃음 짓게 만드는 단어다.
고블렛 잔은 생긴 것도 좋다. 주먹을 움켜쥐듯 잡아야 하는 머그잔과는 달리 검지와 중지 사이에 잔의 가는 목을 끼우면 된다. 그러면 손은 자연스럽게 오므라들면서 잔을 감싸 쥐게 된다. 잔 속의 음료와는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도 음료의 온도를 가늠할 수 있다. 조용히 내려와 얼굴에 닿는 포근한 눈송이 같다.
"어떤 그릇들을 빚고 싶으세요?"
첫 수업 때 공방 선생님이 물으셨다.
“뚜껑 있는 그릇이나 고블렛 잔을 만들고 싶어요."
"뚜껑 있는 그릇은 많이 어려워요."
그릇을 만들고 거기에 맞는 뚜껑을 만드는 것은 중급 이상의 수준은 돼야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고블렛 잔은 기초적인 과정만 익숙해지면 가능해요."
나는 흙의 *중심 잡기와 *성형, *정형 수업을 마치자마자 고블렛 잔 만들기에 들어갔다. 초보 딱지를 제대로 벗지 못한 상태에서 만든 고블렛 잔들은 시중에서 파는 것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지만 상관없었다. 내 고블렛들이었다. 물레 위에서 고블렛 고블렛 하면서 수를 늘려 갔다.
고블렛 잔은 목이 길어야 하니 흙을 많이 떼야한다. 성형해서 컵 모양을 빚는 것보다 더 많은 흙을 굽부분으로 떼어내야 한다. 숙련된 사람들은 목 부분을 깔끔하게 정리한 후 떼어내지만 난 왕초보. 목부분을 조절하다가 컵이 주저앉아 버렸다.
“아래 흙에 힘이 없어서 그래요. 일단 두껍게 떼어내신 후 정형할 때 다듬어내세요.”
아직 고블렛 잔 만들 수준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달려드는 욕심을 선생님이 이해해주셨다.
난 흙 잡아먹는 귀신이 되어 고블렛을 성형했다. 기물들은 위 컵 부분보다 더 긴 흙덩이를 달고 내 앞에 줄을 섰다. 내 눈에 그 모습은 늪지대나 동굴 속에서 저벅대고 나오는 골룸이나 고블린 같았다.
목을 다듬기 위해 줄을 선 예비 고블렛들
그런 녀석들이 반건조를 거쳐서 정형을 하고 나면 왕자님, 공주님이 된다. 가는 목을 꼿꼿이 세우고 테이블 위에 앉아 있다, 아니 서 있다.
고블렛 잔 정형은 일반 컵 굽을 깎는 것보다 시간이 세 배 이상 걸린다. 컵 받침대를 깎기 위해서는 목을 거꾸로 꺾다시피 해야 한다. 잔 하나를 깎고 나면 꺾어진 세상을 되돌리기 위해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 근육의 고른 운동을 위해 목을 반대편으로 꺾어 이 세상 수평의 중요성을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