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4장 1958년 모스크바
한국 전쟁이 터졌다. 선호의 부모는 선호를 집 지하에 숨겼다. 갓 스물이 된 선호는 남쪽, 북쪽 모두가 탐내는 징병 대상이었다. 선호를 지키기 위해 피난을 가지 못한 선호의 부모는 남쪽, 북쪽을 번갈아 가며 부역을 해야 했다. 손에 물집이 생기고 터지기를 반복하면서도, 배급받은 식량이 모자라 자신들의 배가 골아도 선호의 부모는 웃을 수 있었다. 아들이 살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행복했다. 가져다준 주먹밥을 허겁지겁 먹는 선호를 보며 선호의 부모는 매번 다짐을 시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소리가 들려도 여기서 나오면 안 된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였다. 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의자 쓰러지는 소리, 물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호는 망설였다. 위로 향하는 문손잡이를 잡을 때마다 아버지, 어머니의 말이 선호의 손을 붙잡았다.
“절대로 여기서 나오지 마라.”
그러나 단말마 같은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들리자 선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뛰어 올라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피를 흘리며 누워 있었다. 선호가 달려가 안아 보았지만 두 사람 모두 숨을 거둔 뒤였다.
피난민 2명이 집안을 뒤지고 있었다.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놀라 선호에게 달려들었다. 선호는 아버지 옆에 놓여 있던 부엌칼을 들어 여자를 찔렀다. 남자가 아내 이름을 부르며 선호에게 달려들었다. 칼을 놓친 선호와 남자의 육탄전이 벌어졌다. 남자가 선호의 목을 졸랐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선호의 목을 조르는 남자의 눈이 오히려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선호는 삶의 이유를 잃은 남자의 텅 빈 눈동자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살아라.”
아버지가 말하는 것 같았다.
“살아라.”
어머니가 선호의 손을 잡으며 다짐시키는 것 같았다.
탕, 총소리가 들렸다. ‘선호야!’ 누군가 선호를 불렀다.
“지나가던 북한 군인들이 집으로 들어왔던 거야.”
선호의 눈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몇 백 번, 몇 천 번 넘게 그 순간, 그 시간으로 돌아가 부모를 살리려 애썼지만 같은 결과를 마주친 것 같았다. 죄책감과 증오만이 가득 찬 눈동자. 선희는 그런 선호가 낯설고 무섭게 느껴졌다.
북한군에게 끌려간 선호는 두 손에 묻은 피를 보며 떨고 있었다. 누군가가 선호의 어깨를 짚으며 선호 옆에 앉았다. 대학교 선배 진우였다. 진우는 일본 학도병 징집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독립 후에 복학한 선배였다. 진우는 6.25 전쟁이 나기 몇 달 전에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북한군 장교가 되어 선호 앞에 나타났다.
“선배.”
그제야 선호는 진우를 알아봤다. 선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밧줄 하나를 붙잡은 것 같았다. 진우는 말없이 선호의 손을 닦아주었다.
선호의 글 솜씨를 알고 있던 진우는 선호를 당 선전위원회에 추천했다. 선호의 글은 날카롭게, 때로는 따뜻하게 사람들 마음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선호의 귓가에는 어머니의 비명소리와 아버지의 당부가 뒤엉켜서 떠나지 않았다. 피난민 부부의 텅 빈 눈동자와 아버지 어머니의 피 흘리던 주검이 선호의 눈앞에서 맴돌았다.
휴전 후, 선호는 김일성 종합대학에 들어갔다. 전쟁 후의 피해의식과 빠른 재건에 대한 망상으로 사람들은 들떠 있었다. 불안과 흥분에 싸인 사람들은 자신을 이끌어줄 영웅을 원했다. 자신의 아픔을 토닥여 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줄 영웅을….
김일성 생일을 기념하는 날을 기해 선호는 학생들을 괴롭히던 학교 간부 하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썼다. 그 간부는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민재판에 처해졌고 선호는 학생들의 영웅이 되었다. 선호는 그렇게 하나 둘 학생들을 괴롭히던 간부들을 색출해 냈다.
“총이나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짜릿하더군.”
선호가 차갑게 웃었다.
선호의 글은 시간이 흐를수록 날카로워지고 선명해졌다. 무슨 일이 생기면 쪼르륵 달려와 하소연하는 학생들이 늘어갔다. 나이와 직위에 상관없이 선호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자기편에 넣으려고 회유하고 아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와 동시에 선호를 피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선호에게 약점을 잡힐까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사람 약점 하나 잡아 이 세상 모든 악인 양 풀어대는 선호가 권력을 남용해 학생들을 괴롭히는 간부들과 다를 게 무어냐는 비난의 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대놓고 선호 앞에서 선호를 비난하지는 못했다. 선호는 사람들이 자기 앞에서 절절매는 모습에 재미가 들려 눈과 귀가 멀어져 갔다.
더 이상 쓸거리가 없어 따분하게 느껴지던 어느 날, 진우가 찾아왔다. 진우도 전쟁의 상처에 오히려 들떠 있었다. 자기 눈이 정확했다며 선호를 앞세워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 시대를 이끌어 갈 영웅이라며 선호를 치켜세웠다. 술에 취한 진우가 무심결에 말을 덧붙였다.
“먼저 가신 부모님도 너를 자랑스러워하실 거야.”
그날 밤 아버지의 당부와 어머니의 비명 소리가 다시 뒤엉켜 들려왔다. 그 소리를 지울 수만 있다면…, 제발 그때로 돌아가 아버지, 어머니를 구할 수만 있다면…. 피난민 부부가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로 선호에게 칼을 들고 달려왔다. 선호는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급하게 펜과 노트를 찾아들었다. 그 소리에서 그 눈빛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까지 선호가 썼던 글들이 모두 진실일 수는 없었겠지만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었다. 적어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선호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김 진우가 학도병 징집을 피해 도망 다녔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돈 많은 부모가 진우를 빼돌린 것이다. 오늘 가져온 술은 미제의 위스키다. 밤새 나를 미제의 스파이로 포섭하려고 들었다, 등등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선호는 만들어냈다. 다 쓴 글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는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써 놓은 글이 없었어.”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다. 그 글이 활자화되어 신문에 실릴 때까지…. 수업에 빠진 선호를 찾으러 왔던 학생이 그 글을 읽고 놀라 신문사에 넘겨버렸던 것이다.
“선배는 자신의 총으로 자살을 했어. 9살 난 딸과 아내를 남겨두고…. 나를 구해줬던…, 그 총으로….”
선호의 눈동자가 유리알처럼 부서졌다. 세찬 바람이 선희와 선호를 휘감아 돌았다.
선희는 그 장교가 너무 쉽게 목숨을 끊었다고 말했다. 재판에 나와 아니라고 말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면 선호가 나가서 진실을 밝혀 주었을 거 아니냐고….
“재판이라고? 무슨 재판?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났는데.”
선호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내 글은 그들에게 언제나 진실이었어. 자신들의 잘못과 두려움을 가려버리고는 쉽게 타인을 제거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으니까.”
선호의 글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실이라는 이름의 옷을 입고 민족영웅이라는 왕관을 쓰고 있었다. 거대한 총과 칼이 되어 사람들을 겨누고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어느새 선호보다 커진 선호의 글은 선호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었다.
“선희야, 로트바르트가 처음부터 마법사였을까?”
선호의 눈동자가 텅 비어갔다.
“로트바르트는 왜 마법사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 왜 수많은 사람들을 백조로 만들어 버리고 그들이 마법에서 풀려날까 봐 전전긍긍하며 살았을까? 눈물의 호수를 떠날 수 없었던 건 바로 로트바르트 자신이 아니었을까?”
선호가 선희를 바라봤다. 선희는 숨이 막혔다. 텅 빈 눈동자. 그 어디에도 선호는 없었다.
“그때 나는 마법사보다 더한 악마였어. 물에 비친 악마가 바로 나라는 걸 알았을 때….”
선호가 눈을 감았다.
선호는 그 후 글을 쓰지 않았다. 선호를 두려워하던 학교 간부들이 선호에게 모스크바 유학을 권했고 모스크바에서 선호는 선희를 만났다.
선호는 다시는 악마가 되고 싶지 않다고 중얼거렸다. 어둠이 깊어 가고 있었다. 찬란했던 모스크바의 여름이 찬바람에 쓸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