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박탈감

50.

by EARNEST RABBIT

상대적 박탈감


태초에 인간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아담의 갈비뼈에서 시작된 하와.

하와가 뱀의 간교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인간은 사리를 분별하는 인격이 깊이 내재되어 태어났다.


우리 선조의 잘못이다.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그것에서 기인한 박탈감은 죄가 아니다.


어찌 보면, 이 세상에 내려온 악마는 박탈감이라는 감정에 숨어.

자꾸만 나에게 다른 이와 나를 비교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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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시대.

차라리 모르고, 안 쓰고, 보지 않았다면 느끼지 않아도 되는 감정적 소비가 많은 요즘.


자꾸 나에게 없는 것만 보여주는 SNS의 알고리즘.

그 알고리즘으로 지상 최대의 부를 축적해가는 독점적 위치의 기업들.

텔레비전이 없어졌다고 좋아했지만.


우리는 오히려 스마트폰이라는 물체의 무의식적 습관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


좋다. 좋지 않다는 관점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의 가치관에 따른 선택적 집중이 계속해서 다른 이들의 공격에 의해 마치 그 선택이 우리가 합리적으로 선택하여 이뤄낸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미디어 조정에 의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서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내재적 선택은 이미 결론을 가지고 있다.

단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선택하게끔 조장하게 만드는 것이 문제다.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는 자의적 선택에 따른 삶을 살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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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강요에 따른 백신을 선택권 없이 맞아야 하는 사회체제.

그 속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는 투명한 액체를 몸에 주입하는 시대.


얇은 바늘 속 액체를 주입했다는 QR코드가 삶의 제약을 풀어 주고, 규칙이 있는 사육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이 되는 아이러니 한 속박 속의 자유.


자유를 저당 잡힌 세계 속에서, 권력 층의 노예가 되어 가는 사회적 금융 시스템.


나는 살기 위해 빌리기만 했는데, 벌써 제로금리는 끝났으며. 이제는 그 돈에 더한 이자를 점점 높게 내야 하는 자본 시스템의 쳇바퀴. 살기 위해 버티기 위해 빌렸던 금융적 제도가 자본이 이제는 날 쉬지 못하게 하는 검은손으로 날 움직인다.


점점, 숨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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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것이 차라리 좋았다고 말하기엔.

우리의 삶에서 기본적으로 충족되는 물질들이 너무 많다.


있어서 불편한 물건들까지 등장하며.

새로운 시스템 속에 이제는 알지 못하면.

사회적 테두리 변방으로 밀려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세대.


집, 차, 주식, 코인, 저작권, 크리에이터.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는 삶이 각광을 받고, 파이어족이라는 경제관념으로 인한 한탕주의가 만연한 세상.


'상대적으로 난 어디에 위치해 있는 것일까?'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도 의문인 삶.


가지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정신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가 소멸되는 요즘.

무엇을 시도하고, 해내려 해도 자꾸 도태되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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