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작가들

할레드 호세이니 <천 개의 찬란한 태양>

by 소설

이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그냥 흠뻑 빠져든다. 타고난 스토리텔러다.

이야기가, 이야기가 섬세한 패턴의 페르시안 양탄자를 타고 술술 날아가는 것만 같다.

'무슨 일이 펼쳐질까' 궁금해서 읽다 보면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계속 가고 싶은 기분이다. 책을 한번 펼치면 내려놓기 힘들어진다.

다양하고 매력적인 캐릭터, 균형 잡힌 감정선, 빠른 전개속도, 어느 하나 빠지는 구석 없이 촘촘하게 짜인 이야기를 완성한다. 치밀한 계산을 잘하는 사람이 그려놓은 설계도를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이야기는 또 이렇게 아름다운 우정라니,

아프가니스탄의 전쟁과 정치적 배경을 다루지만 중심은 항상 사람을 향해있다.


읽고 나서 덩그러니 남은 질문 하나는,

마리암의 일생에 걸친 고통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마리암은 어릴 때부터 엄마 나나에게 비참한 처지의 삶을 살아가는 단 하나의 기술, 타 하물(참는 것)을 배운다. 열다섯 살에 아빠에게 외면당하고 멀리 카불에 사는 사별한 40대 남자에게 시집간다. 맙소사.

어쩌면 전쟁보다 더 끔찍한 남편의 가정폭력을 버티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라일라는 또 하나의 마리암이었다.

마리암이 결혼하고 18년이 지난 시점, 열네 살의 라일라는 폭격으로 부모를 잃고 마리암 남편의 세 번째 아내가 된다. 마리암은 서른셋, 남편은 60대의 나이가 될 무렵이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결코 그녀의 선택지가 아니었을 말도 안 되는 결혼을 결심한다. 길에서 험하게 버려져 몹쓸 일을 당해 죽지 않기 위한 최선의 결론이었다.


맘에 드는 부분에 색테이프를 붙였는데 12개, 그중 하나의 인용을 고를 수가 없다.


"음. 내가 카불을 떠나다니 믿기지 않는구나. 나는 여기에서 학교를 다녔고 첫 직장을 여기에서 잡았고 여기에서 아빠가 되었다. 내가 곧 다른 도시의 하늘 밑에서 잠을 잘 거라고 생각하니 낯설구나.
"저도 그래요."
"하루 종일, 카불에 관한 한 편의 시가 머리에 떠돌더구나. 사이브에 타브리지라는 시인이 17세기에 썼던 시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벽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으리.' 전에는 전체를 다 외웠었는데 지금은 두 줄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구나.
라일라는 고개를 들었다. 그가 울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아빠, 우리는 다시 돌아올 거예요. 전쟁이 끝나면요. 알라신의 뜻이라면, 우리는 카불에 다시 올 거예요. 두고 보세요"


라일라와 아빠 바비의 온화한 성격과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잘 나타내는 대화장면이 잔잔하고 아름답다. 꼭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대화체가 생생하게 살아있어 캐릭터 몰입이 잘 된다. 그래서 더 술술 읽히는 느낌이다.

작가가 묘사하는 내용이 영화처럼 머릿속에 펼쳐진다.


한 집에서 서로를 경계하던 두 여자, 마리암과 라일라는 결국 서로의 삶을 지키는 사람이 된다.

슬프고 비참한 상황에서 지켜내고 싶은 소중한 인연을 붙잡는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었으리라.

우정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치열한 인생을 그저 응원하고 돕고 싶은 사람. 목숨을 바치더라도.

라일라가 마리암의 고향을 찾아가 과거의 마리암을 만나는 부분은 고요하지만 격정적이었다.


라일라는 마리암이 인형의 머리에 실 가닥을 붙이는 걸 바라본다. 몇 년 후에 이 작은 소녀는 삶에 요구하는 게 별로 없는 여인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고, 자신에게도 슬픔과 실망이 있으며 비웃음거리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꿈이 있다는 걸 밖으로 내비치지 않는 여인이 될 것이다. 강바닥에 있는 바위처럼 아무런 불평 없이 견디고, 자신을 덮쳐오는 물살에도 불구하고 품위를 잃지 않고 나름의 형상을 갖쳐가는 그런 여인이 될 것이다. 벌써 라일라는 이 소녀의 눈 뒤에 있는 뭔가를 본다. 라시드나 탈레반이 깰 수 없는 깊은 마음속을 본다. 석회암처럼 단단하고 굳은 어떤 것. 결국 그녀 자신의 삶을 끝내고 라일라에게 구원이 될 어떤 것.
소녀가 고개를 든다. 그리고 인형을 내려놓고, 미소를 짓는다.
"라일라?"


둘의 깊은 유대와 연결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마리암이 끝까지 지켜낸 빛을 살아남은 라일라가 찾아낸다.

의미 없어 보였던 마리암의 삶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었다.

품위를 잃지 않고 단단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인생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마리암의 외로운 인생에 대한 보상이 진중하게 다가왔다.

죽어서도 나를 깨우고, 용기 있게 살게 만드는 인연.

마리암의 존재 자체만으로 라일라는 의미있는 인생을 이어 나갈 것이다.


나에게 이런 우정이 있나, 고민했다.

서로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안쓰러울 때가 있지. 그러다가도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우리는 서로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세월을 함께 보낸 만큼, 또 따로 보낸 만큼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한다.

나도 나를 잘 모를 때가 있는 것처럼, 그 안에 있는 빛은 서로 알고 있겠지 믿어본다.


타리크의 긍정적인 말이 너무 가볍다고 느껴져 라일라가 화를 내는 장면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라일라가 전쟁 중에 홀로 남아 막막함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타리크가 곁에 있어주지 못한 사실에 대해 서운함을 이야기하고 이해받고 싶지만 비난으로 대화를 마무리해 버린다.

힘들게 지나온 날들에 특별한 보상을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흘러가 버리는 건 조금 억울하다.


"당신은 몰라"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그들이 남편과 아내로서 첫 싸움을 하고 있다는 걸 의식한다.
"당신은 무자히딘이 싸움을 시작했을 때 떠났어. 나는 뒤에 남았던 사람이야. 나는 전쟁을 알아. 나는 전쟁으로 부모를 읽었어. 타리크, 내 부모님 말이야. 그런데 당신 입에서 전쟁이 그리 나쁜 건 아니라는 말을 내가 들어야 해?"


미국유학시절 남편이 남극으로 출장 갔을 때가 떠올랐다.

나는 첫아이를 낳고 두 달 정도 된 아이를 돌보며 석사논문을 쓰고 있었다. 박사과정이던 남편은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있던 남극 프로젝트를 위해 한 달간 출장을 떠났다.

매일 밤 울면서 아이를 목욕시켰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아마도 나와 아이가 버려졌다고 느꼈던 것 같다. 힘들고 외로웠다.

남편의 남극 출장은 일생 한 번의 기회였고 놓칠 수 없는 상황이 맞지만, 오랫동안 우리 부부는 그때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괜한 서운함과 억울함으로 말속에 날이 섰다.

'그때 달아난 너는 성공했으니까, 뒤에 남은 사람의 힘듦을 몰라.'

남편과 우정의 빛도 지키고 싶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덧, 라일라의 엄마가 아들을 상실한 슬픔으로 침대에 누워 생활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읽으며 '아이코,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에게 저런 모습이면 안될 텐데' 정신을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역시 사람은 읽어야 한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