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연금술사>

내 안의 보물을 찾아서

by 소설

내 인생의 교과서.

방황할 때마다 집어 들어 다시 읽곤 했다. 책을 펼치면 낡은 종이에서 폴폴 새어 나오는 냄새와 함께 고문서에 적힌 세상의 비밀 주문이 나타날 것만 같다.

파울로 코엘료, 나의 친애하는 안내자.

세상의 요구에 시달리다 보면 내가 정말 이러려고 태어난 걸까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한 번쯤은 열정을 다해서 나의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을 꺼내 열심히 닦아서 사람들 앞에도 드러내고 싶어진다.

내 안의 숨겨진 보물을 아직 구하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 때,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 마음을 조금은 살핀 것 같아 기분이 나아지곤 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친구가 건네준 책이었다. 본인은 조금 지루했다는 후기와 함께.

코엘료의 <연금술사 Alchemist >가 내 최애소설이라 말하면 호불호가 상당히 갈렸는데 '이솝우화 같은 뻔한 내용이 어린이 동화 같다', '자기 꿈을 좇아야 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 식상하다'는 반응도 많았다.

양치기가 보물을 찾으러 떠나는 이야기를 통해서 누구나 자아의 신화를 완성하는 것이 사람의 임무라고 반복해서 설명한다. 꿈, 책, 아랍어, 크리스털, 바람과 같은 상징물을 통해 자신만의 상상력을 채울 수 있도록 안내하는데, 어린아이에게 이야기하듯 친근한 화법을 쓰고 있다. 작가는 이 단순한 진리를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여기는 듯하다. 어차피,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배우고 제각기 자아의 신화를 찾아간다. 어릴 때의 감각과 순수가 퇴색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비밀을 더 잘 알아차릴지도 모른다. 인류세부터 영겁의 시간을 통과한 유전자에 이미 기록이 남아 있을 터이다.


어쩌면 그는 지금 모든 사람들의 현재와 과거를 알게 하는 우주의 언어를 배우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예감, 어머니가 자주 입에 올리던 말이었다. 그는 '예감'이라는 것이 삶의 보편적인 흐름 한가운데,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의 모든 이야기들 속에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떤 방식으로 펼쳐져 있는 것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천지의 모든 일이 이미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마크툽."


마흔이 지나고 나면 운명론자가 된다고들 한다.

과거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고 후회나 미련을 두었다 한들 소모적일 뿐인 감정을 해소하고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과거에 경험한 일들과 들은 정보로부터 나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혜를 축적해 나아가는 것이다.

양치기에게 멘토 역할을 하는 연금술사는 선조에게 배운 연금술을 부모가 배우고 본인이 배웠다고 한다. 고대의 지식으로부터 집단지성을 통해 계속 진화하는 인류의 관점으로 볼 때, 영겁의 시간을 관통하여 태어나고 죽는 인간은 시간을 초월해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유전자에 이미 기록되어 있으니 현재의 예감을 이해하고 따르라.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제가 제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거죠?"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없기 때문이네. 아무리 그대가 듣지 않는 척해도, 마음은 그대의 가슴속에 자리할 것이고 운명과 세상에 대해 쉴 새 없이 되풀이해서 들려줄 것이네."
"제 마음이 이토록 저를 거역하는데도요?"
"거역이란 그대가 예기치 못한 충격이겠지. 만일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대의 마음도 그대를 그렇게 놀라게 하지는 않을 걸세. 왜냐하면 그대는 그대의 꿈과 소원을 잘 알고, 그것들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도 알 것이기 때문이네. 아무도 자기 마음으로부터 멀리 달아날 수는 없어. 그러니 마음의 소리를 귀담아듣는 편이 낫네. 그것은 그대의 마음이 그대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그대를 덮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야."


우주의 언어를 이해하고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면 가짜와 진짜를 구별할 줄 알게 된다. 헛된 욕망이나 일시적인 불안감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진짜의 표지(sign)를 읽을 줄 알게 된다. 나의 내면을 바라볼 줄 알고 평온을 유지하는 게 그 기본이다. 조용히 차를 끓여서 새벽 명상을 더 진지하게 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가 초조해지고 수많은 생각이 정신을 어지럽히는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이다. 수험생인 나의 아이는 불안도가 상당히 높다. 초등학교 때 귀국을 해서 어렵사리 한국교육과정에 적응하느라 고생을 톡톡히 했다.

나와 비슷하게 에너지레벨이 낮은 편이라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지내는데 편안함을 느끼고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다.

책을 가까이하고 머리 쓰는 것을 좋아해서 보드게임을 잘한다. 끈기가 있고 음악이나 미술을 이해하는 감각도 뛰어나다.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아 친구들에게 맞춰 지내다 보니 학교의 단체생활에는 주눅이 들어있는 것 같다.

시험 결과에 대한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내 사랑하는 아이를 고통을 받는 환경에 던져놓게 된 것 같아 안쓰럽다. 다른 친구는 ADHD 약을 먹고 자신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며 자기도 약을 한번 먹어보는 건 어떨까, 내 의견을 묻는다.

체력도 약하고, 불안도도 높고, 약장수들이 제일 좋아할 만한 타깃이다.

한 마을에서 나고 자라 자녀가 많은 집 늦둥이였던 나는 사춘기 시절 형제자매들을 보며 웅크리고 앉아서 내가 해야 할 일과 좁은 현실을 고민했던 것 같다. 공부에 별다른 재미가 없었으나 다른 걸 시도해 볼 용기도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특출 난 재능 같은 건 더더욱 없었으니까.

유년 환경이 조금 다른 내 아이의 불안감에 대해서는 짐작만 할 뿐, 응원 말고 다른 비법이 있을까.


그때 청년은 사막 저 아래로 가서 침묵이 자신의 물음에 대답해 줄 수 있는지 묻고 싶은 걷잡을 수 없는 욕구를 느꼈다.
그는 오아시스의 야자수들이 시야에 잡힐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한참 동안 정처 없이 사막을 걸었다. 바람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발기에 채는 돌들을 느끼기도 했다. 이따금씩 만나는 소라껍데기들은 먼 옛날 그 사막이 광활한 바다였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는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앉아, 눈앞에 펼쳐진 지평선이 걸어오는 최면에 몸을 내맡겼다.
'소유의 개념과는 별개인 사랑이란 정말 무얼까'


산티아고는 사막을 걸으며 오감에 집중해서 사막에게 답을 구한다.

복종(섬김), 기도, 금식, 자비에 이어 쿠란에서 제시하는 이슬람의 다섯 번째 계율은 여행.

성지 메카로 순례여행을 해야 하는데, 이는 공간의 초월을 의미한다. 공간을 바꾸면 자아는 주변의 편견에서 벗어나 내면을 더 잘 바라보게 된다.

이사를 여러 차례 한 우리 부부는 '이사신봉자'다. 이사를 하고 나면 체력적으로도 힘들지만 멘털붕괴와 함께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많이 겪었다.

또 하나 우리 집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꼽자면, '산이 아이를 키운다'는 말을 무조건 믿고 등산계획에는 이견이 없다. 우리는 종종 산에게 답을 구한다. 등산은 홀로 함께 수행할 수 있는 자연에서의 수련이다.


작년 현충일날 우리 가족은 설악산 등반을 했다.

앞으로는 바빠져서 힘들지도 모르니 다른 일정이 없는 휴일, 우리 네 명 식구는 함께 대청봉을 오르기로 감행했다. 초입에서 만난 어르신들이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라고 하셨다. 악산이라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 일 줄은 몰랐다.

관악산, 지리산, 한라산을 다 등반한 몸이라 대청봉 정상까지는 자연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경관에 힘입어 올라갔지만, 내려오는 일이 문제였다. 날은 어두워지고 양폭대피소에서는 자리를 비워줄 테니 자고 나서 내일 산을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신세 지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은 내려서 걸어가 보자고, 나도 불편한 잠이 싫어서 머리에 착용하는 헤드라이트를 하나 사서 그만 조용히 걸어내려갔다. 주위가 깜깜해지고 아이의 머리에서 나오는 빛에만 의지해서 걷고 또 걸었다. 다행히 하산하는 다른 무리도 한 팀 있었다.

마지막 비선대를 내려오고 나서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졸음이 쏟아져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돌아가며 노래를 불러야 했다. 남편차례가 되었는데 노래가 끊어졌다.

여러 차례 고심 끝에 막상 내려오니 남편의 긴장이 풀린 것이다. 졸면서 걷는 아빠를 아이들이 챙겼다.

지금은 깔깔대며 이야기하지만 너무 위험했던 산행기록으로 남아있다.

느리더라도, 천천히 걷더라도, 계속 걸으면 언젠가 닿는다는 걸 아이들이 느낀 경험이길 바랄 뿐이다.


우리는 산에게 묻는다.

"내 아이가 잘할 수 있을까?"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을 믿어보자.

긴 싸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서서히 불안을 조절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빈다.'

이렇듯 좋은 글은 인생에 대한 질문을 담는다. 내 안의 질문을 술술 꺼내든다.

그 답은 각자의 깊은 곳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천천히 흘러나올 것이다. 마크툽.

금요일 연재
이전 04화한강 <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