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하던 젊음, 그 문장들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 스무살을 담고 있다.
그 시절의 방황과 공허를 그대로.
무료하고 무기력한 어느 여름날, 상실의 시대를 읽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 감정을 대신 말해주는 문장을 만났다.
와타나베는 진중하게 몇마디하는 조용한 인물인데, 그와 나를 동일시하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날들의 방황과 될대로 되어버려도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마음속 딱딱한 껍질을 온전히 묘사하고 있다.
몸속의 무엇인가가 떨어져 나가고 그자리를 메워줄 것도 없는 채, 그것은 순순한 공동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몸은 부자연스럽게 가벼웠고 소리는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다. 나는 평일에는 이전보다 더 충실하게 대학에 다니고 강의에 출석했다. 강의는 지루하고 같은 과 녀석들과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없었지만, 달리 할 일도 없었다. 나는 혼자서 교실 맨 앞줄에 앉아서 강의를 듣고,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서 식사를 했고, 담배 피우는 것을 그만뒀다.
나의 대학생활도 대체로 재미가 없었다.
공대생이었던 나는 부전공 영문학 수업을 들으러 학교 전체를 가로질러 인문학 건물까지 홀로 다녔다.
그 무렵의 서늘한 강의실에는 달리 할일이 없어 책상에 노트를 펼치고 꼬박꼬박 출석하던 내가 앉아있다.
필기를 너무 꼼꼼히하는 친구녀석도 싫었고, 쉴새없이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녀석도 싫어서 책상을 살며시 끌어서 강의실 앞 끄트머리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고 나도 내 존재를 설명할 수 없었다. 우주에 홀로 던져진 고독은 하루키의 섬세한 문장으로 위로받았다. 감성을 적절히 건드리면서 유머러스하고 또 냉소적이다. 청춘의 외로움을 적절히 쓸쓸한 방법으로 전달한다.
공부에 진지하게 몰두하는게 초라해보였고, 스타일 좋은 부잣집 아이들이 빛나는 차를 끌고와서 쉽고 가볍게 이야기하는게 그저 부러웠다. 나약한 영혼이었다.
크고 복잡해보이는 세상앞에 나는 너무 시시하고 하찮았다.
도로에 떨어진 커다란 플라타너스 낙엽을 밟을 때에만 바삭거리는 마른 소리가 났다. 그런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는 나오코가 불쌍해 보였다.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내 팔이 아니라 누군가의 팔인 것이다.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나의 온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온기인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이라는 것에 대해 나는 어쩐지 꺼림칙한 기분이 되었다.
이 문장은 마치 내 몸 안쪽 어딘가를 정확히 짚어냈다. 대부분의 친구가 이렇게 허술한 인연이라는게 실망스럽기도 했다. 가족과 친구,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내가 나인게 지겨웠다.
나오코와 초원을 걸으며 산책하는 장면은 오랫동안 내 기억에 박혀있어, 젊은 시절 연애상대와 데이트를 할때마다 떠올리곤 했었다. 자신이 없어 늘 누군가가 나의 불안과 허영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며 잊혀지지 않는 슬픈 연애를 꿈꿨던 것도 같다. 멋지고 유명한 사람들 사이에 둘러 싸여 이야기를 나누는 꿈을 꾸었을까.
내 첫 해외 여행은 일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는 해에 나고야에 교환학생으로 있는 친구를 방문했다.
졸업과 동시에 취직하는 과친구들을 떠올리며 도망치듯 졸업식 날짜에 맞춰 일본행 비행기 표를 샀다.
임용고사에 떨어진 사범대 친구와 나란히 비행기 의자에 앉아 이륙을 기다리며 낙오한 지구에서 무사히 벗어나길 기도했다. 우리는 비슷한 낭패감으로 여행을 도모했다.
서로에게 온기를 지닌 누군가였다. 동일한 상실감을 지닌 나오코와 와타나베처럼.
뱃속 한가운데 있는 좌절감은 꽁꽁 뭉쳐둔채 웃는 얼굴로 친구가 이야기했다.
"우리 아빠라 뭐라는 줄 알아? '시험에 떨어졌다고 해서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는 건 문제를 회피하는 것 밖에 안된다' "
"뭐, 그냥 지루한 졸업식 보다 여행을 선택한 거지"
감정에 진실하지 못했고 우리의 초라함이 아쉬웠지만 함께 떠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우리의 속내를 모르는 한국인 유학생 친구들과 기숙사방에서 밤새 아사히 맥주를 마시며 쓸데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나고야항 주변을 돌아다녔다. 비루하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나은 기분이 드니까.
그 봄에 나는 매우 많은 편지를 썼다. 나오코에겐 일주일에 한 번씩 썼고, 레이코 씨에게도, 미도리에게도 몇 번인가 편지를 썼다. 강의실에서 쓰고, 집 책상에서 '갈매기'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쓰고, 휴식시간에 아르바이트하는 이탈리아 식당 테이블에서도 썼다. 마치 편지를 씀으로써 산산이 무너져내릴 것만 같은 생활을 간신히 지탱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시절 나는 끝없이 편지를 썼다. 도서관에 앉아서, 내방 책상 위에서, 작은 노트에도 계속 써내려갔다.
수줍어 말로는 다 하지 못했던 마음을 문장으로는 조금 더 정확하게 남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나는 무심하고 기분좋은 표현을 쓰려고 고심했다.
외로움을 이해해주는 문장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