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친절한 도박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은 너무 반갑다.
게다가 결혼이야기다. 그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 이후를 해부한다.
인생에서 가장 내밀하고 깊은 인간 관계, 결혼의 감정적인 면면에 대해 세밀하게 보여준다. 결혼하게 되는 낭만적 시점부터 결혼을 이어나가는데 필요한 노력과 심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서 사랑이야기를 아주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간결하게 정의내리고 비유하는 표현이 경이롭다. 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낭만적이면서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며 섬세한지 놀랍다. 마치 시끌벅적한 술자리에서 진지하게 유머러스한 썰을 푸는 믿음직한 사람 옆에 앉아 맥주잔을 들고 귀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문제없는 결혼이란 이 세상에 없다는 거지."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결혼 :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중간중간 사실적인 심리의 아이러니를 객관적으로 정리한 문단이 요약처럼 나오는데 열심히 읽으면 읽을수록 무릎을 치게 만든다.
캐릭터는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우리를 이야기 속으로 마구 끌어들인다. 커스틴은 차분하고 유머러스하고 솔직하다. 라비는 언어에 뛰어나고 섬세하다.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외로운 인간들 중에 평범한 두사람, 커스틴과 라비는 그럴 듯한 상황과 인연에 매료되어 무모하게 결혼을 결정하게 된다. 우리 몸속 유전자와 앞선 세대가 살아가는 방식이 우리를 조종한 결과, 불안정한 유년을 떠나 성장한 성인이 상대방의 행동으로 몇차례 안정감을 느끼는 순간 결혼을 결심한다.
바로 이 사람이라고, 이 사람과 함께 늙어가고 싶다고.
"그냥 아버님이 나를 어떻게 여기실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자. 생각해보면, 당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라비는 항상 밤중에 혼자 오던 숲에 한낮에 친구와 함께 와보니 무섭고 심술궂게만 보였던 형체들이 사실은 내내 기이한 각도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던 바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느낌이다.
심리학 비법서를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하는 부분이 뛰어나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 변화에 대해 명쾌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해준다. 토라짐이라든가, 엉뚱한 상상력, 감정 전이를 통해 그런 감정이 생길 법한 시나리오를 세세하게 묘사해서 읽는 내내 '음 그럴수 있지'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논리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사람, 이게 깔끔하게 설명이 가능하다니 신기하다. 또 심리학에 대해 어마어마하게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데 글을 또 너무 읽고싶게, 쉽게 읽히게 쓴다. 바람결에 들려오는 이야기처럼 가볍고 자연스럽다.
한때 커스틴을 흠모한적 있는 턱수염을 기른 덩치 큰 남자 친구를 만나자 라비는 본인의 남성성에 위협을 받는 기분이다. 초라해진다.
첫 만남에 라비를 조롱하기까지 해서 불편한데 옆에 있던 커스틴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남자의 유머에 더 친밀하게 반응하는 사실이 불쾌하기만 하다. 라비의 경제력에 대해서도 공격하는 것 같다. 나를 초라하게 만들던 숱하게 많은 상황이 떠오른다.
"아- 그러니까 우리가 기자에 대피라미드를 하나 더 세우는 각광의 날이 돌아오기 전까지 대영제국의 이 암울한 불황이 지나 가길 기다리고 있다?" 머리는 자신의 재미없는 조롱에 약간 과하게 웃지만, 라비가 신경쓰이는 건 그게 아니다. 그보다는 커스틴이 거기에 가담한 방식이 신경 쓰인다. 그녀는 맥주가 남은 파인트 잔을 손으로 감싸 쥐고 예전의 대학 친구 쪽으로 머리를 기울이고는 마치 대단히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것처럼 박장대소한다.
남편에게는 3명의 샐리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세 여자의 이름이 같았다. 본명은 좀 더 전통적인 이름이지만. 나와 연애하기전 그 샐리1을 짝사랑했었다고 했다. 고등학교때 그녀에게 고백했지만 샐리1은 남편의 다른 친구와 사귀고 큰 아픔을 겪었다고 씁쓸하게 이야기했다. 그 부부는 아직도 만나는 사이. 철없을 때의 추억이지만 다 같이 만나도 약간 미묘한 감정선이 있기는 하다.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직관1열.
샐리2는 나와 연애초반 남편의 홈페이지에 애정듬뿍 담은 방문록을 남기던 학과동창 여자사람, 그녀와 단둘이 술자리를 가지고 있다며 통화로 놀리듯이 "분위기가 너무 좋아"를 연발했다. 분노한 나는 연락을 두절하고 헤어질 결심을 했다. 이따위의 존중없는 행동때문에 감정소모를 해야 한다면 나는 사양하겠다는 의견을 표시했더니 홈페이지를 전부 삭제하고 울며 빌었던가.
샐리3은 결혼 후 미국 유학시절, 박사과정 나이가 조금 많은 한국여자선배였는데 결혼기념일날 그 분 이삿짐을 나른다고 저녁시간이 한참 지나 늦어도 너무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 분께 누나라는 호칭을 썼다.
"억울하다고, 나는 그런 오빠가 없잖아."
내 설명이 부족했는지, 그 이후로도 나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무수히 했다. 내가 화가 난건 남편의 배려깊지 못한 행동인데 나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게 답답했다. 내가 화가 난 건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순간 내가 '배려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나'는 느낌때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왜 배려받는 소중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가?
다른 감정을 타고났으니 내 감정에 대해 생각이 못 미쳐서 저러겠지 넘길 수 밖에 없었다. 내 마음이 불편했던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었다고 믿지만, 남편의 기준에서는 다른 영역인 듯이 얘기했다.
비슷하게 복수해주는 수 밖에, 너도 당해봐라.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투명인간 취급당하는게 얼마나 무참한 기분인지.
다른 이성에 대한 적절한 예의와 친밀감은 유전자에 각인된 주요한 감정의 축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정세포가 살아있는 한 죽을때 까지 부딪치게 될 문제라는 것도. 서로 똑같이 감정을 존중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내가 행동하는 만큼 너에게도 허용한다고 서로 믿는 정도. 결국 결혼은 같은 기준을 갖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기준을 끝까지 협상하는 일이다.
부부생활에서 매일 벌어지는 타협과 줄다리기가 요구하듯, 평정심과 권위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사람에게 우리를 바보나 타락한 사람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판타지를 맡기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 대신 완전한 타인을 고려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여기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외도와 상담을 거쳐 결혼생활을 16년 유지한 이후, 라비는 그제서야 본인이 결혼할 준비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타인에게 완벽하게 이해되기를 포기하고 온마음을 다해 친밀하고자 하는 헌신을 가지는 단계, 결혼의 성숙에 이른다.
라비 칸은 커스틴이 곁에 있으면 인생이 무엇을 요구하든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겠다고 느낀다.
결국 이상적인 결혼은 서로에게 기대는 관계가 아니라, 혼자서도 충분히 설수 있는 두 사람이 기꺼이 함께 서 있기로 선택하는 상태다. 아름다운 기억과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는 결혼 생활, 사랑이 무조건 이긴다.
Love wins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