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간 방치되었던 집이 눈에 들어옵니다. 먹다 남은 배달음식, 테이크 아웃 용기,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식탁, 쓰레기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쓰레기통, 걸을 때 밟히는 고양이 장난감...
체크리스트에 적힌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한 일들은 지금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었습니다. 햇빛이 쏟아집니다. 선반 위 먼지가 또렷이 보입니다. 머리를 묶고 찬찬히 집을 둘러봅니다. 13년 동안 가정주부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청소하였습니다. 저는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못 보는 사람입니다. 집 안일이 밀리기 시작한 것은 학폭위가 진행되고, 아이가 말 못 한 피해사실이 더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상대 부모들이 '없는 일'을 만들어서 거짓 신고를 하였을 때. 추측이 확신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리고 몰려온 공포감.
공포감.
빨래에서 큰 아이 목소리가 들립니다. - 엄마, 입을 바지가 없어요.
넘치는 설거지를 보니 쓸 수 있는 젓가락이 없다고 했던 말도 생각납니다. 남편이 사람을 쓰라고 했던 말도 기억납니다. 집을 둘러보니 막막하였습니다.
청소가 쉽지 않았습니다. 집은 유기적인 공간입니다. 생활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조금씩 치우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음식을 해 먹으려면 주방이 한 번에 치워져야 합니다. 그래도 청소하였습니다. 청소를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는데, 몸에 밴 습관으로 청소하였던 것 같은데,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말을 실감하였습니다.
집이 계속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혹은 몇 주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