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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우 Dec 04. 2023

오늘을 위한 글 9

1인분

 집안일이라는 게 할 때는 표가 안 나지만 하지 않으면 표시가 납니다. 집이 형태를 잃어갈 때  남편이 사람을 쓰라고 했습니다. 나의 능력은 5만큼이어서 갑자기 10만큼의 일이 생기면 정신을 못 차리게 되는데 매일 10만큼의 일이 있었습니다.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쏟고 나면 집안일이 유통기한 임박한 재고처럼 저를 기다립니다.


 공고를 올렸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청소 도와주실 분을 구한다고요. 그런데 아무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저희 집은 30분에 마을버스 한 대 오는 외진 곳에 있거든요. 시간이 지나 공고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렸을 때 전화가 왔습니다.

 

 이모님은 차로 10분 거리에 사셨고 운전도 하셨습니다. 당장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저는 이모님이 구세주 같았는데 구세주는 이틀 출근 후 사정이 생겨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염치가 없어 이모님과 함께 청소하였습니다. 그러나 둘째 날도 달라지지 않은 집을 보고 당황하셨던 것 같습니다. 신발장을 지나 식탁 위를 보고 헉, 분명히 헉하셨는데 제가 무안할까 봐 놀라지 않은 척하셨습니다.


 이모님이 오시지 않아도 청소를 하였습니다. 창문을 열면서 좋은 바람이 들어오라고 기도했고, 쓰레기를 비워내면서 답답한 마음이 비워지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다시 청소를 등한시하기 시작했을 때 이모님께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이모님이 청소를 해주시고 가면 기분이 좋습니다. 물때 없는 싱크대에 컵 놓을 때, 깨끗한 세면대에서 세수하는 동안,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창틀이 닦여진 것을 봤을 때 좋았습니다.


 그런데 돌아서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귀찮은 일을 누군가 대신해 주고 나면 기쁘고 마음이 즐거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나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느낌. 1인분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괴로워집니다.


 가족들이 제 역할을 하면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이가 학교를 못 가는 날이 많아지고, 아이들의 학업이 중단되고 빠진 나사를 줍듯이, 나사 끼우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그때서야 내 몸에도 나사가 빠졌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엄마의 역할에는 건강한 것이 포함됩니다. 요리에 취미가 없어서 가족들에게 맛있는 밥을 해먹인 것은 아니었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적은 없습니다. 가족들과 밥을 먹으면 내가 먹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1인분의 몫을 못하고 있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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