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며
전시를 준비하고 진행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굿즈를 파는 - 과정이 좀 힘들기는 했지만 즐거웠다.
차를 마시러 와서 그림을 보는 사람들
그림을 주의깊게 보는 사람들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전시를 마치고 나니 12월이 되었다. 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 하는 겨울.
전시는 나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이벤트였지만 내가 이 개인전으로 인해 작가로서 발판을 내딛고 미술계에 나아간다거나, 갑자기 그림이 잘팔려서 회사를 그만 둬도 될 정도의 뭔가가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시를 통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스토리텔링, 작품 정리, 액자를 만드는 법과 액자를 잘 싸는 법, 수평, 조명, 클레임치는 법 등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밤에 그림을 그리는 시간 - 이것은 정말 중요한 시간이다.
내가 나로서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은 가족이 모두 잠든 고요한 새벽 뿐이다. 물론 새벽까지 뜬눈 지새우며 그림을 그린 다음 날에는 커피를 마시고 또 마셨고, 그 다음 이틀은 내리 잠만 잤지만, 아무 생각 없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인터뷰에도 적었지만 조용한 새벽에 숲을 그릴 때 나는 내가 그린 나의 숲을 한참을 걷고 나온 기분이다. 그렇게 노곤하고 따뜻해진 마음을 안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는다.
이상하게도 전시를 마친 후에 그림에 손을 대기가 어려워졌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저 손에 펜을 쥐면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하는 부분인데 왠지 어색했고, 한 동안은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좀 다르게 그려보고 싶은 마음과, 더 잘 하고 싶은 중압감일까? 아니면 귀찮아서?
딱히 수가 생각이 나지 않아 이런 저런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아이들과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빈둥대고, 유튜브를 본다.
연말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집도 연말 느낌으로꾸미고 맛있는 음식을 가족들과 나눠먹으면서 따뜻한 연말을 보내고싶다.
회사는 여전히 괴롭고 날씨는 더웠다가 추웠다가 하지만,
이 지루하고 힘든 시간을 내 곁에서 나를 위로해주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