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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Aug 30. 2022

집이란 무엇인가

집을 찾아 헤매던 날들의 기록

영화 <노매드랜드>는 세계금융위기 이후 집 없이 떠돌게 된 미국인들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다. 유목민을 뜻하는 노매드(nomad). 멸종한 줄로만 알았던 유목민은 경제위기로 인해 다시 세상에 등장하고 이제는 말이 아니라 차를 타고 미 전역을 누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펀 역시 차를 타고 일자리를 따라 이동하며 살아가는 노매드이다. 영화 속 한 장면, 펀은 마트에 들렀다가 한 지인을 만난다. 그 지인은 펀에게 묻는다. 홈리스(homeless)가 맞느냐고. 그 말에 펀은 대답한다. 자신은 홈리스(homeless)가 아니라 하우스리스(houseless)라고. 펀에게는 건물로서의 집(house)은 없지만, 마음의 집(home)이라 할 수 있는 차가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는 내가 그동안 거쳐온 많은 집들을 떠올렸다. 집이란 무엇인가.      


내게는 집이 없었다. 건물로서의 집은 있었지만, 마음을 편히 내려놓을  있는 공간으로서의 집은 없었다. 오랜 시간 내게 집이란 곳은, 정확히 말해 내가 부모에게 얹혀사는 집이란 곳은,  알코올 냄새가 진동하고 잔소리와 푸념이 배경음악처럼 깔려있는 곳이었다. 집에 들어가면 아빠는 어김없이 취해 있었고, 엄마는 나를 따라다니며 자신의 하루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아빠라는 사람이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지를 말하고  말했다. 집에 있는  이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지워도 나는 편하지 않았다. 불을 끄고 방문을 닫고 잠자리에 누우면 비로소 엄마의 목소리로부터 놓여날  있었지만, 어김없이 냉장고에서 술병 꺼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성. 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지옥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차에 집착했다. 운좋게 어린 나이에 차를 갖게 됐다. 차는 이동수단인 동시에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무슨 일이 있든 없든 차를 끌고 무작정 내달렸다. 집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내게 차는 집이었다. 발이 달린 집. 좋아하는 음악을 고막이 터질듯 크게 들으며 내달리면 자유로웠다. 집이란 자유의 공간이기도 한 것. 그곳에서 나는 남몰래 많이 웃고 많이 울었다. 차는 내게 마음의 집이었지만, 결국 밤이 되면 나는 다시 공식적인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도 집에 들어가기 싫어 한참 차에 머물다 마지못해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다음으로는 여행에 빠져들었다. 차는 일시적인 자유를 주었지만, 결국 내가 돌아가야 하는 건 집이었다. 그렇다보니 미결의 응어리가 늘 가슴에 박혀 있었다. 틈이 날 때마다 여행을 떠났다. 낯선 곳에서 청하는 잠이 더 달콤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걷는 걸음이 더 가벼웠다. 그렇게 여행은 사흘, 나흘, 일주일이 되고 보름이 되었다. 캄보디아에서 태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추적추적 비 내리는 아침,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배낭을 메고 하나둘 모여드는 전세계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한번쯤 기간도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바람처럼 떠돌다 바람이 되고 싶었다. 지구에 온 적이 없다는듯 태어나 이름도 가진 적이 없다는듯 공기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었다.


아빠가 병원에 들어가고 술을 끊은 뒤에야 나는 구체적인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적금이 만기되는 날짜에 맞춰 회사를 그만 두고 기간도 목적지도 없는 여행을 떠나고 말겠다. 나는 그저 그런 여행을 꿈꿨을 뿐인데,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런 여행을 가는 건 인생을 바치는 일이었다. 쌓아온 경력을, 모아온 돈을, 내 미래를 전부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여행을 선택하는 순간 내게는 여행 외의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런데도 가야만 하느냐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럼에도 나는 가야 했다. 나는 집을 떠나 길에서 살고 싶었다. 길에서만 숨을 쉴 수 있다고 믿었다.


비행기표를 끊고 회사도 그만 두고 떠나기 일주일 전에야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올 게 왔다고 생각한 걸까. 그들은 말이 별로 없었다. 알겠다는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그날, 밤새도록 눈물을 흘렸다. 행복해서. 태어나 처음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한 날이었다. 손에 모든 걸 꼭 쥐어야만 행복할 줄 알았는데, 아귀의 힘을 빼고 모든 걸 내려놓는 게 더 진정한 행복에 가까워진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다 버리고 떠나는 건 나를 둘러싼 온 세상이 바뀌는 일이었다. 내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는 일이었다.


발길이 닿는대로 다녔다.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의 마음으로 낯선 도시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낯선 언어의 소리를 들었다.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대도시의 거리를 걷기도 하고, 작은 시골의 골목을 누비기도 했다. 유서가 깊은 곳을 둘러보기도 하고 유명 관광지라고는 없는 곳을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매일 밤 숙소에서 지도를 펼치고 다음 행선지를 고민했다. 짐을 싸고 풀고 또 싸야만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런 생활을 반 년쯤 하자 그토록 원했던 여행이 점점 버겁게 느껴졌다.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길 역시 일시적인 집에 불과했던 것.


긴 여행에서 돌아와 부모에게는 타도시에 취업을 했다 거짓말을 하고 낯선 도시에 월세방을 구해 살기 시작했다. 다시는 이전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비록 미래도 불투명하고 통장잔고도 별로 없는 서른살의 백수였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갖게 된 내 집에서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싶을 때 먹고 하고싶은 것만 했다. 다시 일어나 돈을 벌러 나가기까지 수 개월동안 나는 내 집에만 머물렀다. 오랫동안 기나긴 방황과 방랑의 원인이 역마살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진짜 원인은 따로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남편을 만나 섬으로 이주해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나는 좀 더 완전한 집을 찾았다고 느낀다. 이제 내게 집은 자유의 공간이자 의무의 공간이고 동시에 함께 하는 사람으로 완성되는 곳이다. 종종 남편과 아이들을 살핀다. 그들도 나처럼 이 집을 자신의 집이라 여기는지 궁금한 마음에, 행여나 지난 날의 나처럼 집을 집이라 여기지 못하는 건 아닌지 눈여겨 보곤 한다. 다행히 남편은 칼퇴근하는 일상을 만족해하고 아이들은 집에서 가장 자신다운 모습을 드러낸다.


아이들은 결국 몸과 마음이 다 자란 어느 날 이 집을 떠날 것이다. 그 순간이 왔을 때 아이들에게 이 집이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은 지긋지긋한 곳이 아니기를 바란다. 언제든 지치고 힘들면 돌아와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온전한 쉼을 누리는 곳이 집이기를. 집이 있지만 없다고 느꼈던 지난 날의 나와는 다른 어른으로 자라기를. 내가 아이들에게 해줘야 하는 단 하나가 있다면, 그건 바로 집(house)을 집(home)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 믿는다. 누구에게나 집은 그런 곳이어야 하니까. 집다운 집을 가진 뒤에야 나는 제대로 글을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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