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순우 May 09. 2022

초심을 돌아본다

완전한 책임감으로 다시 시작한다

섬에 온 뒤로 거의 9년 가까이 남편과 붙어 있었다. 연애와 신혼 기간을 통틀어 한번도 싸운 적이 없던 우리 부부는 그렇게 소원하던 섬에 와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워댔다. 집을 짓느라 갖가지 선택에 부딪혀 싸우고, 카페를 운영하면서 일하는 스타일이 도무지 맞지 않아 그렇게 다퉜다. 세상 가장 안 맞는 사람과 결혼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싸우고 나면 내가 이 사람과 이 먼 섬까지 왜 왔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이제는 일 때문에 잘 싸우지는 않는다. 서로의 스타일을 너무 잘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인정했다기보다 포기했다고 해야 할까. 좁힐 수 없는 견해를 두고 아웅다웅 해봤자 우리는 바뀌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는 나는 육아에, 남편은 카페 일에 각각 주도권을 잡아갔다. 내가 카페 일을 하긴 하지만, 남편의 스타일에 맞춰 따라간 것. 그렇게 하니 싸울 일은 줄어들었다. 남편 스타일이 퍽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나는 육아와 살림에 더 많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글쓰기까지)


남편이 드디어 출근을 했다. 지난주는 황금연휴로 제법 바빴다. 오랜만에 많은 손님을 치르자니 처음에는 몸이 지쳐만 갔다. 그런데 막상 혼자 카페를 운영할 날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피곤은 느껴지지 않고 대신 온 몸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바쁜 와중에 틈틈이 카페 물건들 배치를 바꾸었다. 내 손에 맞게, 내 마음에 들게. 묵은 때도 벗겨내고, 하나하나 정리를 해가면서 마치 재오픈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오늘부터 카페는 오롯이 나의 몫이 되었다.


커피를 처음 배운 건 나였다. 카페 운영을 위해 커피를 배우고 로스팅을 배우던 시간들. 카페를 처음 오픈했을 때에도 카페 운영의 주도권은 자연스레 내가 쥐게 되었다. 남편에게 커피를 가르쳐준 것도 나였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전세는 역전됐다. 남편이 모든 주도권을 가져갔다. 거의 7년만에 완전한 책임감으로 카페 문을 연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 손이 닿아야 하는 일들. 온전한 책임감으로 일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처음 카페를 오픈하던 때가 떠오른다.


나는 한때 방랑자였다. 떠나야만 살 수 있다고 믿었고, 길고 긴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그 여행을 하기 전에도 틈만 나면 도망갈 궁리를 하곤 했다. 그런 내가 여행지에서 카페를 연다는 건 남다른 의미였다. 방랑이 전부였던 그 시절의 나를, 그때의 나와 비슷한 영혼들을 달래는 일이 내게는 카페를 여는 일이었다. 방랑객들에게 온전한 쉼을 제공하고 싶었다.


한동안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카페를 열었던 이유에 대해 완전히 잊고 지냈다. 카페는 어느 순간 내게 밥벌이 이상의 의미가 되지 못했다. 매출을 분석하고 오가는 손님들을 따져가며, 어떻게 하면 다른 카페보다 더 오래 버틸 수 있을지를 궁리하기에 바빴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고, 그럴수록 내 마음은 볼품없이 자꾸 쪼그라들었다.    


남편이 취업을 하고, 재오픈하는 듯한 마음을 먹은 뒤에야 나는 비로소 한동안 놓친 본질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글쓰기 못지 않게 카페일을 사랑하는 내 자신을 다시 마주한다. 손님이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카페이길 바란다. 잠시라도 지친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을 보내길. 초창기 도망치듯 섬에 왔다는 한 손님이 떠오른다. 갑작스런 도망에도 기꺼이 넉넉한 자리를 허락하는 카페이기를. 그렇게 다시 시작이다.


 

이전 15화 가난을 선택한 삶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