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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May 11. 2022

찰나의 시간, 하루

내가 가진 건 몸뚱이뿐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도 이 몸뚱이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럴싸한 명함만 가지려하지 않는다면 못할 건 아무것도 없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하루하루를 살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자신감 덕분에 쥐고 있던 걸 모두 놓아버리는 선택들을 할 수 있었다.


서른이 넘고 아이 둘을 낳고, 마흔도 넘어가고. 이제 나는 더 이상 가진 건 몸뚱이뿐이라는 말을 입밖으로 꺼낼 수가 없다. 체력은 하루가 다르게 저하되어 가고, 마음과 다른 몸 상태로 인해 난처한 일들을 겪는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은 부쩍 마음으로는 열 가지의 일을 할 수 있겠다 싶다가도, 체력이 다해 결국 예닐곱 가지만 하고 손을 놓을 때가 많다.


카페를 온전히 책임진  사흘째. 아침에 남편을 보내고 아이들도 등원 등교를 시키고, 잠깐 집안일을 한다. 그러다 시간이 되면 카페 문을 열고 본격적인 일의 시작. 연휴 뒤끝이라 손님이 많은 편도 아닌데, 잡다한 일은 뭐가 그리 많은지. 떨어진 물건들을 포장하고 원두를 볶고 청소에 그릇 정리에 메뉴 제조에글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니 틈틈 글까지 쓰고 나면 어느새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다.


텅빈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조금 놀리고 집에 돌아와 씻는 걸 봐주고 나면 저녁밥 지을 시간. 혼자 카페에서 대충 점심을 먹다보니 이 시간쯤 되면 허기가 진다. 부랴부랴 밥을 안치고 첫째 알림장을 살펴보고, 아이들 질문과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러다보면 남편이 귀가를 한다. 네 식구 도란도란 이야기 주고받으며 저녁을 먹고, 밥상 치우고 아이들과 조금 놀다보면 금세 또 잠자리에 들 시간.


그렇게 씻고 아이들과 함께 자리에 누우면,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잠이 든다. 아이들을 재우고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홀로 일어나 글을 쓰거나 책을 볼 때가 많았는데… 이틀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잠에 빠져 들었다. 몸뚱이뿐이라고 생각했던 시절들로부터 나는 어느덧 꽤 멀어진 것. 믿을 수 없는 저질체력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나마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 있다면, 글을 쓰는 시간.


네다섯 시간만 자도 체력이 완전히 충전되는 몸이었으면 좋겠다. 지구가 한 바퀴를 도는데 사십 시간쯤 걸리면 좋겠다. 일은 지금만큼만 하고, 아이들은 조금 더 길게 잠을 자고, 나만의 시간은 훨씬 늘어나는 그런 하루라면 참 좋겠다. 그러면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도 실컷 보고, 글을 읽고 쓰는 시간도 더 늘릴 수 있을텐데.



어릴 땐 모든 게 불명확했다. 하고싶은 것도, 해야만 하는 것도 확실하지 않았던 시간들. 나이가 들수록 모든 건 명확하기만 하다. 꼭 해야만 하는 일들, 내 손길이 닿아야만 돌아가는 일상들, 내가 확실하게 소망하는 일들까지. 불명확할 때는 오히려 이리저리 낭비하는 시간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명확해진 지금은 일 분도 낭비하는 게 꺼려진다. 체력의 한계가 명확하니, 체력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는 것.


가진 건 몸뚱이뿐이라는 믿음은 이제 저 멀리로 가버리고, 내게는 선물같기도 짐같기도 한 찰나의 하루하루만이 남았다. 이따금 글을 쓰면서 글은 내게 꿈이자, 치매 예방이자, 노후 보장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촘촘히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하루 하나라도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기가 어렵다. 이제 내게 남은 게 몸뚱이가 아니라 글이기 때문일까.


여행기를 쓰면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지난 시절의 나는 참 용감했구나 싶다. 낯선 거리들을 겁없이 누비고 다녔던 시간들. 다시 그렇게 떠날 수 있겠냐고 누군가 물으면 요즘 나는 대답을 망설인다. 체력도 떨어지고 겁도 많아진 내가 다시 그렇게 다닐 수 있을까. 체력문제를 차치하고도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다. 세상을 너무 알아버렸기 때문일까, 책임이 많아졌기 때문일까.


때가 있다는 말을 실감한다. 방랑도, 방황도, 허락되는 때가 인생에는 있는 것 같다. 젊음 때문일 수도 있고, 체력 때문일 수도 있고, 그리고 겁 없는 패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시기를 놓치고 지나버리면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선택을 내리기가 참 어렵다. 짐은 점점 많아지고, 그 짐만큼 두 다리 역시 무거워진다. 세상을 알아갈수록 용기가 생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더 안다는 건 더 겁이 많아지는 것.


그러니 떠날 수 있을 때 떠나고, 모험할 수 있을 때 모험을 해야만 하는 게 아닐까. 인생이 참 짧다.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기는 정말 찰나에 불과하다. 이렇게 영락없는 중년이 되어버린 나는 오늘도 바쁜 와중에 글 하나를 쓰고는 마냥 행복해한다. 손님이 별로 없는 아침을 사랑하는 괴상한 카페 주인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이렇게, 나는, 서서히, 죽음으로, 간다.


그러니 글을 안 쓸 도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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