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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Jan 06. 2022

언제든 밀려올 수 있는 파고

건강검진 후 이야기

전화를 받은 건 생일을 이틀 앞둔 오후였다. 기분 좋게 가족들과 집을 나서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건강검진을 받은 곳이었다. 결과지를 받기도 전에 전화가 왔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은 아닐 터였다. 전화를 건 상담직원은 한국인의 화법을 정직하게 따르며 미괄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마지막에 결국 들은 말은 AFP지수라는 게 있고 그게 너무 높게 나왔다는 것이었다. 간암을 나타내는 종양지표자지수라고 했다. 자세한 설명을 위해 진료 예약을 하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간이라니. 한 번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장기였다.


검색을 해봤다. 피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이고 보통 암 치료를 하다 회복 정도를 알기 위해 많이 검사하는 듯했다. 간암만을 나타내지는 않고 소화기 계통의 암을 진단하는 데 사용하는 지표였다. 정상수치는 8이었고 내가 받은 수치는 184였다. 분명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수치였다. 임신했을 때 수치가 높아지기도 한다는데 가능성이 없었다.


열흘을 더 기다려 검진 결과 설명을 듣고, 스무날을 더 기다려 대학병원 담당교수를 만났다. 전화를 받은 지 한 달만이었다. 흉부와 복부 CT촬영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날 촬영 예약을 잡아 찍고, 그리고 오늘 그 결과를 들으러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전화를 받은 지 한 달 열흘만이었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간과 관련된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A, B형 간염 항체 보유자였고, 이십 대는 직장생활로 술을 자주 마셨지만 지난 십 년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이따금 마시는 맥주 조금이 전부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간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시작하면서 책임감 때문인지, 식욕이 너무 없었다. 늘 어쩔 수 없이 식사를 챙기고 밥을 먹었다. 면역력도 약해져 없던 알레르기 증상이 있었고 체력은 심하게 저하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병과의 연관성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연관이 없다 하기엔 내 몸이 너무 약해져 있었다.


일단은 연관성이 없다는데 무게를 두고 일상생활을 지속했다. 이따금 불안한 마음이 찾아왔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다. 아직 오지 않은 일에 마음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어제저녁부터는 조금 무서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가게를 닫고 따라나서겠다는 남편을 말리고 혼자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꼬박 한 시간이 걸리는 병원이 참 멀게 느껴졌다. 이럴 땐 시골에 사는 게 좀 서럽다.


운전하고 가면서 자꾸 눈물이 났다. 아이들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만의 하나라도 암세포가 발견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지 않은 미래 때문에 걱정하지 않겠다 했으면서도 병원을 가는 동안은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았다. 암이 더는 불치병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자꾸 겁이 났다. 내 인생은 아쉬울 게 없는데 아이들이 자꾸 밟혔다.


길고 긴 기다림의 끝에 CT 결과는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의사는 왜 그런 수치가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이런 경우가 드물지만 가끔 있다고 했다. 그게 하필 나라니. 몇 개월 뒤 다시 피검사를 해보라는 말을 듣고 진료실을 나왔다.


길고 긴 한 달 그리고 열흘이 지나갔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나는 십 년만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너무 어린 지금이 아니라 생생히 엄마를 기억할 수 있는 나이까지는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상상해야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당연히 언제나 기억나는 존재이기를 바랐다.


두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글을 더 많이 써야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병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죽음 또한 그렇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애써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을 뿐 언제든 나는 아플 수 있고 떠날 수 있다. 내가 혹여 예상보다 빨리 아이들 곁을 떠난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한 건 아이들이 엄마 대신 기댈 수 있는 문장을 남기는 것이었다. 엄마는 없지만 언제든 엄마가 생각날 때, 마음이 아프고 삶이 힘들 때 내 글을 읽어보기를 바랐다. 그렇게 내 문장에 기대 엄마를 느끼고 힘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내게 쓸 시간이 주어지기를.


엄마가 정말 되고 싶었는데. 엄마라는 삶을 통해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 왔는데. 나는 왜 내가 일찍 아이들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한 걸까. 아이들은 내 속에서 나왔지만 나와는 다르다. 결국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내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클 때까지 내 건강은 내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 더 건강해져야 한다는 것도 깨우친다. 언제든 이런 파고가 또 밀려올 수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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