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대 후반과 90년 대 초반에 유년기를 보낸 나는 어릴 적 여름이면 가족과 함께 꼭 피서를 떠났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피서(避暑)의 뜻은 더위를 피하여 시원한 곳으로 옮김이다. 에어컨도 흔치 않았고 피서철은 7월 말 8월 초로 고정된 시절이라, 그때만 되면 명절처럼 도로가 차들로 가득했다. 그러니 꼭 새벽녘에 출발을 해야 했다.
목적지는 한결같이 강원도였다. 대관령을 굽이굽이 넘다 보면 동이 틀 무렵이 돼서야 동해에 도착했다. 우리 가족은 1세대 캠핑족이나 다름 없었다. 야영장도 없던 시절 텐트와 코펠, 음식 등을 차 트렁크에 한가득 싣고서 피서를 떠났다. 며칠은 바다, 며칠은 산, 그렇게 일주일쯤 뜨거운 도시를 벗어나 시원한 자연 속에 머물다 돌아오곤 했다.
캠핑이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무척 고된 여정인데도 매년 떠난 이유를 곱씹어 본다. 물과 술, 방랑을 좋아했던 아빠는 말할 것도 없고, 고된 시댁살이 속에서 워킹맘의 삶까지 살아야 했던 엄마에게는 피서가 유일한 휴식처였을 것이다. 그리 살갑고 화목한 가정이 아니었음에도 어릴 적 여름이면 꼭 피서를 갔던 기억은 내게 꽤 인상 깊은 추억으로 각인돼 있다.
얼마 전 아이들과 그런 추억을 쌓고 싶어 함께 여행을 떠났다. 제주로 이주한 지 11년 만에 제대로 떠나는 여름휴가였다. 그동안은 카페를 운영해 여름철 성수기에 휴가를 떠날 수가 없었다. 관광지다 보니 성수기와 비수기의 수입 차이가 무척 큰데, 성수기에 자리를 비우면 비수기에는 배를 곯아야 했다.
남편도 나도 사람이 붐비는 곳을 좋아하지 않아 성수기에 일을 하는 게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아이들이 태어나 기관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에어컨이 건물마다 들어서고 아무 때나 휴가를 떠나는 시대가 되었지만,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여전히 7월 말 8월 초가 방학이었다.
가뜩이나 바쁜 시즌에 아이들까지 집에 머무니, 일은 일대로 많고 아이들에게는 미안함만 쌓여갔다. 큰 마음을 먹고 제주 내 숙소를 잡아 고작 하루나 이틀 쉬어가는 게 그동안 우리 가족의 여름휴가였다. 피서철에 아이들과 제대로 휴가를 보내는 손님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남들 일할 때 쉬는 직업이 좋다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생기니 남들 쉴 때 같이 쉬는 직업이 나은 듯했다.
제주 이주 11년 만에 떠나는 여름휴가
그러다 올해 초 카페를 그만두면서, 드디어 제대로 아이들과 피서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예산이 많지 않아 해외는 힘들지만 국내는 가능할 것 같았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배를 타고 육지로 향했다. 강원도는 너무 멀어 포기하고 대신 지리적으로 가까운 전라도를 택했다. 바다는 제주에서도 자주 보니 산맥이 발달한 육지에서는 숲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첫째는 다섯 살 무렵 "더우면 숲으로 가야 한다"고 말해 지인들에게 "역시 시골 아이는 다르다"는 칭찬을 들은 적이 있다. 땡볕과 달리 숲은 햇빛이 차단되고 기온이 내려가 더위를 피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걸 아이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아이를 데리고 제대로 육지의 숲을 경험하게 해주겠다며 발길을 재촉했다.
에어컨이 빵빵한 실내에서만이 아니라 실외에서도 얼마든지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폭염 예보 알림이 울렸지만 숲에만 들어가면 괜찮다고 아이들을 달랬다. 바람을 타고 나부끼는 나뭇잎들의 청량한 소리를 들으며 아이들과 적당히 땀을 흘리는 피서를 보내고 싶었다.
이런 나의 기대는 한 곳 한 곳을 방문할 때마다 무너져 내렸다. 문밖을 나서면 한증막이었다. 아무리 늦은 밤에 걸어도, 아무리 이른 아침에 나서도 결과는 같았다. 그 어디에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울창한 숲도, 물이 콸콸 쏟아지는 폭포 주변도, 그리 시원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내게 여기에 대체 왜 온 거냐고 물었다. 고구마를 통째로 삼킨 듯 목이 메어왔다.
한 차례 소나기라도 오면 좀 나을까 기대를 해보지만, 오히려 공기 중 습도가 높아지며 불쾌지수는 더 치솟는다. 전문용어로 이를 습윤 폭염이라 부른다. 습윤 폭염의 경우 밤이 되어도 공기 중의 수분이 열을 가둬 기온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야말로 비가 안 오면 건식 사우나, 비가 오면 습식 사우나인 것이다.
더위를 피하려면 오직 냉방 중인 곳을 찾아 나서야 했다. 이 시대의 유일한 피서는 결국 에어컨을 가까이 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에어컨 아래에서만 휴가를 보내고 싶지 않았던 우리 가족은 폭풍 검색으로 찾은 무료 물놀이장으로 향했다.
물놀이 말고도 자연에서 피서를 보낼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는데, 계획은 처참히 수포로 돌아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쐬거나, 물속에 몸을 푹 담그는 것만이 유일하게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인 듯했다.
여름의 낭만은 어디에
제자리로 돌아와 사진첩을 들여다 본다. 푸르름이 물오른 자연의 모습이 퍽 아름답다. 사진은 4D가 아니니 습도와 온도까지 담아내지 못한다. 덕분에 사진 속 여름은 청량하기 그지 없다. 파아란 하늘, 뭉게뭉게 피어오른 적란운, 짙은 녹음의 숲까지. 평소 여름이라는 단어가 실제 여름보다 더 청량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사진 속 여름 또한 실제 여름보다 더 청량해 보인다.
한동안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지껄이든 마지막에 '여름이었다'로 끝내면 글이 그럴싸해 보인다는 농담이 돌았다. 실제로 해보니 여름이라는 단어는 마법처럼 글을 낭만 있게 포장하는 효과가 있었다.
애정하는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제목은 <바깥은 여름>이다. 이 책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깊은 상처를 간직한 채 어떻게든 살아가려 애를 쓴다. 저자는 아마도 인물들 내면의 온도와 바깥 세상의 온도차를 '여름'이라는 단어로 함축해 표현한 게 아닐까.
마법의 단어였던 여름의 낭만이 사라져 간다. 시골집 툇마루에 앉아 옥수수만 우물대도 충만했던 여름이, 해변의 모래가 잔뜩 묻은 발로 텐트 안에 들어가 까무룩 낮잠만 자도 천국이었던 여름이, 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 수박을 한 입 배어 물기만 해도 웃음꽃이 피던 그 여름이 사라져 간다.
기후 위기가 바꾸고 있는 건 다만 날씨가 아니라 계절마다 달리 쌓아가던 추억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여름철 낭만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