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3 ~ 09.05
나는 잠의 경계 위에서 아슬아슬한 첫날 밤을 보냈습니다.
“자면 안 돼!“
칠흑과 고요로 가득찬 병실에서 눈을 떴습니다. 엄마의 형체가 저만치에서 일렁입니다. 온몸은 뻐근하고, 목구멍은 쓰라리고, 입안은 끈적이고. 콧줄 타고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는 꽤 괜찮았습니다. 직격타에 옴짝달싹 눈만 겨우 떴다가도 너무 졸려 다시 잠에 빠졌습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엄마도 잠에 빠져, 내가 자는 줄을 모르다가 손가락을 물고 있는 집게 따라 울리는 경고음에 화들짝 나를 깨웠습니다.
“자면 안 돼!”
엄마는 밤새도록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날이 밝아 병실이 부스럭댈 즈음, 몸에 달고 있던 것들을 모두 뗐습니다. 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몇 가지 기억나는 건, 팔이 들리면 들리는 대로 다리가 들리면 들리는 대로 아무런 저항없이, 외압을 비몽사몽 맞이했다는 것과 물 적신 가재 손수건이 입 안을 여러번 쓸고 갔다는 것, 그리고 매우 불쾌한 감촉 속에서 매마른 잠을 잤다는 것입니다. 나의 몸뚱이는 추를 달고 바다에 빠진 나무토막 같이 무겁고 단단했습니다. 나는 다시 칠흑 속에서 눈을 떠, 시꺼먼 공기를 뚫고 엄마를 불렀습니다. 암흑 속에서 엄마가 꾸물꾸물 일어났습니다.
“몇 시야.” 내가 물었습니다.
“9시야. 더 자.“
나는 이제 완전히 가슴을 잃었습니다. 돌이킬 수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나중에서야 들었던 것이고 사실은 너무 아파서 그런 생각따위는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은 아침마다 침대 테이블 바닥에 붙어있는 1부터 10까지의 통증 강도 안내문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나는 9정도 되는 것 같은데요 라고 했습니다만 사실 10이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10은 너무 엄살쟁이처럼 보일 것 같아 9라고 했습니다.
나는 양팔을 몸통 가까이에 붙이고 침대 위에 가지런히 누워있었습니다. 그래도 침대를 조금 세울 수는 있었기 때문에, 누워서 물을 마시다가 사래에 걸린다거나 누워서 밥 먹다 체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가슴에 가해지는 중력이 사흘어치 유난을 떨어 침대를 아주 슬금슬금 세워야 했습니다. 잘린 것은 가슴 하난데 어째서인지 양팔과 양다리, 고개 조차도 실질적인 제구실을 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못했다는 것은 엄마가 모든 일을 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먹는 건 물론 마시는 것, 닦는 것, 집는 것 이 모든 행동에 엄마가 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내 생리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침대를 가능한 각도까지 세우고 내가 안간힘을 써 하체를 들어올리면 엄마는 간호사 선생님이 놓고 간 배변 패드를 아래에 깔았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안간힘을 써 하체를 들어올리면 이번에는 소변기를 그 위에 깔았습니다.
“와, 이게 되네.”
우리는 첫 화장실 대작전의 성공에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겉으로는 환호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울음을 삼켰습니다. 25살 먹은 다 큰 딸의 소변을 받는 엄마를 상상해보세요. 고개를 들 수 없이 초라해집니다.
“아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별 짓을 다 하네.“
소변기를 비우고 온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니까 할 수 있는거야. 너 자식이 엄마한테도 이렇게 할 수 있을 거 같지? 못해. 왜냐면 엄마도 돌아가신 외할머니한테 이렇게 못 했거든. 근데 엄마는 이것보다 더 한 것도 자식한테 해 줄 수 있어. 이거? 별 거 아니야.”
“치, 나는 그런 보통의 딸이 아니라서 엄마한테 다 해줄거야.”
“두고 봐라, 어려울걸. 근데 너 엄마한테 미안해서 울었다며.”
“누가, 내가?” 나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며 말했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너 수술실에서 나올 때 얘기해줬어. 울었다고.”
“기억 안나는 데?”
“치. 뭐가 미안하냐. 미안한 것도 많다. 아픈 건 너구만. 그리고 시간은 왜 자꾸 물어봐.“
“그건 그냥 물어봐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