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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오이 Sep 21. 2022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09.06

병실을 옮겼습니다. 사흘 만에 타는 엘리베이터가 왜 이리 멀미가 나던지요.


일반 병동의 2인실 창가 쪽에는 아주머니 한분이 계셨습니다. 아주머니는 남편분과 함께였는데 내가 오자 살짝 열린 커튼 사이로 바나나 두 개를 건넸습니다. 그러고는 으레 그러는 것처럼 어디가 안 좋아서 왔느냐 물었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폴짝 신기해하며 “어머 나도 딱 그런 상태예요”라고 했습니다. “커튼 열어도 될까요? 오래 방해는 안 할게요. 나랑 같은 환자는 처음 봐서요.” 아주머니는 복원수술을 끝냈고 내일이면 퇴원을 해 이날이 병원에서의 마지막 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가기 전에 나를 만나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변비가 생길 거거든요. 그러니까 바나나 많이 먹고 물 많이 마시고, 약 달라고 미리 간호사한테 얘기해요.”“소화가 잘 안 되면 식사로 죽 달라고 해봐요, 흑임자죽이 맛있어.” “마사지 순서 적힌 종이 받았죠? 그걸 엄마가 틈 날 때마다 해주셔야 돼요. 엄청 도움이 되거든요. 음 또 뭐가 있을까.” 아주머니는 함께 있던 남편분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셨습니다. 다정한 교수님들은 거의 모든 질문에 답을 해주셨지만 정작 내가 느낄 고통과 불편에 대해서는 확신 없는 모습을 보이셨었습니다. 특히 ‘아픈가요?’라는 질문에는 ‘다들 그렇다고들 하시더라고요.’라고만 하셨거든요. 처음에는 아주머니가 내게 보이는 동질감이 부담스러워 커튼을 다시 닫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의사도 모르는 실전의 팁을 탈탈 털어 전수해주시니 어느새 내게도 동질감이 생기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오전, 나는 엄마가 6인실로 짐을 옮기는 동안, 아주머니는 남편분이 퇴원 짐을 챙겨 나오는 동안 함께 병실 앞 복도에 서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내 등을 슥슥 문지르며 말했습니다. “나도 막 암이라고 수술해야 한다고 했을 때, 슬퍼서 맨날 울고 그랬거든요. 이 모든 게 언제쯤 끝날까, 끝나긴 할까 하고. 근데 아득해 보여도 시간이 다 해결해줄 테니 조금만 버텨요.”

아주머니와 나는 조심스럽게 한쪽 팔들로 반씩만 안고 헤어졌습니다. 아주머니의 남편분은 병실로 돌아서는 내게 종이 가방 하나를 건네며 말했습니다. “우유랑 요구르트를 좀 샀거든요. 바나나는 어제 사서 몇 송이 먹은 건데 괜찮죠? 빨리 낫길 바랄게요.”


아주머니 말씀대로 언젠가는 다 지나가겠죠.

의사 앞에서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던 것도, ‘내가 암이라니, 내 가슴이 사라진다니’하며 밤새 혼자 베개를 적셨던 것도, 수술이 무서워 담요 밑에서 기도를 한 것도 다 지나간 일이 된 것처럼 언젠가는 이것도, 앞으로 닥칠 일도, 지나간 일이 될 겁니다.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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