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2 ~09.03
9월, 입원을 했습니다.
25세 8개월 구오이(여) 이름표가 붙어있는 6인실 가운데 침대가 내 자리입니다. 부모님은 병원 지하에 있는 편의 시설들을 둘려보고 오기로 하고 난 침대 테이블에 바짝 붙어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수술 후 주의사항으로 나눠준 책자를 읽고 있었습니다. 섬유유연제를 전혀 쓰지 않은 것 같은 빳빳하고 건조한 질감의 냉정한 병원복이 문제인 걸까요. 목이 칼칼하고 열도 살짝 나는 것 같았습니다. 요망한 병원복은 입기 전엔 아무렇지 않다가도 입고 나면 나를 이제 막 아프기로 마음먹은 사람처럼 만들었습니다. 목이 칼칼하고 열이 오르는 것이 병원복 때문인지 아니면 아니면 25세 8개월 이름표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침대가 너무 딴딴하다는 겁니다.
부모님과 병원 편의시설에서 사 온 김밥과 과일, 때마침 나온 병원밥까지 나눠먹고 나니 병동은 곧장 잠잘 준비를 했습니다. “이제 가야겠다. 내일 아침 일찍 올게.”
나는 엄마 팔짱을 끼고 본관 정문까지 따라나섰습니다. 암병동은 암센터 건물에 있습니다. 암센터는 본관과 긴 통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빠는 차를 빼놓겠다면서 저만치 뛰어갔고 나는 엄마와 털레털레 사람 없는 통로를 걸었습니다. 암센터 로비는 완전히 불이 꺼졌고 통로는 여전히 불이 모두 켜져 있었습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북적거리던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의자에서 쪽잠 자는 보호자 몇 명, 소리 없이 TV 보는 환자 몇 명만 있었습니다. 괜히 등골이 으슥해, 엄마에게 더 딱 붙어 팔짱을 꼈습니다. 본관 출입구에 다다라 엄마와 깊은 포옹(한쪽 다리만 올려 매달리듯 하는 포옹)을 하고는 차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왔습니다.
암센터 가까운 통로로 넘어오자 쪽잠 자는 보호자도, TV를 보는 환자마저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다시 등골이 오싹해져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양쪽 저 멀리까지 텅 빈 통로에 나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게 마치 다른 차원으로 이동했다거나, 세상이 멸망했다거나 하는 이유로 이 세상에 나 혼자 살아남은 것 같이 느껴져 신이 났습니다. 나는 통로 끝에서부터 끝까지 몇 번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낮에 못 봤던 벽에 걸린 그림도 보고, 작은 소리로 “아~ 누구 계십니까~”하고 소리를 울리기도 했습니다. 자판기를 처음 본 사람처럼 과자 구경도 했고, 내용물을 선택하는 버튼의 초록불이 자판기의 처음 과자부터 끝 음료까지 한 번씩 훑고 지나가는 걸 가만히 보고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낮에는 항상 사람이 차지하고 있어 앉아 보지 못한 의자에 앉았습니다.
이 의자 저 의자 앉아보다가 인조 폭포가 보이는 커다란 통창 앞 푹신한 의자에 앉았습니다. 통창 밖은 칠흑 같아 빈 복도가 거울처럼 반사되어 보였습니다. 손으로 쌍안경 만들어 창에 바짝 붙어 밖을 보는데 인조 폭포는 멈췄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통창에 비친 내 모습을 봤습니다. 어제 자른 머리가 어색해 귀 뒤로 꼽아보기도 하고 뒤통수를 쓸어 올렸다 내렸다, 가르마를 이쪽으로 탔다가 저쪽으로 탔다가 했습니다. 긴 머리는 틀어 올리면 되니까 단발보다 낫지 않을까 했었던 것이 생각보다 쾌적하지 않아 이번에는 아주 짧게 잘랐습니다. 지난번에는 긴 머리를 매일같이 다시 묶느라 엄마가 떡진 머리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짧은 머리라면 묶을 일이 없으니 떡진 머리를 만지지 않아도 되고 또 가능하면 머리를 감아볼 시도도 해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낯선 짧은 머리에 병원복까지 입고 있으니 슬쩍 보면 다른 사람 같았습니다. 안내 방송이 로비를 울렸습니다. “구오이님 지금 간호사실로 오세요.”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전화가 세 통이나 와있었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고 (어딜 앉든 이런 습관이 있습니다) 지나온 통로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병실로 올라갔습니다. “안녕히 계세요~요~” 작게 통로를 울리면서요.이 밤이 지나면 내가 더 낯설어지겠지요.
수술실까지 옮겨지는 길의 둔탁하고 먹먹한 심장박동은 침대 바퀴 굴러가는 것과 그 리듬이 맞아떨어집니다. 오후 2시, 어디쯤인지 모를 병원 복도 천장 전등을 수십 개 지나, 잠시만요 하며 정신없이 인파를 뚫고 옮겨지는 케이크처럼 수술실 앞에 옮겨졌습니다. 따라오던 엄마는 한 손으로는 내 손을 잡고 한 손으로는 이미 귀 뒤에 꽂혀있는 내 머리칼을 한번 더 정리합니다.
“잘하고 와, 엄마 여기 앞에 있을게.”
“수술을 내가 하나, 나는 그냥 자고 나오면 끝나 있지.”
“으이구~” 아빠가 두툼한 손으로 내 볼 따귀를 비비며 말했습니다.
“걱정 말고, 식사들 하고 계셔요.”
나는 양손을 들어 보이며 크게 휘적휘적 인사를 했습니다. 서로의 표정을 모른 채로, 그렇게 수술 대기실로 들어갔습니다. 줄지어 세워져 있는 침대 옆에 내 침대도 세워졌습니다. 병실에서부터 나를 옮겨주신 이송팀 어르신이 내 표정을 보셨는지 담요를 다시 덮어주며 말했습니다.
“학생이 부모님 앞에서 참 씩씩하네, 잘하고 나와요.”
사실 나는 씩씩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을 숨기려는 전략이었는데 어르신이 눈치채지 못했으니 어느 정도 성공은 한 것 같습니다.
사실 나는 매우 두려웠습니다.
만약 이대로 수술실에서 잘못되어 죽어버리면 어떻게 되는 걸까. 아까 엄마 아빠 얼굴을 조금 더 확실히 봐 둘 걸. 더 크게 인사를 할 걸. 아니지,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그냥 사실은 무섭다고, 솔직하게 말할 걸. 뭔 놈의 눈물이 두렵고 무섭고 부모님 생각만 하면 나는지, 눈 비비는 척하면서 찔끔 나온 눈물을 슬쩍 닦았습니다.
누군가 올 때까지 멍하게 천장을 보고 있었습니다.
수술실로 오긴 전에 맞은 감시 림프절 검사 유륜 주사 한 방의 잔상이 여전히 내 유륜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새끼손가락만 한 주사가 그 명성대로 각오가 필요한 한 방이더군요. 안경을 벗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천장이 저 높이까지 이어진 것처럼 끝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게 나를 불안의 원형으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불안의 원형은, 내가 어쩌다가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걸까, 근데 왜 하필 나야, 아니야 이미 벌어진 일이야, 그래 봤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래 다 괜찮겠지를 빠른 속도로 돌고 도는 것을 말합니다. 그 짧은 사이, 몇 번을 돌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담요 밑에서 손을 마주 잡아 기도를 했습니다. 지난번에는 기도를 하지 않았었는데 왠지 이번에는 기도를 해야 할 것 같은, 아니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뭉게뭉게한 공기 주위로 사람들 앓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흰색 벽에 흰색 천장. 내 가슴은 지난번보다 더 무거웠습니다. 얻어터져 본 적은 없지만 얻어터진 다음날이 된 것 같은, 아 건달 6이 있었죠. 이번에는 밤새도록 얻어맞은 건달 6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몇 시 정도 됐을까.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시간이 궁금해 옆의 간호사에게 물었습니다. “몇 시예요?”
이번에는 너무 추워서 눈이 떠졌습니다. 이가 딱딱 떨리고, 침대가 흔들릴 정도로 온몸을 오들오들 떨었습니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수술하고 난 다음에는 원래 이렇게 추운 건가요. 덜컹거리는 침대를 본 간호사가 담요 아래로 따뜻한 바람을 넣어줬습니다.
갑자기 슬픔이 복받쳤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수면 마취 풀리는 걸 보면 속엣말이 줄줄 나오던데 어리바리한 속내가 결국 이렇게 드러나는 걸까요.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깊숙한 내면에서 들끓어 오른 감정이었습니다. 속엣말을 술술 불게 하는 약을 쓴 건지, 행동이며 말이며 제멋대로였습니다. 속으로는 강하게 ‘이제 그만 울 때도 되지 않았냐 ‘라고 했는데 헤롱거리는 손아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아 ’에라이 이건 약 때문에 그런 거니까 울자‘ 라며 우엥엥 울었습니다. “왜 울어요.” 옆의 간호사가 이태껏 장 있다가 뜬금없이 우는 내게 물었습니다. “엄마한테... 미안해서.” “본인이 아픈 건데 엄마한테 뭐가 미안해요. 울면 더 아파요 울지 마요.” 간호사는 귀까지 타고 들어가는 눈물을 닦아주면서 말했습니다.
엄마한테 미안하다는 말도 왜 나온 건지 모르겠습니다.
“오이 일어나, 자면 안 돼.”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