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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오이 Aug 09. 2022

전사 아마조네스

꽤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엄마는 나와 목욕탕에 가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말씀하시길, 남자는 머리 크다고(많이 배웠다고) 자랑하는 게, 여자는 가슴 크다고 자랑하는 게 제일 무식한 자랑이라고 하셨어.”

엄마는 어디가서 이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재밌습니다.

나는 식후 콜라가 소화에 도움된다는 말을 콜라 좋아하는 사람이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할머니도 아마 그러시지 않았을까 했지만, 엄마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8남매를 먹여 살린 할머니라고요. 여러 모로 맞는 말이었기 때문에, 성장기를 겪으면서도 가슴 때문에 고민했던 적은 없습니다.

엄마와 외할머니의 합동 조기교육이었던 셈입니다.


지난 부분 절제 수술로 내 오른쪽 가슴은 이미 움푹 파였습니다. 하지만 난 크게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내게 "흉터가 남습니다. 움푹 파이고 조금 울퉁불퉁할 수 있어요."라고 했을 때도 찌그러지면 찌그러진 대로 짝짜기면 짝짜기 인대로 살면 어떻겠나 하는, 가슴은 그냥 좀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 한쪽, 신장 한쪽, 팔 한쪽, 다리 한쪽 같은 어떤 신체의 한쪽에 비하더라도, 가슴 한쪽의 역할은 너무 소소하다고 말입니다.


오른쪽 가슴을 모두 절제해야 한다고 했을 때는 조금 겁이 났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나는 여성으로서 끝인 건가’ 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25세 처녀가 가슴을 잃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무리 나만 괜찮으면 돼 라고는 하지만 이성을 처음 만날 때 고민이 되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엄마와 외할머니의 합동 조기 교육의 성과가 꽤 강했는지, 나는 나만 괜찮으면 다 괜찮은거다 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아마조네스를 떠올렸습니다. 나는 전사다. 살기 위해 가슴 한쪽 쯤이야 도려내면 그만인 전사다 라고요.


아마조네스도 새벽에는 센치해집니다. 나는 예고된 바늘 꽂이 때문에 밤새 뒤척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양쪽 가슴이 나란히 함께 있는 것을 보는 것도 이제 마지막이겠구나. 이렇게 보낼 순 없어.‘

나는 야심한 새벽, 화장실을 걸어 잠그고 거울 앞에서 옷을 들어올렸습니다. 그러고는 거울 쪽으로 한 손을 들어 이쪽 저쪽 바꿔가며 짝눈을 떠, 가슴이 없어지고 난 다음의 모습을 가늠해봤습니다.


한 쪽 가슴이 없어진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옆집 사는 친구와 헤어져야 한다는 소식을 듣는 것과 비슷합니다. 헤어질 때가 되니 갑자기 고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그동안 해준 것 하나 없어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되는 그런 이별입니다. 막상 이렇게 사라져, 영영 다시는 볼 수 없다고 하니 보내기가 싫었습니다. 가슴 한쪽과 삶이 어떻게 저울질될 수 있기에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조네스의 가슴도 내 가슴도, 충분히 삶을 위해 포기할 만하다 생각했던 것은, 어쩌면 지대한 상실을 온전한 상실로 받아들이는 법을 몰랐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어쩌면 씩씩한 전사 아마조네스의 마지막 마음도 나와 같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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