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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오이 Sep 22. 2022

위로는 작은 중정처럼

09.07

병동 1층에는 중정이 있습니다. 중정은 지붕없이 하늘까지 원통형으로 뚫려있어 병동의 어느 층에서든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가 그대로 내리쬐고 창가에 서 있으면 같은 층의 건너편, 다른 층의 건너편 사람들도 볼 수 있습니다. 작은 나무가 몇몇 심어져 있고 관리자가 몇 번 정원을 손질했는데 나는 복도를 한 바퀴 돌 수 있게 됐을 때쯤부터 틈만 나면 침대에서 나와 이 중정을 내려다봤습니다.


바로 옆 1인 병실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작은 아주머니 한분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복도로 나왔습니다. “어우, 또 잔소리!”

바로 뒤이어 환자복을 입은 호리한 아주머니가 따라 나와, “화장실 슬리퍼 안 젖게 하라고!”라며 성을 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화가 난 게 아니라 투탁거리는 어조로 말했기 때문에 막역한 사이처럼 보였습니다. 화장실 슬리퍼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흘끗 대다가 키 작은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아우 이 아줌마가 참 까탈스러워요.” 라며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호리한 아주머니가 “언니, 이건 가탈스러운 것도 아니야. 그리고 여긴 내 병실이야. 내가 하자는 대로 해야 돼.” 라고 했습니다. 난 눈웃음을 짓고 다시 중정을 내다봤습니다.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며 다시 병실로 들어갔고 난 그 뒤로도 꽤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환자복을 입은 호리한 아주머니는 다시 복도로 나와, 내 옆에서 조금 멀찍이 떨어져 중정을 내려다봤습니다. 그러면서 내게 말을 이었습니다.

“이거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다는데 참 잘 지은 것 같죠? 암병동은 새로 지었는데도 1층에 내려가야 그나마 숨이 트이지 어디 갈 데가 없는데, 여긴 지은 지 오래됐어도 창을 이렇게 내놔서 숨이 탁 트이니까.”

나는 약간의 미소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암병동에서의 혀 차는 소리를 잊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날, 나는 오자마자 눈길을 받았습니다.

맞은편 퇴원하는 환자의 간병인은 내가 막 병실에 들어갔을 때부터 내게 시선을 꽂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병실을 떠나기 전, 25세 8개월 구오이가 궁금했는지, 침대에 팔을 걸치고 서서, 말을 걸까 말까 하는 눈치로 완전히 닫지 않은 내 침대 커튼 사이를 기웃거렸습니다. 그러다가 커튼 틈 사이로 엄마와 눈이 마주쳤고 준비한 말을 쏟아냈습니다.

“아휴, 쯧쯧. 내가 환자들을 많이 봤어. 언젠가는 십 대 여자애도 암이라고. 그다음으로 어린 아가씨네. 학생인가. 어쩌다가 나이도 어린데 암에 걸렸어. 쯧쯧 부모님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어.“

“아, 예. 요즘 아픈 젊은 애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엄마는 사람 좋은 척하는 기계적인 미소를 보내며 커튼을 완전히 닫았고 간병인은 혀 차는 소리를 내며 퇴원하는 환자를 따라 병실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암병동을 벗어나면 조금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암병동, 일반병동 상관없이 내 나이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곳곳에 있었습니다. 중년 여성들은 그들 특유의 친화력으로 나와 눈만 마주치면 다가와 아이고 하면서 나이부터 물었습니다. 내가 웃음으로 얼버무리면 그들은 한숨과 혀 차는 소리로 나를 잠시 동정하다가 아픈 딸에 속 끓일 부모님을 걱정하는 말을 쏟아냈습니다.

그들 말에 따르면, 나는 젊은 나이에 불운하게 암에 걸려 스스로 불행하다 여기고 있으며, 내 부모님의 세상은 뒤집혔고, 억장이 무너졌으며, 자식의 암을 자신들 탓으로 여기며 자책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침대맡의 이름표를 시작으로 입원해있는 내내 무척이나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미 내가 불운한 것만 같은,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2인실의 아주머니처럼 좋은 아주머니들도 있었으나나는 여전히 부끄러운 감정들 틈에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애초에 대화를 시작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에 눈을 내리깔고 다녔으며 노래를 듣지 않아도 이어폰을 끼고 있었습니다. 호리한 아주머니의 이야기에도 역시 큰 반응을 하지 않고 눈웃음만 보냈는데 그녀는 중정에 대한 찬양을 이어했습니다. 난 계속해서 대화를 시작하지 않기 위해 병실로 돌아갈 타이밍만 보고 있었습니다.


호리한 아주머니는 자신이 자주 가는 산 이야기를 하다가, 높고 파란 하늘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 같은 날에는 바람도 선선하니 나들이를 가면 정말 좋겠다고. 그렇게 쉼 없이 말을 하다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는 자신이 찬양한, 눈앞의 중정과 그 위에 내리쬐는 날씨를 지그시 감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슬슬 자리를 뜨려하는데 그녀가 중정의 하늘에 시선을 꽂은 채 말했습니다.

“학생, 어디가 아픈진 모르겠지만, 우리 열심히 치료받아요. 멋지고 좋은 거 많이 봐야죠. 이건 세발의 피야. 더 멋진 게 많다고.”


내가 얼마나 불쌍하고 불운한 젊은이인지, 부모님이  얼마나 끔찍한 악몽을 꾸고 있는지, 쯧쯧 혀 차는 소리를 예상했는데  그때 작은 아주머니가 병실에서 나와, 호리한 아주머니에게 아까 같은 어투로 말했습니다. “학생 심란하게 괜히 이상한 소리 하지 마!”그러면서 나를 보고는 “학생, 이 아줌마가 한 말 신경 쓰지 마. 다 잔소리야 잔소리.”라고 했습니다. 호리한 아주머니는 내게, 신경 쓰지 말라는 듯한, 그런 찡긋찡긋 하는 표정을 보이고는 “아 언니 또 수건!” 하면서 병실로 들어갔습니다.

키 작은 아주머니는 내 어깨를 살짝 쓰다듬고 다시 병실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괜히 속 콧물을 한번 훌쩍이고 병실로 돌아와, 저녁 반찬으로 나온 감자조림을 먹으며 생각했습니다. 위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위로라는 건 그냥 그 자리에서, 다가오는 하늘을 구름을 바람을 자신의 품에 담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모든 사람들을 끌어안는 저 중정처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고요.


엄마는 어릴 적부터 줄곧 포옹을 강조했습니다.

“포옹에는 모든 것이 담겨있어. 특히 포옹의 마지막 동작, 등을 토닥이는 건 말없이도 품 안의 사람을 웃음 짓게도, 울음 나게도 하거든. 그러니까 일단 만나면 포옹을 한 번 하는 거야.”


우리는 중정처럼 가만히 포옹해야 합니다. 장황한 말 없이도 저절로 세상 멋지고 좋은 것을 볼 기대를 품게 해주는 것. 2인실 아주머니의 옅은 포옹과 호리한 아주머니의 눈짓과 아담한 아줌마의 손짓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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