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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오이 Sep 25. 2022

가족이란 이름 아래 침묵

6일째 아침 식사를 마쳐 갈 무렵,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나 오늘 휴가 나가, 데리러 와 줄 수 있어?”.


동생은 내 소식을 모른 채 입대를 했습니다. 부모님은 그 안에서(군대) 하면 뭘 하겠냐, 해도 걱정밖에 더 하겠냐며 안 그래도 심란한 애, 괜히 걱정거리 늘이지 말자 하셨거든요. 평소 동생은 그 어떤 것들로부터 자신의 일상이 흔들리도록 두지 않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갑작스러운 일에도 크게 반응하지도, 신경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부모님도 아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지만 부모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의지와 달리 저절로 흘러넘치는 게 자식 향한 걱정 아니겠나 싶어, 부모님 의견대로 동생에게는 아무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하지 말자는 것이었지 거짓말을 하자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휴가 나오는 이날 이야기를 해야 했습니다. 아빠가 동생을 데리고 오면서 내 소식을 전했는데 뭘 어디까지 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호들갑이 없다 하더라도, 첫 휴가를 축하하는 엄마의 진수성찬 대신 아빠가 전하는 누나의 소식에 조금 놀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나는 옷 밖으로 주렁거리는 배액관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세수도 하고 머리도 빗었습니다. 거울을 몇 번 확인하고 복도에서 동생을 기다렸습니다. 동생은 멀리서부터 내 눈을 보며 왔습니다. 우리는 어느 때처럼 ‘여’하는 턱 인사를 하고 휴게실에 앉았습니다.

왜 이렇게 휴가를 빨리 나오냐, 언제 복귀하느냐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군대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군대 선임이 있다느니, 친한 동기가 있는데 걔가 웃기다느니, 별 것도 아닌 데 갈구는 동기를 한방 먹여주고 싶다느니 하는 이야기와 저번 주에 나온 김치찌개가 너무 맛이 없어 누나가 끓여준 콩나물국이 먹고 싶었다는 이야기, 먹고 싶었던 음식을 이번에 꼭 먹고 들어가겠다는 제법 군복이 몸에 맞은 이가 할 법한 그런 이야기를  주욱 늘어놓았습니다. 그 모습은 동생의 평소와 같았지만 어딘가 철저한 의식으로 계산된 행동처럼 보였습니다.


동생은 내 목 아래로는 잠깐의 눈길도 없이 내 눈만 보며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만 할 뿐 나에 대해 묻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는데, 뭐 하고 있었어? 밥은 먹었어? 같은 기본적인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잠깐의 틈을 타 “머리를 일주일째 안 감았더니 찝찝해 죽겠어”라고 해도 헤헤 웃고는 다시 본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잠깐의 공백도 만들지 않고 오로지 본인의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병원 생활에 재정비가 필요했던 엄마는 겸사 아빠 차편에 잠시 집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옷가지를 챙기러 간 엄마와 아빠를 기다리는 동안 여분의 대화를 나눴습니다. 휴가 나온 지 두 시간밖에 안 됐는데 동생은 벌써 복귀하기 싫다는 소리를 해대며 찡찡거리더니 뭔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떨구고 군화 발로 벽을 툭툭 치며 말했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제발 얘기 좀 해줘. 나한테만 말 안 하는 건 좀 아니지. 나도 이 집 사람인데.“


지난달, 그러니까 입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엄지발가락을 다쳤는데 발톱 뽑고 꿰맸어. 근데 걱정돼. 누나 이거 괜찮은 건가? 근데 누나만 알고 있어.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 괜히 걱정만 하지.“ 동생의 부탁처럼 처음 며칠은 엄마에게는 아무 말 않고 있었는데 갈수록 나도 걱정이 돼서 엄마에게 털어놨습니다. 그때 엄마의 반응은 이날의 동생과 같이 “아니 왜 엄마한테 말을 안 해.”였습니다.


가족 내 안 좋은 소식은 매번 침묵과 공유 사이 애매한 경계선에 놓입니다. 부모님에게 자식은 걱정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미성숙한 존재이고, 자식에게 부모님은 걱정 말고도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아 죄송한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걱정은 나누면 줄어들고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된단 말도 있는데, 내 소식을 알리지 않기로 한 부모님이나 발톱 깨진 일을 알리지 않기로 한 자식들이나, 이상하게 부모, 자식 간에는 행복도 걱정도 모두 나누면 배가 된다고 생각할까요.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도 왜 돌아가며 침묵하고 돌아가며 나무랄까요. 우리는 앞으로도 가족이란 이름 아래에 침묵할 겁니다. 왜 이럴 수밖에 없는가, 이유를 생각해보지만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봐도 사랑뿐입니다.


동생이 이어 말했습니다. “그리고 누나, 머리카락 다 빠져서 대머리 돼도 너무 걱정 마, 나도 같이 밀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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