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드랑이가 아파, 복도에 서 있는 시간을 줄여야 했습니다. 겨드랑이가 아프다고 하니까 좀 이상하게 들리는 데, 들리는 것처럼 정말 이상한 통증이었습니다. 쇠고리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있는 것 같았거든요. 어째서 이런 통증이 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쩔 수 없이 유일한 낙이었던 복도 산책은 미뤄두고 온종일 침대에만 있었습니다.
병실의 낮과 밤은 드셉니다. 고요를 등에 없고 예전 나의 낮과 밤에 대한 기억을 쓸어가버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하루가 너무도 깁니다. 아마 6인실 창가 자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예전 나의 날들을 모조리 잊었을 겁니다.
6인실 병실 사람들은 그 이유가 타인에 대한 배려든 본인을 위한 사생활 유지든, 아무튼 어떤 이유에서건 각자의 침대 커튼을 닫고 생활합니다. 굳이 커튼을 열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열릴 기대를 갖지도 않습니다. 가끔 서로 통해, 고향이 어딘지, 어디가 안 좋아서 왔는지 같은 것들을 묻고 답하기도 했지만 상대의 인고에 몇 마디 보태는 게 전부였고 처음 한 번의 대화로 더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화에 참여하길 원하는 사람과 원치 않는 사람을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알았고 그런 대화마저도 아주 간결해 소란스럽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서로의 근황을 묻다가 각자의 역에서 쿨하게 하차하는 지하철 노약자석의 어르신들과 비슷해보이기도 합니다.
항상 닫혀 있는 커튼이 동시에 작은 틈을 보이는 시간은 식사 시간뿐이었는데 그 잠시 열리는 커튼 사이로 간식을 주고받기도, 이쪽 보호자가 자리를 비우면 저쪽 보호자가 이쪽 환자의 식판을 옮겨주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서로 방해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선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마치 서로의 고독함을 덜으려는 은밀한 친목 도모의 현장같달까요. 나는 우리 6인실의 이런 매너가 참 좋습니다. 목소리로만 어느 침대 환자인지 알 뿐, 이름도 나이도 알 필요 없는 사이. 나는 병실을 모든 고독이 모이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암울한 6명이 모여 고독을 쏟아내는 곳이요. 하지만 병실은 고독을 쏟으러 왔다가 덜고 가는 곳입니다. 서로의 고독을 은밀하게 도닥이는 곳입니다.
거기에 소란스런 초록의 소리와 찬란한 밤의 빛깔까지 모두 한 데 뒤섞으면 병실의 고독은 어느새 형체를 잃고, 나는 승자가 됩니다.
나무 흔들리는 것을 봅니다. 조각조각의 구름 같은 나뭇잎이 살랑입니다. 나무는 아주 멀리있지만 매우 크고 우거져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여기서도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람이 나뭇잎과 뒤엉켜 내는, 초록의 소리입니다. 파란 하늘 속에서 열렬하게 흔들리는, 눈을 감고 있어도 분명하게 들리는 소리. 초록의 소리는 풀밭 위에 누워 가득 찬 하늘을 보는 기분이 들게 합니다. 하늘을 보고 감탄하던 어느날의 아주 맑고 개운한 사람이 된 것처럼.
배달 오토바이와 막차의 부산함이 물러간 도로를 봅니다. 신호등은 꾸준히 바뀌는데 지나가는 차도 사람도 없습니다. 저 온전한 도로로 뛰어들어 춤을 추는 상상을 하다가, 간호사가 배양액을 더는 찰그락 소리에 깹니다. 간호사가 있던 자리 뒤로 회남 색 새벽이 있습니다. 충만한 밤의 빛깔 한가운데 온전한 도로가 들어차 있습니다. 몇 번의 선잠과 깨어남을 반복해도 한참을, 큰 변화 없이 거기에 있습니다. 다시 잠에 빠졌다가 코가 막혀 일어나면 어느새 첫차와 환경미화 차량이 서서히 아침을 끌고 옵니다. 이렇게 모두의 밤이 모두의 아침이 되는 과정을 목격하는 것은 꽤 황홀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