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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오이 Sep 28. 2022

컴백홈

집에는 집 특유의 기류가 있습니다. 현관문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집의 기류가 나의 도착을 반기죠. 밖에서 곤두세웠던 방어 기제는 신발과 함께 벗어버립니다. 집에 돌아오는 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자체로 기적적인 일입니다. 우리의 ‘다녀오겠습니다’와 ‘잘 다녀와’는 그 목적을 잃은지 오래입니다. 얼마나 굳은 염려인지 잊은 채 내팽겨쳐지듯 던져지는 날이 많습니다. 집 내음이 10일만에 들어오는 나를 반깁니다.


집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한 건 머리를 감는 일이었습니다. 9일 동안 머리를 감지 않으면 두피는 상쾌함이 뭔지, 개운한 게 뭐였는지 모르는 상태가 됩니다. 병동 아래층에 머리를 감겨주는 시설이 있다고는 듣긴 했는데, 머리 며칠 못 감는 게 어디 대수겠냐라는 귀찮은 마음으로 퇴원하면 감자며 차일피일 미룬 것이 9일이나 지나버렸습니다.


머리를 감기 전, 엄마와 난 화장실 앞에서 머리 감는 방법을 잠시 논의했습니다. 머리를 감을 때는 보통 앞으로 숙여 감거나, 서서 감거나, 뒤로 누워 감거나 셋 중 하나인데, 앞으로 숙일 수 없었고, 샤워를 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뒤로 누워 감는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다만 바닥에 등을 붙이고 눕는, 완전한 누움의 상태로는 2분 정도 있을 수 있어서 2분마다 앉았다가 다시 누웠다가 하기로 했습니다.


수건을 목에 두르고 화장실 문지방에 어깨선을 맞춰 머리만 화장실 안으로 들어 가게 누웠습니다. 자 어머니 준비되셨는가요. 내가 눕자마자 엄마는 내 머리카락에 물을 뿌렸습니다. 하지만 열흘 만에 감는 머리카락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죠. 아무리 물을 뿌려도 머리카락이 젖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샴푸질을 했습니다. 그 사이 2분 여가 지났고 나는 일어나 앉아 통증이 가시길 기다렸다가 다시 누웠습니다. 엄마는 또다시 재빨리 샴푸를 헹구고 다시 샴푸질을 했습니다. 나는 다시 일어나 앉았다가 통증이 가시길 기다렸다가 다시 누웠고 그렇게 샴푸질을 세 번 정도 했을 때 비로소 두피가 말끔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 상쾌하다는 건 이런 것이지.


몇 번을 누웠다가 일어났다가 한 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번거로움 쯤이야, 드라이기 바람이 부는 순간 날아가 버렸습니다. 드라이기 윙윙 소리와, 따뜻한 바람, 머리칼에 남은 물방울이 튀는 감촉에 눈이 스르륵 감겼습니다. 이, 집이라는 건 이런 곳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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