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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오이 Sep 29. 2022

미뤄왔던 가슴과의 해후

밤이 되면 낮에는 한쪽만 막히던 코가, 양쪽으로 꽉 막혀버리는 것을 경험해보신 바 있으실 겁니다. 면역체계가 달라져서라고 하는데, 나 역시 밤이 되면 더하기에 더하여 곤궁했습니다.


집에 온 날부터 밤에는 제대로 자 본 적이 없습니다. 50도 정도의 각도를 유지하기 위해 등 뒤로 이불 두세 개를 더미로 쌓아 경사를 만들었는데 쌓은 이불이 자꾸만 미끄러져 내리고 무너졌습니다. 몸이 점점 바닥과 가까워지면 확장기가 갈비뼈를 집어삼켰습니다. 갈비뼈가 짓이겨지면 나는 화들짝 눈을 뜰 수밖에 없습니다. 덮고 있던 이불을 왼손으로 휘감아, 몸을 비비적대며 바로 앉습니다. 숨을 고르고 통증을 삭이다가 옆의 엄마를 깨워 이불을 다시 쌓았습니다. 이를 예닐곱 번 반복하면 날이 밝았습니다.


수술 이후 단 한 번도 가슴을 내려다본 적이 없습니다. 교수님이 붕대를 풀 때나 감을 때나, 수술 부위와 배액관 구멍을 확인을 할 때나, 나는 계속 허공을 보고 있었습니다. 마주하면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달까요.


퇴원일 아침, 교수님으로부터 미션을 하나 부여받았습니다. “배액관 꽂았던 자리에 구멍이 두 개 남았는데, 빨간 약으로 소독하고 밴드를 붙이세요.” 까짓 거 별 거 아닌 미션이었습니다. 하나, 소독을 하고, 둘, 밴드를 붙인다.

하지만 가슴과의 첫 해우에 나는 말과 달리 화장실 거울 앞에 머뭇거리는 마음으로 섰습니다. 화장실 문을 잠그고, 거울을 보면서 해야 하나 아니면 직접 내려다봐야 하나 하는, 벌레를 휴지로 잡아야 하나 파리채로 잡아야 하나 같은, 무의미한 고민을 잠깐 하다가 숨을 들이쉬고 붕대를 풀었습니다.


확장기의 형태 그대로 부자연스럽게 불룩히 드러난 가죽, 푹 꺼진 겨드랑이. 가슴 중앙부터 겨드랑이 밑까지는 붉은 절개 자국이, 교수님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던 유륜도 가슴으로서의 형체도 없는. 이게 내 가슴입니다. 유래 없는 난도질에 한숨을 쉬다가 이마를 짚다가 거울을 보다가 몇 번을 그랬습니다.


그 사이 한참이 지났는지 아니면 엄마의 마음이 급했는지 엄마가 화장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나는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내가 화장실 문을 잠그고 혼자 거울 앞에 선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런 내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소독해야 하는 구멍은 보이질 않고 엄마는 문을 두드리고, 나는 도저히 이 상황을 혼자 해결할 수 없어 화장실 문을 열었습니다.


“엄마 나 딱 한 번만 도와줘. 다른 건 보지 말고 소독만 해 줘.“

“잘할 수 있을까. 떨리는데. 아프면 어떡해.“

”안 아파. 그냥 딱 소독만 해 줘. 알겠지?“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몰래 울고 서로 알아도 모르는 척을 했었습니다. 마주 보고 운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엄마는 내 처참한 실루엣을 힐끗 보고는 뒷걸음질 치며 그동안 눌러왔던 속앓이를 터트렸습니다.

“엄마 그만 울어 우리 이제 울 시기는 지났어.” 나는 멋쩍게 말했지만 누가 울면 우는 타입이라 엄마를 따라 울었습니다.

“왜 엄마가 울어.”

“속상해서 그런다.”

“그만 울고 빨리 소독이나 해 줘.”

우리는 가슴 한쪽을 두고 이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주 보고 울었습니다. 나는 정말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우는 거라고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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