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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오이 Oct 02. 2022

피크닉 자세를 성공하고 말 거예요

나의 우측 팔은 완전히 그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몸은 우측으로 기울어졌고 어깨는 끊어질 듯 간신히 매달려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부터 달고 온 겨드랑이의 쇠고리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겨드랑이라도 어떻게 할 수 없나 고민을 하다가, 단추 달린 옷을 입고 명치 부근의 단추 하나를 풀어 그 사이를 간이 암(arm)슬링으로 사용하는, 가히 천재적인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이로써 나의 겨드랑이는 한층 안정을 찾았지만 아쉽게도 팔 전체에 먹혀든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재활치료실로 보내졌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왕복 두 시간의 덜컹이는 고행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엄마 탓은 아닙니다. 거지 같은 도로 때문이죠. 십여 분간 물리치료를 받고, 재활치료실로 넘어가 팔 올리는 연습을 했습니다. 첫날에는 손으로 어깨를, 둘째 날에는 엉덩이를, 셋째 날에는 옆구리를, 넷째 날에는 뒤통수를 짚었습니다. 하지만 바보 같은 나의 우측 팔은 그 방법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각도로, 어떤 경로로 어깨에 닿아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그 주변의 것들과 너무 돈독해져 있어서, 팔을 들면 복부와 골반 근처의 피부까지 딸려 올라갔고 겨드랑이 피부는 찢어질 것 같이 팽팽해졌습니다. 그래서 뻗으려고 할수록 오른쪽 까치발이 들렸습니다.


재활치료를 오간 지 3주 차가 되자, 나는 내 어깨와 엉덩이를 마음대로 만질 수 있게 됐습니다. 주머니에 손도 넣을 수 있고 수저질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뒤통수를 짚는(나는 피크닉 자세라고 했습니다) 것만큼은 여전히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다음날 아침이 되면 다시 살이 오그라들었습니다. 그래서 아 이런 식으로라면 영영 손을 들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라며 징징거렸습니다.

“아니, 이게 왜 안 되냐고.”

내가 피크닉 자세에 열을 올리자 옆에 있던 아빠가 말했습니다.

“더 연습해야지. 네 할아버지 봐라. 할아버지는 예전에...“

내가 기억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할아버지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 채로 살아오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손자들에게 다리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셨는데 사고로 다리를 다쳤고 수술을 했는데 의사가 한쪽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답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할아버지가 걷지 못한 적은 없습니다. 아흔 가까이의 나이에도 변함없이 새벽마다 체조를 두 시간씩 하시고, 아령도 하십니다. 날마다 서울 곳곳으로 외출을 하시며 등산도 하십니다.

“그러게.” 나는 그렇게나 많이 들었던 할아버지 다리 이야기가, 할아버지의 불굴의 의지가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그 할아버지의 그 손녀니까 포기만 않으면 돗자리 위에서 발라당 피크닉 자세를 하는 날이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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