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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오이 Sep 26. 2022

의료진의 소명을 대하는 방법

잠결에 누군가 속사이듯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눈을 뜨고 보니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여성이, 동이 막 트는 창밖의 옅은 새벽빛을 등 지고 서 있었습니다. 여성은 차가운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서둘러 뛰어온 사람처럼 가쁘게 몰아치는 숨을 다스리며 말했습니다.

“주무시는데 죄송해요. 오늘 퇴원하신다고 들었는데 제가 지금 퇴근을 해서요. 인사하고 싶어서 왔어요. 그동안 힘드셨던 게 마음에 걸려서... 병원에서 또 뵙자는 말은 하면 안 되지만 우리는 또 봐야 하니까 잘 회복하시고 다음 수술 때 봬요.”


곤궁을 겪어본 나의 아버지는 이전부터 내게, 좋아서 하는 일은 하나도 없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지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병실 문 아래로 새어 들어오는 복도의 불빛을 보니 ‘먹고살자고 하는 짓’ 그 이상의 것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간호사들과 그 사이 정이 들었습니다.

열흘이면 정이 들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점심 주사를 놓으러 온 간호사는 매번 자신의 손에 온기를 불어넣으며 주사를 놨습니다. 주사를 놓는 동안 점심식사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떡볶이가 얼마나 조화롭지 못한 음식인지 설명하면, 간호사는 떡볶이가 얼마나 완벽한 음식인지 설명하는 식이었습니다. 나처럼 팔에 털이 많은 간호사와는 어린 시절에는 창피했노라고, 그동안 서로처럼 털이 길고 많은 사람은 만난 적이 없었는데 이제야 만났다며 신기해했고, 소독실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는 혼이 나간 젊은 의사들을 보고 숙연해져서는 '사는 게 뭔지'하며 같이 한숨도 쉬었습니다. 복도에서 잠깐 서성이면 당장 침대로 돌아가라던 간호사는 내게 줄 주사나 약이 없어도 내가 침대에 잘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마지막 날 새벽에는 배양액을 재며 기쁨의 눈빛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간호사는 병실문의 경계선 밖, 뒤집힌 세상에 사는 것 같습니다. 간호사뿐만 아니라 모든 경계선 너머의 이들은 밤을 낮처럼 살고 내 시간을 남에게 쏟습니다. 성형외과의 젊은 의사들도 그랬습니다.


매일 아침 소독실은 안팍으로 매우 바쁘게 돌아갔습니다.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가 보호자와 짝을 지어 있었고, 젊은 의사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녔습니다(의사 체계를 몰라서 직급을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머리는 항상 덜 마른 상태이거나 떡이 져 헝클어진 상태였고 며칠 해를 못 봤는지 아니면 잠을 못 잤는지 아니면 둘 다인지, 안색이 누렇게 떠 퍽퍽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곱슬의 긴 머리를 젖은 채로 질끈 묶은 여자 의사의 시선은 매번 바닥을 향해 있었습니다. 걸어갈 때도, 뛰어갈 때도 바닥을 보고, 내가 질문을 하면 나를 흘끔 보고 다시 바닥을 보고, 대답을 했고 붕대를 풀 때도 붕대 푸는 게 끝나면 바닥을 보는 식이었습니다. 그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바닥에 뭐가 떨어져 있나 하고 시선을 따라 바닥을 살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그랬기 때문입니다.


헝클어져 까치집을 짓고 오는 남자 의사는 누렇게 뜨다 못해 갈색빛으로 넘어간 안색을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낯빛이 안 좋은지 나와 자리를 바꿔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또한 질문을 하기 쉬운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계속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나와 마주하는 시간은 커튼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고작 4~5분 남짓이었는데 그 사이 한숨을 네 번 정도 내쉬었습니다. 이렇게 보니 일분에 한 번씩이었네요. 그렇게 한숨을 들으면 나도 덩달아 한숨이 났습니다. 어느 날은 가운 단추를 밀려 잠그기도 했는데 내가 선생님, 단추 밀려 잠그셨어요라고 하면 놀랍지도 않다는 눈치로 단추를 풀며 중얼거렸습니다.

“쉽지 않네요. 하- 쉬운 게 하나도 없어요. ”

그러고는 다시 단추를 똑같이 밀려 잠갔습니다.


뒤집힌 세상에 사는 이들에게는 희생, 헌신, 의로움, 사명감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단순히 먹고사는 것만을 목표로 해서는 가질 수 없는 단단한 의식입니다.


물론 '의료진, 요양병원 화재 속 먼저 탈출', '흉기난동 부실 대응 경찰', '경찰 월급이 고작 300만 원 받는데 우리가 목숨을 내놓아야 하냐' 글처럼 단단했던 의식이 물러지거나 애초에 없었던 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간호사 준비를 하던 친구는 어느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희생정신이 부족한 것 같아. 일단 환자가 나 때문에 잘못될까 봐 두려워.’ 뒤집어진 세상을 감당하기 어려워한 친구는 간호사 준비를 그만뒀습니다.


따지고 보면 주사가 아프든지 말든지 놓기만 하면 그만이고 점심을 뭐 먹었는지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같이 고된 삶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도 없고 입원이 길어져도 마음 쓸 필요 없습니다. 굳이 퇴근하다가 다시 돌아와서 퇴원을 축하해주지 않아도 됩니다. 실수만 않고, 받은 만큼 일하는 것으로도 성과가 달성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들로부터 받은 것들에 대해 곰곰해졌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뒤집어진 세상에서 단단한 의식을 가진 채 살아가게 하는 걸까요. 나는 그들이 헌신하는 이유를 모릅니다. 다만 그들을 '원래부터 거기 있었고 앞으로도 당연히 거기 있을 것'이라고 여기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압니다. 그들의 소명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것이라는 걸요. 나는 자각하지 못한 어느 순간에 발현될 수 있는, 우월의식을 잘 다스리자 마음 먹었습니다. 그게 소명을 가지지 못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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