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라이프, 선물 같은 삶
여름은 1년 중 가장 많은 이들이 강릉을 찾는 계절이 아닐까 싶다. 2011년 뜨거웠던 여름, 강릉으로 이사를 했는데 첫째 아이를 데리고 마실 다니듯 바다를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했다. (지금도 이 사실은 여전히 내겐 신기한 일처럼 느껴진다) 차 트렁크에는 언제나 모래 놀이를 할 수 있는 도구 몇 가지와 피크닉 매트를 싣고 마음이 내킬 때마다 바다를 보러 가곤 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 장난감은 없지만 어디든 펼 수 있는 의자와 매트를 싣고 다닌다.
휴가철에는 관광객들로 강릉의 곳곳이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아침을 먹고 조금 부지런하게 바다로 향하면 한적하게 여름 바다를 즐길 수 있다. 집에서 수영복을 갖춰 입고 간단한 간식거리를 챙겨서 차로 15분여만 달리면 쪽빛 하늘을 품은 바다가 펼쳐지기에 날씨가 허락하는 한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로 간다. 바다 수영은 마치고 나서 정리할 일들이 많긴 하지만 그냥 보내 버리기엔 여름 바다는 너무나 아름답다. 10년째 바다를 마주할 때마다 이렇게 감탄하게 될 줄이야.
해가 길어지는 여름엔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혹은 간단하게 저녁 도시락을 챙겨 경포호수 공원으로 산책에 나선다. 무엇을 먹든 꿀맛이다.
뜨거운 여름 속에서 점점 짙어 가는 나무와 잔디는 풀벌레와 철새 그리고 오고 가는 모든 이들에게 쉼을 선물한다. 모든 것이 조화롭고 평화롭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의 경포호수, 때로는 붉은빛으로, 분홍빛으로, 보랏빛으로 물드는 하늘과 호수의 물결은 장관을 이룬다.
경포호수 공원 내 연꽃 감상도 여름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피어난 자태만 보면 그 아래 늘 축축한 땅이 있으리라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향도 향이지만 꽃잎이 지닌 색감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이 처음인 듯 감탄하고 또 감탄한다. 그렇게 감탄하며 살고 싶다.
제철 과일을 먹듯이 제철에 피는 꽃을 감상하며 살아가는 삶은 즐겁다. 여름의 꽃, 수국은 토양의 성질에 따라 다른 빛깔을 보여주는데 여름의 푸른 하늘색을 닮은 수국과 고급스러운 보랏빛 수국은 무더위 속에서 청량감을 느끼게 해 주어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된다. 자연의 색감은 언제나 경이롭다.
특히,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안 곳곳에 핀 수국은 그곳의 운치를 더해주는데 오래된 고택과 환상의 조화로움을 이룬다. 잘 정돈되지 않은 정원이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완벽하게 정리 정돈된 사람보다 약간의 빈틈을 보이는 사람에게 더 끌리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능소화는 강릉에 와서 알게 된 꽃인데 동백처럼 통꽃이지만 넝쿨 식물로 담벼락을 타고 꽃을 피우는 모습이 정말 매혹적이다. 예전에는 직책 높은 양반 댁에만 심을 수 있던 귀한 꽃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렵지 않게 주택가나 그리고 가로수에서도 능소화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강릉으로 이사 오기 이전에 내가 이렇게 많은 감자와 옥수수와 같은 구황작물을 먹었었나 싶다. 여름이 되면 특히 자주 먹게 되는 로컬 음식들을 통해 내가 이제 진정한 강원도 사람됨이 실감 난다. 강릉의 지인들 중에는 크고 작은 텃밭을 일구며 사시는 분들이 많은데 덕분에 직접 농사지은 귀한 감자와 옥수수를 얻게 된다. (작은 텃밭을 가꾸며 살고 싶은 마음에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베란다 텃밭에 도전.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처음엔 찰옥수수를 맛있게 삶는 방법도 잘 몰랐지만 이제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수확한 옥수수는 바로 쪄서 먹으면 가장 맛이 좋고 조금 식힌 후엔 옥수수 알갱이를 떼 내어 밥을 지을 때, 빵을 만들 때 넣으면 식감이 참 좋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