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말고, 강릉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강릉에 멋진 공연장이 들어섰다. 좋은 공간이 마련되다 보니 수준 높고 다양한 공연을 대도시, 수도권에서만 즐길 수 있을 거라는 편견은 이제 먼 나라 이야기가 된 셈이다. 강릉에는 시립교향악단과 시립합창단이 있는데 정기 연주회와 찾아가는 음악회를 통해 강릉 시민들에게 클래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고 있다.
강릉으로 이주하고 둘째 아이를 출산한 후, 공연, 전시 관람에 목말라하고 있던 시기에 우연히 알게 된 '미술관 음악회'는 정말 멋진 선물이었다. 어린아이를 안고 미술관 전시 공간에 편안하게 앉아 실내악을 즐길 수 있는 도시라니. 초창기에는 홍보가 많이 되지 않아 관객들이 많지 않았지만 한 번도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와 본 사람은 없을 정도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이벤트가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잠시 멈춘 이 이벤트가 어서 다시 재개하길 간절히 바라는 시민 중 한 명이다.
강릉시립교향악단의 정기 공연은 다양한 클래식 음악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얼마 전 지휘자가 바뀌면서 교향악단의 전체적 연주 분위기는 더 힘 있어졌고 생경한 음악들도 종종 연주된다.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 값으로 약 2시간 동안 클래식과 함께 쉼의 시간을 가지는 것, 강릉살이의 큰 즐거움이다. 대도시 같았으면 이 만큼의 비용을 가지고 이런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공연장에 갈 때마다 든다. 그래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음악회를 찾으며 '더 감사하게, 행복하게 누리자' 다짐한다.
정기 연주회에 자주 다니다 보니 무대 위 단원들의 얼굴도 이제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데 특히, 악장님은 언제 보아도 카리스마가 넘치신다. 얼마 전에는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를 마친 바이올리니스트가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인사를 하고 무대 위와 뒤를 몇 번이고 오갈 때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 주셔서 앙코르곡을 3곡이나 듣는 영광을 누렸다. '악장님! 브라보!!!!'
강릉의 대표 관광명소 '선교장'에서는 좋은 공연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알록달록 나뭇잎이 물들어 가고 파란 하늘 아래 멋진 한옥을 배경 삼아 진행되는 음악회는 계절의 운치를 더해준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 강릉 시립합창단은 익히 알고 있는 한국의 가곡부터 가요, 재즈, 오페라, 영화 OST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시민들에게 선사해 주었다. 멋진 화음으로 감동을 주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편곡과 음색으로 유쾌함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멋진 자연경관을 지닌 강릉의 곳곳은 훌륭한 무대가 된다. 아름다운 숲과 바다, 호수와 공원에는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고 그 안에서 관객들은 자유로움과 행복감을 누린다. 문화와 예술이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느끼고 호흡할 수 있는 삶, 강릉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