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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Oct 28. 2022

바다 내음 가득한 도시

이민 말고, 강릉 

'이민 말고, 강릉' 글쓰기가 자꾸 미뤄지면서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이 작업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태블릿과 키보드를 들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나왔다. 좋아하는 자리는 창가가 아니라 카페 가장 뒤쪽 자리. 창가에 앉으면 바다는 가까이 보일지 모르겠지만 건물 밖 찻길이 보여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다. 가장 뒷자리 소파에 앉으면 대형 크루즈를 탄 것처럼 큰 통유리창 너머로 광활한 바다만 내 시선에 닿는다.     


며칠간 이어졌던 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이 드러났고 바다는 잔잔하고 여름 내음이 물씬 났다. 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바닷가 앞 카페에는 연신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이들이 많이 보인다.     


문득, 22년 5월의 인터넷 뉴스가 생각났다. 미국 PGA 챔피언쉽 경기 중 타이거 우즈의 공이 갤러리들이 몰려 있는 러프에 떨어졌는데 그때 찍힌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우즈가 공을 치려고 갤러리 쪽으로 오자 모두 휴대폰으로 그의 모습을 찍고 있었지만 오직 한 남성만이 캔 맥주를 두 손으로 쥐고 우즈의 샷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모습은 순식간에 SNS에 퍼졌고 한 맥주 회사가 그를 찾아내 광고까지 계약했다. 15초짜리 광고에서 그의 모습과 함께 "즐길 때만 가치가 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모처럼 떠난 여행에서 마주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두고두고 꺼내 보려는 마음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풍경을 몇 시간을 달려 눈으로 잠시 보고, 마음에 드는 컷이 나올 때까지 사진으로 찍고, 그리고 돌아간다. 강릉에 산다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차로 10분,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한 광활한 바다를 마주할 수 있는 특권, 그런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강릉은 잠시 휴식을 취하기 좋은 도시일 뿐, 살고 싶은 도시가 되지 못하는가 생각해 본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빛깔과 풍경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 얼마나 근사한 삶인가. 여유로워서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자연 가까이 있으니 언제든 쉬어갈 수 있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닿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카메라를 들 필요도 없다. 그 순간을 오롯이 즐기는 삶을 살아갈 뿐이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변하는 바다의 빛깔은 우리네 감정과 표정을 닮은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부터는 어둡고 우울한 모습의 바다도 성난 바다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게 되었다. 


해 뜨는 동해에 살아가는 것은 내게 큰 의미를 지닌다. 매일 뜨는 태양이지만 수평선 너머 붉은 해가 드넓은 바다를 물들이며 떠오르는 모습은 볼 때마다 감격스럽다. 대자연 앞에 서면 너무 큰 욕심도 마음의 조급함도 조금은 더 가볍게 내려놓게 된다. 후회스러운 어제를 살았어도 주어진 오늘 하루를 잘 살아가면 된다고 위로해 주는 태양이 고맙게 느껴진다. 


태양과 지구의 거리, 약 1억 5천만 km. 태양이 지닌 빛은 인간의 머리로는 가늠할 수 없는 그 거리를 지나 우리에게 닿는다. 그 빛은 온 세상을 비추고 따뜻한 온기로 덮는다. 많은 이들이 새해가 밝으면 새 마음, 새 뜻을 품고 일출을 보러 이곳으로 향하지만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언제든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할 수 있음은 분명 축복이다. 드넓은 바다를 불게 물들이며 해가 떠오르는 광경은 언제 보아도 황홀 그 자체다.     


양가 부모님 댁이 각각 인천과 부산이어서 종종 역귀성을 하는 일이 있는데 반대편 도로가 꽉 막혀 있는 광경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일상에서 벗어나 쉼을 위해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이겠지만 교통 정체로 길에서 수 시간을 보내고 소위 일컫는 핫한 식당과 카페에 긴 줄을 서 있는 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과연 그들은 온전한 쉼을 얻고 일상으로 돌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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