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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Oct 28. 2022

사계절이 아름다운 도시[가을 이야기]

이민 말고, 강릉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 -알베르 카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다. 강릉의 가을은 아름답고 청명하다. 누군가 강릉을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난 주저 없이 '가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노추산 모정탑길', 강릉에 약 10년 동안 살면서 이곳에 가본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꼬불꼬불한 도로를 약 40분가량 달려야 닿을 수 있는 노추산. 시월의 끝자락, 이번이 아니면 또 그다음 해를 기약해야 할 것 같아서 살짝 갈등하는 마음을 뒤로하고 내비게이션을 켜고 출발했다. 


강릉은 차로 십여 분만 달리면 정말 한적한 시골 풍경을 마주 할 수 있어서 잠깐의 드라이브지만 멀리 여행을 떠나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노추산으로 향하는 길이 그렇다. 단풍은 절정에 이르렀고 우리를 둘러싼 온 산이 울긋불긋 가을빛으로 곱게 물들어 있었다. 목적지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예쁘다' '멋지다'를 족히 스무 번은 읊조린 거 같다. 목표를 향해 가는 인생의 과정도 이렇게 즐겁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노추산 모정탑길'      


집안에 우환이 많았던 한 어머니가 잠을 자고 있던 어느 날, 꿈속에 산신령이 나타나 돌탑 3000개를 쌓으면 집안의 우환이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 일을 겪은 후 그녀는 간절한 마음으로 26년간 한결같이 이곳 노추산에 거주하며 돌탑을 쌓아갔다. 그리고 2011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생각해 보니 40대 초반 내 나이쯤부터 산속에 들어가 돌탑을 쌓으셨다는 말인데 도저히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긴 시간 동안 탑을 쌓으면서 그녀의 삶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졌을까?   



노추산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약 5km를 가야 했지만 다시 하강해야 하는 시간과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까지 계산하니 무리가 있어서 한 시간 가량 숲길을 천천히 산책하는 기분으로 거닐었다. 가을이 깔아 놓은 폭신한 양탄자 위를 걷는 느낌도, 살짝 차가운 공기도, 은은한 소나무 향기도 이 계절이 내어주는 선물 같아서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몇 년 전 가을, 처음으로 본 대나무 꽃도 잊을 수 없다. 지인으로부터 강릉 오죽헌에 있는 오죽(까만 대나무)에 60년 혹은 120년에 한 번씩 핀다는 대나무 꽃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대나무에 꽃이 핀다고?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직접 본 적도 없었던지라 그 모습이 궁금했다. 일생에 한번 볼까 말까 한 꽃이라 하니 더 궁금해졌다. 가을 햇살이 유난히 반짝이던 10월의 어느 주말, 온 가족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죽헌으로 향했다. 호기심을 자극한 대나무 꽃을 보기 위해. 날씨가 좋은 요즘은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려 노력한다. 강릉의 대표적인 관광명소 오죽헌은 집에서 자전거로 약 15분만 달리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고 일요일을 포함한 법정 공휴일엔 강릉 시민에게 무료입장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부담 없이 가족 나들이를 즐기기에도 좋은 장소다. 도대체 어디에 대나무 꽃이 있을까 한참을 찾다가 사람들이 운집한 그곳에 역시나 화제의 주인공을 만났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 찾기와 비슷한 이치다.)     


대나무 꽃. 내가 익히 보았고 알던 꽃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적게는 60년, 길게는 120년쯤 사는 대나무의 꽃을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더 귀하고 특별하게 여기고 바라보게 되나 보다. 대나무 꽃이 이렇게 생겼구나.... 조금 실망(?)을 하면서 사진으로 그 모습을 남기고 오죽헌을 나오려던 찰나에 오죽에 관한 글이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대나무의 수명은 보통 60~120년이고 꽃을 피우면 죽는다.'


대나무 꽃. 그냥 보았으면 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내가 방금 신기하게 바라보고 나온 그 대나무는 이제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었던 것. 반갑고 신기한 마음으로만 바라보았던 나의 시선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쉽게 볼 수 없는 꽃이라며 좋은 기운을 받아 가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는데 나무는 있는 힘을 다해 마지막 꽃을 피워내고 있었던 것이다. 대나무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쓸쓸해졌다. 그러면서도 지조와 한결같음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대나무의 마지막은 꽃을 피워냄이라니...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돌아와서 대나무에 관한 검색을 해 보니 대나무는 꽃을 피우고 죽지만 그 자리에서 다시 새순이 올라와 다시 성장을 시작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대나무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이었다. 대나무 꽃, 상상했던 아름다움은 아니었지만 안겨 준 여운은 꽤 오래갈 것 같다. 


소금강 구룡폭포 

연중 어느 때나 가도 좋지만 가을만 되면 자연스럽게 생각나고 가보고 싶은 산이 있는데 바로 강릉시 연곡면에 위치한 오대산 국립공원 소금강이다. 작은 금강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름 그대로 북한 금강산에 있는 것들의 작은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그래서 금강산에 있는 구룡폭포, 만물상 등을 이곳 소금강에서도 만날 수 있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북한 금강산 관광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적이 있었다. 정부에서 국민 참여와 관심을 높이고자 대학생들에게 금강산 관광 지원금을 주었는데 나도 굉장히 저렴한 비용만 내고 다녀온 경험이 있다. 남과 북의 관계가 다시금 꽁꽁 얼어붙어 어떠한 교류도 없이 오고 갈 수 없게 된 지금의 상황을 보면 그때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소금강을 갈 때마다 금강산에 다녀온 추억이 자연스럽게 소환되는 이유다. 


맑은 계곡을 곁에 두고 올라가는 소금강은 등산로를 잘 갖추고 있어 나처럼 초보 등산객이나 어린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등반을 즐길 수 있다.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피톤치드 가득한 산을 오르다 보면 저절로 몸과 마음이 재충전 된다. 기초 체력을 더 키워 언젠가는 산 정상 등반에도 도전하고 싶다. 늘 나의 최종 목적지는 50분가량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구룡폭포인데 이 앞에서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잔은 '가을 한 모금'이다. 높은 가을 하늘과, 울긋불긋 물든 단풍,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강릉에서 삶은 가을 빛깔처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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