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말고, 강릉
강릉의 봄은 생각보다 짧다. 3월 말~4월 초, 봄의 전령사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려 할 때쯤에도 함박눈이 내려 놀랐던 처음 몇 해의 기억은 여전히 또렷하다. 봄이 왔구나 싶어 겨울 옷을 정리해 넣으면 '속았지롱' 하며 놀리기라도 하듯 펑펑 눈이 내리는 경험을 심심찮게 하게 되는게 바로, 강릉이다. 고온 건조하고 풍속이 빠른 국지적 강풍으로 인한 봄 바람은 얼마나 매서운지. 2017년 봄, 바람을 타고 수 킬로쯤은 너끈히 날아오는 불씨 때문에 우리 집 건너편까지 산불이 번졌던 순간은 지금 돌이켜 봐도 아찔하다. 화마가 할퀴고 간 흔적은 아직도 산 곳곳에 상처로 남아 있다.
찰나의 순간처럼 느껴져서일까. 사계절 중 봄은 가장 아쉽고 또 놓치고 싶지 않아 날씨가 허락하는 한 마음껏 따사로운 햇살과 봄꽃을 즐기려 노력한다.
경포대, 경포호수 그리고 남산과 같이 익히 알려진 벚꽃 명소에서 즐기는 봄꽃도 정말 장관이지만 산책 삼아 거니는 길 가운데 만나는 가로수의 꽃들은 더욱 가까이에 봄이 왔다고 말을 건네는 듯 하다.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려 할 때면 눈부신 아름다움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생각에 마음은 설레이고 춥고 긴 겨울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꽃을 내어 주는 생명들이 마냥 기특하고 고맙다. 그것은 단순이 피어난 꽃이 아닌 긴 시련의 시간을 이겨낸 후 빛나는 삶의 희망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벚꽃나무
-윤하은-
벚꽃 나무에
꽃봉오리가 맺히고
곧이어
꽃이 핍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에 아이들은
신이 나서
폴짝폴짝 뜁니다.
그 모습을 본
벚꽃 나무는
숨겨 두었던 보물을
아낌없이 나누어 줍니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도서관 앞, 벚꽃 나무를 보며 지었던 시.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볼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봄이 되면 이 시가 떠올라 다시 꺼내어 보게된다. 아낌없이 자신의 보물을 나누어 주는 벚나무처럼 귀중한 것, 아름다운 것을 누군가에게 기꺼이 나누어 줄 수 있는 나, 너 그리고 우리가 되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벚꽃의 향연이 끝날 때쯤이면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에는 어김없이 겹벚꽃이 활짝 피어난다. 꽃송이도 탐스럽고 사랑스러운 빛깔을 지녀서 봄이 오면 이 또한 놓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멀리 떨어져 지내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강릉의 봄내음을 전해 주고픈 마음에 카메라 셔터를 부지런히 누르게 된다.
누가 뭐라 해도 봄은 꽃의 계절. 봄의 끝자락에는 튤립을 감상해야 한다. 바로, 튤립공원에서. 입장료 없이 누구에게나 언제나 열려 있는 이 공원은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이면서 어른들에게도 편안한 산책로인데 봄이 되면 알록달록 튤립으로 이 계절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용인의 유명 놀이동산 보다 훨씬 한적하고 여유롭게 튤립을 감상할 수 있다. 그것도 무료로.
강릉의 봄은 찰나의 순간처럼 지나간다. 다시오지 않을 봄인 것 마냥 마음껏 즐겨야 하는 이유다. 춥고 긴 겨울을 보내고 봄의 아름다움을 기다리는 설렘을 안겨주는 도시, 강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