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말고, 강릉
2011년 뜨거웠던 여름, 강릉으로 이주했다. 당시 첫째 아이가 여섯 살이었는데 마음만 먹으면 놀이터에 놀러 가 듯 바다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했다. (지금도 이 사실은 여전히 신기한 일처럼 느껴진다.) 차 트렁크에는 언제나 모래 놀이를 할 수 있는 도구 몇 가지와 피크닉 매트가 있었고 아름다운 푸른 바다를 놀이터 삼아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었다.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이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여섯 살 딸아이와 바다와 공원, 산과 계곡은 나의 유일한 친구였던 셈이다.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 장난감을 챙길 필요는 없어졌지만 어디든 펼 수 있는 의자와 매트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휴가철에는 관광객들로 강릉의 곳곳이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아침을 먹고 조금 부지런하게 바다로 향하면 한적한 여름 바다를 즐길 수 있다. 집에서 수영복을 갖춰 입고 간단한 간식거리를 챙겨서 차로 15분여만 달리면 쪽빛 하늘을 품은 바다가 펼쳐지기에 날씨가 허락하는 한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로 간다.
바다 수영은 마치고 나서 정리할 일들이 무척 많지만 그냥 보내 버리기엔 여름 바다는 너무나 아름답다.
해가 길어지는 여름엔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혹은 간단하게 저녁 도시락을 챙겨 경포호수 공원으로 산책에 나선다. 무엇을 먹든 꿀맛이다. 뜨거운 여름 속에서 점점 짙어 가는 나무와 잔디는 풀벌레와 철새 그리고 오고 가는 이들에게 쉼을 선물한다. 모든 것이 조화롭고 평화롭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의 경포호수, 때로는 붉은빛으로, 분홍빛으로, 보랏빛으로 시시각각 다르게 물드는 하늘과 호수의 물결은 장관을 이룬다.
경포호수 공원 내 연꽃 감상도 여름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피어난 자태만 보면 그 아래 늘 축축한 땅이 있으리라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향도 향이지만 꽃잎이 지닌 색감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이 처음인 듯 감탄하고 또 감탄한다. 생을 다하는 날까지 그렇게 감탄하며 살고 싶다.
제철 과일을 먹듯이 제철에 피는 꽃을 감상하며 살아가는 삶은 즐겁다. 여름의 꽃, 수국은 토양의 성질에 따라 다른 빛깔을 보여주는데 여름의 푸른 하늘색을 닮은 수국과 고급스러운 보랏빛 수국은 무더위 속에서 청량감을 느끼게 해 주어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된다. 자연의 색감은 언제나 경이롭다.
특히,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안 곳곳에 핀 수국은 그곳의 운치를 더해주는데 오래된 고택과 환상의 조화로움을 이룬다. 잘 정돈되지 않은 정원이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완벽하게 정리 정돈된 사람보다 약간의 빈틈을 보이는 사람에게 더 끌리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능소화는 강릉에 와서 알게 된 꽃인데 동백처럼 통꽃이지만 넝쿨 식물로 담벼락을 타고 꽃을 피우는 모습이 정말 매혹적이다. 예전에는 직책 높은 양반 댁에만 심을 수 있던 귀한 꽃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렵지 않게 주택가나 그리고 가로수에서도 능소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점점 무더워지는 여름이지만 강릉 곳곳 여름에만 즐길 수 있는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여름을 여름답게 보낼 수 있는 강릉, 매력적인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