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말고, 강릉
커피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대표 음료 중 하나다. 우리나라 연간 커피 소비량은 평균 약 353잔으로 세계 성인 평균보다 약 3배 가까이 높다.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이렇게 커피에 진심이었을까. 강릉은 바닷가 앞은 물론이거니와 숲과 산 속, 크고 작은 도로, 주택가의 골목길까지 카페가 즐비하다. 인구 밀도 대비 카페의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뉴스만 보아도 카페가 얼마나 많은지 조금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커피하면 강릉, 강릉하면 커피를 떠올릴 정도니까.
강릉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 유적지, 한송정이 있다. 이곳에서 매년 민,관,군이 함께 전통차를 마시는 행사 '헌다례와 들차회'를 개최한다. 한송정은 신라 진흥왕(540~575) 무렵 화랑들이 심신을 수련할 때 차를 달여 마시며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주변에는 찻물로 이용된 돌우물과 차를 달이던 돌절구를 의미하는 연단석구(鍊丹石臼)가 새겨져 있는 돌이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강릉의 차 문화는 더 특별하고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그리고 커피 문화 발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강릉 시민으로서 카페 주인장의 취향과 로스팅 기술을 담은 원두를 맛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멋스럽고 아름다운 카페 인테리어를 감상할 수 있다는 건 큰 기쁨이다.
강릉의 관광 명소 중 한 곳인 안목 커피 거리. 바닷가 앞 작은 커피 자판기가 그 시초가 되어 카페가 하나 둘 생겨났고 지금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커피 거리가 되었다. 이제는 안목해변뿐 아니라 어느 해변이든지 횟집보다 카페가 더 많아진 것 같다. 시원한 오션뷰와 함께 마시는 커피는 강릉살이의 즐거움 중 하나다. 같은 커피 값이면 바다뷰를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지금처럼 개인 소유의 차량이 많지 않고 시내버스 운행이 잦지 않았을 때 안목은 쉽게 오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고 한다. 꽤나 거리가 있는 강릉 외곽의 느낌정도였을까? 하루에 많으면 약 세 차례의 버스만 오갔기 때문에 썸(?)을 타는 연인들이 "우리 안목 갈래?"가 지금의 "라면 먹고 갈래?"와 같은 의미였다고 한다. 함께 가는 이와 오랜 시간 그곳에 머물러야 했기 때문에 따뜻한 커피 한잔은 그때나 지금이나 필수일 터. 그렇게 커피 자판기가 생겨났고 버스를 놓친 이들을 위한 택시도 늘어났다고 한다.
술을 마시지 않는 우리 부부는 커피를 즐겨 마신다. 좋아하는 원두를 사서 마시기 직전 분쇄해 정성스럽게 핸드드립을 한다. 커피를 마시기 위한 과정 하나하나 의식인 것 마냥 즐겁게 그 시간을 누린다.
원두에 따라 맛과 향이 얼마나 다양하고 다채로운지. 또한 같은 원두라 할지라도 그 원두를 다루는 바리스타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도 놀랍다. 알면 알수록 커피의 세계는 신기하고 오묘하다.
이따금씩 좋아하는 카페에 들러 향 좋은 커피 한잔으로 기분 전환도 하고 아늑한 카페에서 지인들과 함께 나누는 차 한 잔의 여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나 내 마음속 1등 카페는 우리 집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차와 함께 가장 편안한 옷을 입고 가장 편안한 공간에서 즐기는 쉼표는 일상을 더 잘 이어나가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차를 즐겨 마시는 습관 때문에 차와 잘 어울리는 디저트도 매우 좋아한다. 커피와 차 문화가 발달한 지역이어서 강릉에는 맛있는 디저트 가게가 많다. 고급스럽고 맛 좋은 디저트를 종종 사 먹기도 하지만 되도록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먹는 편을 택한다. 한식은 조리 준비 과정이 다소 복잡한 편이어서 아이들을 참여시키기 어렵지만 베이킹은 과정이 훨씬 단순해서 아이들과 함께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강릉에 살게 되면서 희한한 부심(?)이 작동할 때가 있는데 그중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커피부심이다. 타 지역을 방문할 때면 만족스럽지 못한 커피를 마시게 될때마다 자연스레 강릉의 커피를 그리워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동네를 산책할 때애도 원두 볶는 향기로 나도 모르게 행복감에 젖어드는 곳, 강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