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계 탔다. 우연히 들른 도서관에서 작가 강연이 있었다. 2만 원도 안 되는 책 한 권의 값. 어떤 이는 비싸다고 하지만 친구들과 만나 한 끼 먹는 밥과 식후 디저트 값이다. 책 한 권에는 저자가 그동안 갈고닦은 지식과 인생을 통해 얻은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런 책을 단돈 2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살 수 있고 오늘은 특별히 직접 저자들의 육성으로 책과 책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라 더없이 반가운 자리다. 냉큼 강연장으로 가 한자리를 차지했다.
오늘 강연 주제는 ‘만화책 한 권의 무게’. 어린아이들의 것이라 여기고 가벼이 생각하는 시선 때문인지 제목에 ‘무게’란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 강연 역시 전에 보지 못했던 꼬마 참석자들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궁금한 이야기를 들을지 기대가 큰 모양이다. 중간중간 이미 만화 작가 이거나 아님 만화작가를 꿈꾸고 있는 어른들이 보인다. 또는 나처럼 주제와 상관없이 도서관에서 하는 행사니깐 시간도 되니 한번 드러나 볼까 하고 우연히 참석하신 분들도 계시리라.
무엇이 되었든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만화가분들의 간결한 자기소개. 만화가가 된 계기, 작품 구성 단계에서의 에피소드, 연재를 하며 느꼈던 점, 출판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주변사람들의 반응과 변화된 생활 등 진행자가 만화가여서 그런지 ‘만화가’로서, 돈벌이해야 하는 ‘직업인’으로서 고민되는 세밀한 질문들이 좋았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작가들의 진솔한 답변과 그 안에 희로애락이 녹아있어 꽤나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어떤 걸 그려야 할지 모르겠어서 청탁받는 일러스트작업이 좋았다는 작가, 인생목표가 데뷔였는데 데뷔를 하고 나니 인생이 정지되어 버린 듯해 2년간 방황했다는 작가, 작가 성격을 운운하며 악역은 못 그리겠다고 말한 출판 관계자와의 에피소드, 만화는 연재가 끝났는데 돈을 못 받고 떼인 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지만 밥벌이가 안되어 생계가 어려웠다는 작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기 위해 글로 만화를 배웠다는 작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하나같이 쉬운 길이 없다. 언어를 그림으로 그리는 그 길고 힘든 과정 앞에서 내가 커피를 홀짝이며 다리를 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괜스레 죄송스러워졌다. 청중은 웃어넘기는 하나의 에피소드지만 그 깊고 아픈 이야기를 꺼내서 보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모두를 위해 공개해 주니 더없이 고맙다.
이야기를 선점하고 싶어 조급했다는 ‘며느라기’ 신수진 작가
참석한 작가 중 ‘며느라기’ 신수진 작가도 있었는데 그녀의 이야기가 참 흥미로웠다. 지금이야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그 인기를 실감하지만 그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하나같이 부정적인 반응이었다고 한다. 제안과 거절의 반복. ‘잔잔한 이야기, 누구도 보지 않는다’부터 해서 작가의 역량까지 운운했다고 한다. 작가는 기존 플랫폼 결정권자들이 이 만화에 공감을 하지 못한다 결론을 내리고 직접 주인공 캐릭터의 SNS계정을 만들어 연재를 시작했다. 때마침 1컷만 올릴 수 있었던 이미지를 여러 컷 올릴 수 있게 되어 운도 따랐다. 신수진 작가의 여러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단어 하나가 ‘선점’이다. 기존의 사랑과 전쟁에 나올 법한 고부갈등이 아닌 ‘왜 며느리는 스스로 잘하려고 할까’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를 다른 시선으로 만화에 담고 싶었단다. 만화로는 한 번도 다루어지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어 마음이 조급했다고 한다. 그래서 수입이 0원인 상태에서 6개월 동안 스토리를 모으고 내용을 구성했단다.
진부한 소재지만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기존 플랫폼에 담을 수 없이니 새로운 판로를 찾아 자기 이야기를 담아낸 작가의 역량과 용기가 참 부럽다. 만화 전공자도 아닌 분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화로 담고 싶어 글로 만화를 배웠다는데 하고 싶은 걸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과 끈기가 참 부럽다.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때마침 운도 따라 잘 됐어요. 하고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지만 사이사이 고민과 실망감도 많았으리라. 글을 쓰며 고민과 실망감으로 하루하루를 쌓고 있는 나에게도 나의 글쓰기가 한 줄 요약이 되어 돌아왔으면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