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있으나 단잠에서 꿈을 찾는 나
“엄마, 왜 이 옷 안 입어?” 옷장을 정리하다 보인 블라우스. 시폰 소재에 하늘하늘한 레이스가 달려있고 진주 모양으로 된 단추가 달려있어 딸아이가 유심히 보던 출근 교복이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 같은 디자인 다른 색상의 블라우스를 검정 정장바지에 교복처럼 입고 다녔다. 이젠 회사를 나가지 않아도 되니 입을 일이 없어진 유니폼이다.
퇴밍아웃 하지 않은 나
“엄마, 요즘 회사 출근 안 하잖아.” 코로나로 시작된 재택근무 시절을 보내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출근 부재로 아이들은 ‘퇴사’를 모른다. 퇴사 관련 책을 읽곤 할 땐 “퇴사가 뭐예요? 엄마 퇴사했어요?” 하고 묻긴 했지만 늘 부인했다. “아니 엄마 재택근무야.” 혼자 떠날 일이 있으면 “회사 출장이야” 하고 넘어가곤 했다. 어쩌면 알면서도 엄마가 퇴사를 부인하니 더 이상 캐묻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왜 나는 아직도 아이들에게 퇴밍아웃(퇴직 커밍아웃) 하지 않는가. 아이들에게 ‘일하지 않는 나’ 정확히 말하면 산술적으로 노동가치를 인정해 주는 일을 하지 않는 나에 대해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운 마음 일지 모르겠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으로 효용가치가 있는 엄마임을 증명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인생 2배로 낭비 중입니다만…
“엄마는 우리가 학교 가면 집에서 뭐 해?”란 물음에 “엄마는 작가가 될 거야, 그래서 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써.” 1년을 이렇게 우려먹으니 이젠 질문이 “엄마 책 언제 나와?”로 바뀌었다. 그래 나도 출간하고 싶다. 내 책. 내 글을 쓰긴 한다. 시간이 있을 때만. 이런! 틀려먹었군! 이래선 안 되는데. 시간을 내어, 온전히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해야 하는데 기분 내킬 때 만 쓴다. 유명한 대문호 무라카미 하루키도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꾸준히 글을 쓴다는데 난 뭔가. 작가 지망생 주제에 게으르고 나약하며 매일 자기 합리화로 하루하루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으니 인생 낭비하고 있는 것 같다. 회사를 안 나가 인생을 2배로 사는 것 같지만 반대로 무언가 나 스스로 기특한 일을 하지 않으면 인생을 2배로 헛되게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쓰레기가 된다. 인생 이모작으로 글로 밥 벌어먹는 할머니를 꿈꾸었는데 말년에 빌어먹기 딱 좋겠다 싶다.
오늘만은 안 되는데… 결국 이불속으로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이 아침에 눈을 떴다. 아이들 등교 준비 시간은 단 30분. 그 시간을 보내고 오전 대부분의 시간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다. 눈에 보이는 집안 일도 그 시간엔 하지 않는다. 따뜻하게 카푸치노를 한잔 내려 햇살 가득한 창가 옆 내 책상에 앉아 타닥타닥 리듬을 타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매일 그렇게 하고 싶다. 그 시간을 활용해 글을 써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늘 함정에 빠지곤 한다. 뭐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지. 오늘은 춥다. 컨디션이 별로야. 비가 오려나 몸이 더 처지네. 잠깐만 누웠다가 하자. 나라를 구할 일도 아닌데 잠시만 쉬었다 하지 뭐. 하며 오늘도 아늑하고 편안한 이불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원하는 것이 있고 그걸 이루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뭐가 되었든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데 오늘도 나는 단잠에 정복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