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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Nov 06. 2024

[구로가와] 야마비코 료칸

다양한 탕들의 향연! 온천 테마파크가 따로 없다!  

구로가와에서의 하룻밤. 여행객들에 끼어 이리저리 바삐 움직였던 지난 여행에서 누리지 못한 구로가와를 느껴보고 싶다. 밥 짓는 늦은 오후, 별이 보이는 고요한 밤, 상쾌한 산속의 아침을 혼자 조용히 걷고 싶다. 생애 첫 료칸 여행을 구로가와에서 해본다.



느긋한 하루를 만끽하기엔 전혀 여유롭지 못한 비싼 료칸값

도심의 화려함도 없고 거대한 자연풍광도 아닌 작은 산골짜기 온천마을에서의 느린 하루를 온전히 만끽하고 싶은 욕망. 소소한 바람이라고 하기에 이곳 숙박비가 만만치 않아 들끊는 욕망이라 하겠다. 이왕 가는 거 료칸의 백미인 가이세키 요리와 조식을 포함하니 20만 원이 훌쩍 넘는다. 혼자 하룻밤을 보내기에 무척 비싼 방값이다. 유유자적한 하루를 위해 지불해야 할 돈 치고 꽤 많아 전혀 유유자적일 수 없는 금액이다. 비싼 숙박비에 안 가자니 아쉽고 언젠가는 갈 듯싶은데 이 욕망을 뒤로 미룰까 하다 왕복 10만 원으로 싸게 예약한 비행기 값과 퉁 치자는 심산으로 예약 버튼을 눌렀다. 간간히 새로고침 하며 더 싼 방이 나오거나 엔화 가격이 떨어지면 기존 예약을 취소하고 다시 예약하길 반복했다. 비싸긴 정말 비싸다. 


료칸 야마비코 정문 (左) / 상가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흘러갈 수 있는 뒷문 (右)



아가자기 하게 가꾸어져 있는 료칸 야마비코


고르고 고른 료칸, 야마비코


마을 중심이라고 말하기도 뭐 한 점포들이 밀집해 있는 작은 거리. 물론 오후 5시면 대부분 문을 닫지만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있는 곳과 가깝고 다양한 온천탕이 있는 료칸, 야마비코. 산책 삼아 뒷문으로 나가면 오밀조밀 디저트 가게들이 모여 있는 길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비싼 료칸 값에 일찍 체크해 주면 감사하겠지만 칼 같이 지켜지는 체크인 시간. 아침 일찍 장시간 버스 이동이라 아침도 거르고 당도해 우선 짐만 맡겨두고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나간다. 모두가 같은 시간에 먹는 점심이라 가는 곳마다 장사진이다. 많지도 않은 식당에 손님들이 한꺼번에 모이니 대기시간도 길다. 구글맵을 켜 대기가 짧은 곳을 찾았다. 왜 대기가 없었는지는 주문하고 보니 알겠다. 산골짜기라도 더워지기 시작한 날씨에 화로에 굽는 요리라니! 굶주린 배에 빨리 밥이 먹고 싶어 이것저것 제지 않고 들어섰다 먹는 내내 땀 흘리느라 애 먹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참 특이한 경험이긴 하다. 식탁 중앙에 숯 화로가 있고 야채와 고기류를 구워 먹는 방식이 이색적이다. 눈앞에서 타닥타닥 거리며 이글대는 숯을 마주하고 목장갑 낀 손으로 요리조리 굽다 먹는 맛! 미래소년 코난이 굽던 물고기를 내가 직접 구워 먹는 맛! 빨리 먹고 싶어도 기다려야 하는 그 맛! 더운 날씨에 주린 배를 채우기에는 다소 에러지만 쌀쌀한 날씨에 적당히 배고플 때 먹으면 흥미로운 맛이다. 식후 간식은 아이스크림 모나카. 순식간에 당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했고 동네 가게에서 산 쫀득하고 찐한 요구르트와 우유는 반반 썩어 먹으니 장 운동이 활발하다. 걷다 보니 길냥이가 길가에서 볕을 쬐고 있고 어느 댁 고양이는 밥 주는 할머니 앞에서 애교를 부리느라 정신없다. 예상했던 대로 이곳은 느리고 조용한 동네다. 이따금 당일투어 여행객들이 순식간에 몰렸다 순식간에 빠지고 이내 평온함을 찾는 곳이다. 지나가는 단체 관광객들의 말들. “별거 없네”. “심심하다” 정확하게 눈치채셨다. 이곳 매력은 그 별거 없는 ‘심심함’에 있다. 천천히 거닐다 맘에 드는 료칸에 들어가 온천하고 또다시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다시 온천하는 느긋한 ‘쉼’을 즐기러 오는 곳이다. 볼거리, 먹거리, 쇼핑거리를 찾으신다면 공치는 하루가 되는 그런 곳이다. 


땀 흘리며 머었던 구로가와에서의 아점(左) / 디저트 아이스크림 모나카 (中) / 우유와 요거트를 산 동네가게 (右)
이따금 길냥이나 마주치는 한적한 구로가와 산책길


호사로세, 료칸 체험


료칸 체크인을 마치고 방에 들어가 준비된 유카타를 입고 ‘동네 온천을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즐겨본다.’라고 써보지만 사실 앞뒤 안 맞는 말이다. 이 심심한 동네에서 ‘쉼’을 누리기 위해 이곳저곳 당일 온천을 즐기느라 바쁜 오후였다. 신나게 마패 놀이(이전 글 참고)를 하고 가이세키 시간에 맞추어 료칸으로 돌아오니 비싸게 예약한 방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혼자 지내기에 넓디넓은 방. 온 가족이 자도 될 것 같다. 또다시 그 비싼 방을 뒤로하고 가이세키 요리를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간다. 혼자 식사하기에 아늑한 작은 룸. 이미 준비된 찬들. 맛도 맛이지만 오밀조밀 예술이 따로 없다! 혼자 먹는 정찬에 맥주가 빠질 순 없지! 맥주 한잔에 정성껏 차려진 한상을 즐겨본다. "이래서 료칸 가이세키를 먹나 보지?! 좋다! 이래서 비싼 건가?! 좋긴 좋네!" 혼잣말하다 한입 먹고 감탄하며 못 먹던 술도 한잔을 다 비운다. 안 먹던 술이라 흥겹다. 얼쑤하고 춤출 판이다. 또다시 2차를 간다. 오후에 동네 온천을 즐겼다면 늦은 밤은 이곳 온천장을 하나씩 도장 깨기 한다. 도장 깨기 할 만큼 이곳에는 프라이빗 온천탕이 6개나 되고 대욕장도 별도로 2곳이나 있다. 호사롭다 호사스로워! 이곳은 내게 워터파크다. 이곳에서도 퐁당퐁당 왔다 갔다 한다. 띠 하나만 풀면 후루룩 벗기 쉽고 온천 후 수건 걸치듯 입고 띠만 두르면 되는 유카타, 온천 후 송골송골 맺치는 땀도 잘 흡수되는 재질이라 여러 온천탕을 즐기기에 한몫한다. 관내 시설을 이 유카타 하나만 입고 바삐 돌아다닌다. 특히나 야외 온천탕이 마음에 쏙 든다. 사방이 나무로 둘러쳐진 탕에 앉아 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늘은 적막하고 드문드문 별이 떠있다. 탕 주변으로 은은한 조명이 어두운 밤을 밝힌다. 온갖 시름 다 있고 멍하니 앉아있기 좋다. 료칸 야마비코는 객실이 많지 않아 만실 이어도 온천탕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없다. 노천탕을 전세 내듯 온전히 나 혼자 즐긴다. 이 좋은 걸 또 나 혼자 즐긴다. 혼자라 좋은 건지 좋은 걸 혼자 즐겨서 좋은 건지, 아무튼 혼자 좋다. 6개나 되는 프라이빗 탕을 퐁당퐁당 하다 관내 있는 짧은 구름다리는 지나는데 리셉션에 있던 젊은이가 쫓아와 선 “000”라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무슨 말씀이신가?! 갸웃뚱 “응?!” 유심히 쳐다보니 ‘반딧불’이다. 청년의 외마디는 한국말로 "반딧불"이었다. 무심코 지나갈 때 알아채지 못했던 불빛이 자세히 드려다 보고 살피니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점 하나로 보였던 것이 온사방 반딧불 천지다.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을 놓고 한동안 서있는다. 참 귀한 광경이다. 이곳에 내가 서 있다.

생맥주가 빠질 수 없는 아기자기 가이세키 요리!


어스름 어둠이 깔리는 저녁 무렵 노천탕 (左) / 깜깜한 밤 반딧불을 볼 수 있는 료칸 內 다리 (右)


여러 탕이 즐비한 야마비코 탕들. 밤(左)과 낮(右) 모두 가보길 바란다.
밤(左)과 낮(右) 같은 모습 다른 분위기, 창문 하나 열면 초록 정원 뷰


다양한 탕들이 있어 온천 테마파크라 할 만한 야마비코



귀한 광경은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도 머금는다. 내 방 이름은 '키크 = 듣다'. 방에 긴 시간 있지 않아 몰랐는데 잠자리에 누우니 알겠다. 창문을 열고 자고 싶을 만큼 객실 바로 옆을 지나는 물소리가 맑고 청량하다. 끊임없이 곁에서 흐르는 물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자는 내내 귀를 밝게 한다. 뜬 눈으로 지새우며 계속 듣고 싶지만 아득한 저 너머 무의식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들다 일어나 다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깬다. 간밤 별일 없이 이곳 물은 잘도 흘러 내려갔다. 어제 본 반딧불이과 까만 밤 달빛. 꿈을 꾼 듯하다. 어제 온종일 즐긴 온천 덕분인지 산 속 맑은 공기 덕분인지 밤새 들은 계곡 물소리 덕분인지 오래간만에 개운하게 잘 잤다. 아침 밥상까지는 시간이 여유로워 다시 유카타를 챙겨 입는다. 간밤에 이어 다시 찾은 프라이빗 탕들. 그 중 서서 어깨까지 깊숙이 몸을 담글 수 있는 탕을 선택했다. 아~ 공복에 하니 더 개운하다. 가볍게 즐기는 온천욕은 몸과 마음을 더 가볍게 해 준다. 깊이 들어갔다 엉덩이 걸터앉아 눈앞 초록들을 바라본다. 여리한 잎들이 빛을 온몸으로 머금고 있어 싱그럽다. 푸른 잎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 시작이 맑음이다. 한바탕 땀을 빼고 먹는, 남이 귀하게 차려낸 음식을 받아먹으니 황송하다. 황후의 밥상이 따로 없다. 

남이 차려온 갓 지은 밥, 야마비코 조식
잠자리에서 듣는 풀벌레 소리와 계곡 물소리, 왜 방 이름이 키크(듣다) 인지 알 것 같다
예쁘게 차려입고 앉아서 차 한 잔 마시고 싶은 객실 소파(左) / 창문 너머로 보이는 관내 작은 다리, 깜깜한 밤 반딧불은 덤! (右)
철봉  위쪽은 150cm로 깊고 아래쪽은 물 아래 턱이 있어 걸터앉을 수 있는 탕(左) / 가장 좋았던 탕! 기분까지 상쾌한 초록 뷰(右)



여러 료칸을 유랑하며 즐긴 온천, 자연을 담고 있는 잠자리, 나를 위해 소중히 차려진 음식들. 이 좋은 걸 할 수 있다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황송하고 귀한 료칸 체험. 찬바람이 불어올 때쯤 또다시 찾아오고 싶다.


후쿠오카와 그 주변 인근 도시 여행은 이것으로 일단락 마무리 짓고 홋카이도 여행기를 조만간 연재할 예정입니다. 추워지니 삿포로가 생각나네요.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첫 료칸 여행

https://maps.app.goo.gl/pKvKaV87TXachNSR6


날 더운 점심, 이글거리는 숯불 앞에서 먹던 밥

https://maps.app.goo.gl/zKVZZ9FSxDhogEEM9


달달한 식후 디저트

https://maps.app.goo.gl/CMS2DcgkWNYCGQJg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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