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롤 Aug 20. 2022

25. 우린 각자의 방식으로 입양을 공개했다.

  나는 위탁을 시작하면서 휴직했다. 휴직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점심시간이면 여러 사무실을 돌며 친한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휴직 전에 인사는 하고 가야 하지 않을까? 뿅 하고 갑자기 사라지는 건 예의가 아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휴직의 사유를 물었다. 휴직 인사를 하러 온 사람에게 당연히 휴직 사유를 묻는 게 기본이니까.

  나는 이전에 난임 휴직을 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휴직을 한다는 말을 꺼내자마자 난임 시술을 다시 하는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며 걱정해주거나, 혹시 임신해 사전 육아 휴직을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묻는 동료들이 많았다. '아, 아닌데.' 그럼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나는 그냥 입양을 준비한다고 답했다. 아직 입양 절차가 완료가 되지 않았고, 혹시 기각될지도 모르는 조금의 불안감이 있긴 했지만. 딱히 뭐라 달리 답할 수도 없었으니까. 뭐, 거짓말할 도 아니니까.

  친한 동료들이 입양 사실을 알게 되자, 곧 온 회사가 내 입양을 알게 되었다. 다들 쉬쉬하긴 했지만, 입양이 흔한 일은 아니여서인지 소문은 빨랐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와서 내 손을 잡고, '나도 들었어. 축하해.' 같은 소리들을 해줬다. 입양을 떠벌리려 했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이 과정에서 나는 점점 대담해졌다. 처음엔 제일 친한 동료만 복도로 살짝 불러내 작은 목소리로 '사실, 나 입양해.'라고 고백했었는데, 나중엔 복도에서 만난 옛 부서 부장님께 받은 축하 인사에도 웃으며 '감사합니다. 잘 키울게요.'라며 웃으며 답할 지경이 되었다. 하하하. 곧 내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내가 입양하는 일을 알게 되었다. 집에 아기가 오는 일이니 숨길 수도 없었고, 숨길 필요도 없었다.

  본격적으로 위탁이 시작되면서, 혼자 집에서 아기를 키웠다. 매일 궁금한 것이 생기니, 육아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 물었다. 심심하니 또 그동안 난임으로 꿍한 마음에 연락하지 않았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여러 친구들, 동료들이 선물을 사들고 집에 와 아기를 보고 갔다. 아기를 내 배로 낳지 않았단 것만 달랐지, 출산을 한 다른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축하를 받았던 것 같다.

  회사의 경우, 휴직을 하며 자연스럽게 공개된 것이지만, 사실 입양을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할 필요는 없다. 당연하다.

  하지만, 여자들의 경우 입양을 말하지 않다 보면 불가피하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들을 자주 맞닥뜨린다. 육아를 하며 만난 또래 엄마들은 자주 임신, 출산 경험을 공유하려고 했다. 산후우울증은 없었는지, 산부인과는 어딜 다녔었는지, 자연분만을 했는지, 남편이 임신 중에 잘해줬는지, 몇 킬로그램이나 늘었고 얼마나 뺐는지, 모유수유는 하는지, 산후조리원은 어디에 있었는지. 한두 번 만나고 말 사이라면 대충 얼버무리고 넘기지만, 계속 볼 사이라고 판단되면 나는 그냥 입양을 공개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입양을 공개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입양을 밝히지 않고 어떻게 그런 질문들에 답변할 수 있겠는가. 구체적인 질문엔 구체적인 거짓말이 필요한 법이다.

  "나한테는 자연 분만했다더니, 애 입양한 거라던데요?"

  "그래? 나한테는 @@산부인과 다녔다던데?"

  이미 지인과 동료들이 다 아는데, 굳이 이렇게 거짓말까지 해서 숨길 이유가 뭐란 말인가. 이런 대화가 오가는 걸 상상해보면, 입양을 감추면 굉장히 이상한 여자 되기 십상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엄마들의 모임에선 '사실, 전 입양을 해서요.'라고 말하지 않고서는 더 대화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왜 계속 거짓말을 이어가야 하는가. 입양이 부끄러운 일이어서인가. 입양이 숨겨야 할 치부인가.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입양을 공개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공개의 범위는 넓어졌다.

  그런데 남편은 나와 달랐다. 남편은 입양을 했다고 갑자기 일상에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기가 생긴다고 남자들에겐 티가 날 게 별로 없다. 나처럼 휴직을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남편은 자연스레 나보다는 입양을 공개하는 범위가 좁다. 남편 회사는 남자가 90% 이상인 곳이라 반응이 더 무뎠다. 아이의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리고, 가끔 유모차를 끌고 동네 산책을 하다 직장 사람들을 마주쳐도 친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이 사람이 애가 있었나? 왜 몰랐지?'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너 무슨 애야? 갑자기? 입양했어?'라고 묻는 사람은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입양을 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 친한 친구들이나 동료들이 아니고는 입양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상대가 묻지 않는데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갑자기 나타난 아기를 본 직장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어? 애가 있었네? 딸이야? 몇 개월쯤 됐어?" 정도다. 거기서 갑자기 "사실 저희 입양했어요."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딸이다, 4개월쯤 되었다.' 정도만 말하고 나면, 상대는 '귀엽네, 담에 술이나 한잔 해.' 정도의 말을 남기고 쒱하니 가버린다.          

  이렇게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의 방식으로 우리는 입양을 주변에 공개했다. 그게 자연스러웠다. 우리도 처음엔 입양을 주변에 공개하는 일이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막상 살아보니, 그보다는 나도 상대도 입양이 낯설어서 말하기 어색한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흔한 게 아니니까. 처음엔 '입양'이란 단어도 참 내뱉기가 낯설었다. 곧 입양이 내 삶이 되고 보니 상황에 따라 공개가 자연스러운 순간들이 생겼다. 말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더 어색할 때가 많다. 우리는 일부러 입양을 공개하지도, 굳이 애써 숨기지도 않는다. 자연스레 드러나면 드러나는 대로 감추어져 있으면 있는 대로 둔다. 입양  어디까지 입양을 공개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

이전 03화 24. 입양인데, 꼭 닮아야 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