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가 좋지 않아 거의 세 달에 한 번씩은 검진차 치과에 간다. 거의 10년 가까이 다닌 곳이고 실장님과 치위생사들이 친절해 이젠 서로 알고 지낸다. 입양을 하면서 단골 치과에까지 입양을 공개할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여기에도 다 말하고 말았다. 세 달 전까지 배부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백일 넘은 애를 안고 나타났는데 뭐라 말하겠는가. 조카냐고 물어보시는데 뭐라 답하겠는가. 하하하.
치과는 내가 난임인 걸 안다. 결혼 전부터 다닌 곳이라 결혼 후 엑스레이 때문에 매번 임신 여부를 물었기 때문이다. 입양을 숨길 생각은 아니었지만, 숨길 수도 없었다.
난임을 겪고 있는 실장님이 입양이란 말에 관심을 보이셔서 진료가 끝나고도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애기가 이쁘다, 닮았다며 입양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셨다. 올해도 잇몸 치료를 해야 한대서 남편과 주말마다 애를 데리고 몇 번을 더 다녔나? 하루는 의사 선생님이 치료가 끝나고 물으셨다.
"애기가 누구 닮았죠? 난 아빠 닮았나 했더니 오늘 보니 그것도 아니네?"
사적인 말을 거의 안 하시는 분인데,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에 진료 카드를 보던 실장님이 옆에서 더 당황하셔서 나와 의사 선생님을 번갈아 쳐다보셨다.
"아니, 이마가 너무 이쁘길래, 아빠 이마를 봤더니 아빠도 아니네."
"저희 입양해서요."
"아, 몰랐네요. 제가. 죄송합니다."
생각지 못한 '입양'이란 단어가 나오니 의사 선생님도 잠깐 멈칫하셨다. 이것 봐라, 별로 안 닮았다니까.
"입양인데 안 닮은 게 당연한 거죠. 어쨌든 애기 이마가 이쁘다는 말씀이시잖아요. 감사해요. 애기가 이쁘지요? 하하하."
의사 선생님은 당황하셨지만, 난 그 상황이 불편하거나 싫지 않았다. 입양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평소 우린 닮았단 소리를 잘 듣지 않는다. 그리 닮은 것도, 영 안 닮아 이상한 것도 아닌 딱 그 정도 수준이랄까. 우리의 닮음 정도는 그러니까, 우리가 바랐던대로 이미지가 닮은 정도의 적정한 수준이다.
"저희는 입양 가족이에요."
"아, 그래요. 애기가 많이 닮았네요"
아이를 입양했단 말을 하고 나면 곧이어, '닮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거의 관용구 수준이다. '하와유, 아임 파인 땡큐 앤유' 같은 느낌. 하하하.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렇다고들 한다. 난 잘 모르겠다고 하면 다들 손사래를 치며 닮았다고 난리다. 진짜 닮았나? 복지사님이 고심하셨으니, 그럴지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난 '꼭 닮아야 하나'란 생각이 들곤 한다.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가끔 진짜 붕어빵처럼 닮은 가족을 보면 나도 신기하긴 하지만, 그게 다다. 아이가 나를 닮았다는 말이 기쁘지도, 닮지 않았단 말이 속상하지도 않다. 오히려 입양이니 안 닮은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부분을 찾으려 애쓰는 건 억지로 짜 맞추는 퍼즐 같아 오히려 어색할 때도 있다. 내가 일반적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렇다. 그래서 입양을 할 수 있었던 걸까. '닮음'에 초연해서? 훗.
아이를 기다리던 기간에 남편과 쇼핑센터에서 춤추는 4살 여자 아이를 본 적이 있다. 저녁에 있을 공연을 위해 마련해둔 무대 위에 올라 거리낌 없이 동요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이 귀여워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웃고 있었다.
"우리가 낳는다면, 저렇지는 않을텐데, 입양이라면 모르겠다."
"난 좋은데, 저런 애."
"나도. 기대돼."
나는 고무줄도 잘 못하는 몸치고, 남편도 개발에 박치다. 하하하. 게다가 우린 남 앞에 나설 성격이 못 된다. 우릴 닮았다면 그 아이가 저기서 저렇게 춤을 출 리는 없다. 절대로.
결론적으로 딸은 우릴 닮지 않은 모양이다. 아직 4세 꼬마지만, 에너지가 넘치고 활달하며, 목소리가 크고, 흥이 넘친다. 학습 반장보다는 체육 반장이 잘 어울리는 중성적인 여자 아이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아주 감사하게도.
꼭 그렇게 애써 닮은 부분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아이는 살면서 나와 남편을 닮아간다. 말투가 닮고, 입맛이 닮고, 표정이 닮는다. 그래서 가족인 거겠지. 나와 남편이 닮아가듯이. 그거면 된 거다.
내가 가져본 적 없는 색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은 입양 부모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우리는 우리 부부와 전혀 다른 아이의 외모나 성격을 오히려 좋아하게 되었다. 사람의 외모와 성향엔 좋고 나쁨, 우월하고 열등함이 없으니까. 무지개처럼 다양하고 각기 멋진 거니까. 오히려 우리에게 없는 모습이라 더욱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난 그만큼 내 아이가 가지는 나와 전혀 다른 모습들이 사랑스럽다. 말 그대로 그 아이 그대로 사랑스럽다. 나를 닮지 않아도 좋다. 넌 너라서 그냥 좋다.
* 그럼에도 입양 가족인데 신기하게 닮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가족을 만나면 진짜 신기하긴 합니다. 복지사님들의 고민의 흔적이겠지요. 하지만 어쩌면 모든 사람들은 조금씩은 닮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도 어디 하나쯤은 공통점이 있게 마련이지요. 외모든, 성격이든, 취향이든 말이죠. 아기가 닮지 않아서 마음이 가지 않을 리는 없지 싶습니다. 또 함께 살면 조금씩 닮아갑니다. 당신의 아이도 그럴 겁니다. 전 그게 더 좋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