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입양 됐다고 지금 놀리는 거야? 좀 유치한데?
입양 공개에 대해선 전혀 다른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
먼저, 가끔 주변에서 왜 자신에게 입양한 것을 밝히지 않았냐고 서운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대체로 난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라고 답한다. 친척 중에도 자주 보지 않는 사람들은 아이의 입양 사실을 아직 모른다. 굳이 온 가족들에게 전화해 입양했다고 신고하듯 알려야 하는가? 내 아이의 입양 사실은 숨겨야 할 것도 아니지만 모두가 알아야 할 권리도 없다. 단지, 난 불필요한 거짓말을 이어가면서까지 숨기지 않을 뿐이다. 입양 사실은 친소 관계에 따라 밝히기도 하지만, 실제론 상황에 따라, 대화 내용에 따라 자연스럽게 밝혀지는 경우가 많았다. 밝혀야 할 상황이 아닌데도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또 반대로, 자신에게까지 왜 입양을 말하는지 의아해하는 경우도 있다. 입양은 아이와 가족 정도만 알아야 할 아이의 비밀이라고 여기는 쪽이다. 물론 아이의 구체적인 친모 정보 같은 건 사람들과 공유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하지만 '입양'은 우리 가족에겐 출산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입양을 공개하는 게 자연스러울 때가 있다. 굳이 먼저 말할 필요는 없지만, 상황에 따라 말해도 무방한 것 정도의 수위가 적절하다.
입양 부모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애써 입양을 감추는 건, 입양을 알고 자라는 아이 입장에선 자신의 과거가 부끄럽거나 수치스러운 것이라 받아들일 여지를 준다. 상황에 따라 주변인들에게 자연스럽게 입양을 밝히는 건 무엇보다 내딸이 바른 입양관을 갖고 살아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난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아빠 없는 게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그게 네 흠이 될 순 없다고 날 가르쳤다.
"너 아빠 없다며? 얘 엄마가 혼자 키운대."라고 딴지를 거는 같은 반 아이에게 난 "어, 아빠 없어. 몰랐어?", "그게 뭐? 그게 내가 잘못한 거야?", "너 지금 아빠 없다고 나 놀리게? 좀 유치한데?"라고 답했던 나를 기억한다. 당당한 내 표정에 그 아인 어이없어하며 돌아섰다.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나는 같은 이유로 크게 놀림받지 않고 자랐다. '애비없는 후레자식'이나 '아비없이 커, 본데없이 자랐다.'는 소리도 들은 구체적인 기억도 없다. 아마 누가 그런 말을 했어도 심각하게 듣고 괴로워하지 않아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말이 나에게 크게 상처를 주지 못했을 만큼 나는 당당한 어린이였다.
난 내 딸이 "너 입양됐다며?"라고 묻는 또래 아이에게, "응, 나 입양됐어. 넌 몰랐구나.", "그게 뭐? 그게 내가 잘못한 건가?", "나 입양 됐다고 지금 놀리는 거야? 좀 유치한데?", "니가 입양을 모르니까 그렇지. 이해해."처럼 답하는 아이로 키워내고 싶다.
아이들은 흰 도화지와 같다. 반응하는 우리 아이의 표정을 보고 상대 아이는 입양을 판단한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담담하게 상황에 따라 답해낼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우리 엄마가 나에게 그랬듯이. 입양이 너에게 기쁜 일일 순 없겠지만, 입양이 너에게 흠이 될 수도 없다고 말하는 엄마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