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입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미혼모, 한부모 가정, 보육원 아동 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텔레비전이나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관련 영상을 보면 쉽게 넘기지 못한다. 이전엔 내게 관심의 영역이 아니었던 부분이다. 내 딸은 내 삶에 오면서 나의 세계를 더 넓혀 놓았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의 일부이다. 입양 부모라면 이 시의 의미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이해할 것이다. 딸은 혼자서 오지 않았다. 딸이 오고, 딸과 생활하면서 나는 어마어마한 것들이 그 뒤에 조용히 따라왔음을 깨달았다.
신애라의 입양된 딸아이가 '엄마, 보육원에서 내 옆에 누워있던 그 아이들은 모두 어디에 갔을까?'라고 질문했다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아이들을 궁금해하고 걱정하며, 엄마가 날 입양해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나는 내 딸을 안았지만, 동시에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함께 안지 못한 수많은 아이들을 떠올리곤 한다.
가끔 멍하게 영상을 보다 보면, 내 딸이 보육 시설로 갔다면 어떨까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에게 입양되지 않았다면, 딸은 다른 가정에 입양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긴 하지만 말이다. 그냥 그런 망상에 빠질 때가 있다.
일찍 자지 않는 것, 아침에 일찍 못 일어나는 것, 식탐이 많은 것, 지나치게 활동량이 많은 것, 목소리가 큰 것, 계속 책을 읽어달라고 보채는 것 등이 모두 쉽게 용납되지 못했을 것이다. 내 딸은 보육원에서 자라기엔, 너무 자유롭고, 시끄럽고, 먹고 싶은 게 많고, 너무 많이 먹고, 남을 귀찮게 굴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그 많은 규칙을 견딜 수 있는 아이가 아니다. 딸이 우리에게 입양되어 우리 집에서 자랄 수 있어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보육원에서 자라기에 적합한 아이가 있을까?그럴 리 없다.
아이의 입양이 1년째이던 날, 복지사님이 방문하셔서 함께 식사를 했다. 음식을 주문을 해두고, 바깥 마당에서 노는 남편과 아이를 보면서 복지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멀리 운전해 오느라 수고하셨다는 말에,
"아이들이 이렇게 가정에서 자라는 일, 그게 감사하죠."
라고 답했던, 복지사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당연히 검증과 절차를 거쳐야겠지만, 입양을 마음먹는 가정이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은 늘 거기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아이는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는 생각, 한 아이라도 더 가정에서 크길 바라는 마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언젠가 입양을 결정하게 되는 것도 참 좋겠다. 또 한 명의 아이가 가정에서 자라는 일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