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에게는 많은 친구들이 있다. 우린 그 아줌마들을 대체로 '이모'라고 부른다. 나에게도 많은 '이모'들이 있다. 그중엔 내가 태어날 때부터 본 이모들도 많고, 가족과 진배없는 이모들도 있다. 딸이어서인지 나는 이모들과 엄마 사이에 껴서 자주 함께 다녔다. 이모들이 맛있는 회를 먹을 때면 회를 좋아하는 나를 잘 데리고 다녔다. 결혼을 하지 않은 이모들이나 아들만 키우는 이모들은 특히 나를 데리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 이모들을 만나는 횟수는 급격하게 줄었다. 주말에 친정에 가서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는 이모들의 안부를 묻곤 했다. 어떤 이모는 갑자기 암이 걸렸다 낫기도 했고, 어떤 이모는 자식 문제로 속을 썩기도 했다. 어떤 이모는 여전히 눈치 없이 굴다 이모들에게 미움을 샀다. 예전처럼 자주 보진 못했지만, 이모들은 내 어린 시절을 모두 아는 가족 같은 사람들이었다.
엄마가 어느 날은 나에게 갓 낳았을 때의 아기 사진은 없느냐고 물었다. 입양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선보기가 시작되었을 쯤이었다. 선보기 하러 가서 찍은 아기 사진은 100일이 넘은 모습뿐이었다. 그보다 더 어릴 때의 사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엄마, 그건 뭐하게? 아마 입양 절차는 다 끝나야 받을 텐데?"
"아니, 카톡 프로필에도 이때쯤엔 애기가 태어났다고 올려야지."
엄마의 대답을 들은 나는 순간 엄마의 말이 한순간에 이해됐다. 엄마는 지인들에게 입양을 밝히지 않을 생각이었다. 처음부터 공개입양을 하지 않을 거면 입양을 아예 하지 말라던 엄마의 단호했던 목소리와 상반되는 지금의 엄마를 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엄마의 답변은 이랬다.
'아이에게 입양을 공개하는 것이지, 지인들에게 입양을 굳이 공개할 이유는 없다. 특히 나이 든 아줌마들 중에는 입양을 곱지 않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자주 볼 것도 아닌데, 굳이 거기까지 밝혀서 남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이유는 없다.'
하긴 나도 동네방네 떠들건 아니지만 엄마가 절친이라 할만한 이모들에게는 입양을 밝힐 줄 알았다. 듣고보니 나도 엄마의 말도 맞는 것 같아 그러시라고 하고 말았다. 아기 사진은 없지만, 뭐 알아서 하시라고. 뭐 엄마의 친구들에게까지 공개하는 건 엄마의 몫이니까.
한참 뒤, 아이가 집에 오고, 휴직을 한 나는 조금 더 자주 엄마를 만났다. 엄마도 손녀를 보고 싶어 자주 우리 집을 찾았다. 엄마와 대화 중 주변 사람 이 자신이 고아원 출신이라는 걸 내내 숨겨온 게 다른 사람들에게 들통나는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기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타며 엄마 이야기를 슬렁슬렁 듣던 나는 그 이야기에 민감해졌다. 막상 입양을 하면, 고아 이야기가 이제 남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엄마, 나는 그 아줌마가 고아원 출신인 게 문제인 것 같진 않아. 그건 그 아줌마의 잘못이 아니니까. 그게 욕먹을 일은 아니지. 절대. 욕을 먹어야 한다면 굳이 사람들에게 그걸 숨긴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 숨기려면 다른 거짓말들을 지어내야만 했었을 테니까. 그게 그 아줌마를 못 믿을 사람으로 만든 거라고 생각해. 처음부터 그 아줌마가 고아원 출신이었다고 먼저 밝혔다면, 그게 욕먹을 일일까? 육십이 넘은 나이에?"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아이의 공개 입양에 대한 내 입장도 말하게 됐다. 그땐 주절주절 말했던 것 같은데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자신의 정체성에 당당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 입양을 지인에게까지 밝히는 건, 그 사람이 알아야 할 권리가 있어서라기보단 내 아이에게 내가 먼저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이다. 당당하게 먼저 밝히면, 남들이 뒤에서 쑥덕거릴 여지가 줄어든다. 숨기려고 하다 보면, 입양이 남들에게도 떳떳지 못하게 여겨지고, 치부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아이 앞에서 내가 먼저 당당해야 아이가 그걸 보고 당당해질 수 있다. 입양은 칭찬받을 일이 아니듯이 나의 잘못도 아이의 잘못도 아니다.'
거실 바닥에 누워 우유를 먹고 있는 아이를 쳐다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감정이 좀 격해졌던 것 같다. 갑자기 내 아이에게 상황이 대입되니, 이야기가 진지해졌다.
"난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못하다면, 그걸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까지가 내 몫이라고 생각해. 단 한 명이라도. 내 새끼가 장애인이면 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애쓸 거고, 내 새끼가 동성애자라면 난 동성애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도록 애쓸 거야, 엄마.
'인식이 그러니 어쩔 수 없지'하고 나도 숨을 순 없잖아. 내 새끼가 그걸 다 감당하고 살아야 하는데. 근데 내 새끼가 입양되었으니까, 난 입양을 위해서 뭐든 해야 해, 엄마. 그게 부모니까."
그날 엄마가 내 말에 어떤 반응을 보였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혼자 돌도 안된 아기를 안고 하루를 보내다 보면 별 생각이 다 든다. 아이를 보면서 혼자 입양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을 때였다. 그래서 나는 그때쯤 내가 생각해왔던 말들을 엄마에게 쏟아냈다.
몇 주 뒤, 엄마와 다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가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oo이모랑, xx이모한테 너 입양했다고 말했다."
"안 한다더니?"
"그냥 했어. 저번 주에 밥 먹으면서."
"뭐래?"
"뭐 굳이 말 안 해도 되는데, 말해줘서 고맙다더라."
"그래?"
그러고도 한참 동안이나 나는 엄마가 왜 갑자기 이모들에게 입양을 공개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엄마에게 했던 그 말들이 기억났다. 나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입양'이라는 이슈 앞에 당당히 서겠다는 나의 다짐이 엄마에겐 어떻게 들렸을까?
여전히 엄마의 주변 사람들 중에는 나의 입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그러하듯 엄마도 모두에게 입양을 알려야 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알아야 할 일은 아니다. 당연하다. 하지만 가족처럼 지내는 엄마의 절친들에게 엄마가 입양 사실을 먼저 밝혔다는 사실은 나에게 힘이 되었다. 엄마가 나에게 굳이 그 말을 전한 건 나도 너의 편의 서겠다, 너를 지지한다는 말로 들렸다. 역시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엄마는 든든한 내 편이다. 나도 아이에게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