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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Aug 22. 2022

28. 지켜진 아이, 맞습니다.

  어떤 상황이건 입양이 되었다는 건, 친생부모가 아기를 키우기 적합하지 않은 상황에서 임신하고 출산하였음을 의미한다. 누구나 알고 있든,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이 아이를 원하지 않으면 출산 전 아이를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가족들이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 강하게 이 방법을 강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태어난 아기가 여성의 미래를 발목 잡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적합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면, 당신은 그 아기를 출산할까? 당신의 가족이 키우지 못할 아이를 출산하는 일을 지지할까? 우리가 통계 낼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여성들이 자의, 타의로 보다 쉬운 방법을 택한다.

  어떤 사람들은 키우지도 못할 아이를 낳는 건 무책임하다고 말한다. 정말인가? 물론 피임을 제대로 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어른의 모습일 것이다. 그렇지만, 벌어질 일은 벌어지고야 만다. 그땐 어떤 것이 책임감 있는 것일까? 그들은 책임감 있게 아이를 지운 것인가? 아님 자신의 실수나 잘못으로 생긴 생명을 뒤탈 없이 해결한 것은 아닌가. 그게 정말 아이를 위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버려진 아이는 처음부터 태어날 기회를 얻지 못한 아이다. 아이를 임신한 10달을 버티고, 배 아파 낳는 일은 아이를 버리는 엄마가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 결코 아니다. 주변의 임산부들을 보라. 결코 쉽지 않다. 그 과정에서 학업이나 직장을 중단 혹은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친생모들은 그런 불이익을 모두 감수하고 출산을 결심한 사람들이다.

  내 딸의 친생모도 끝까지 아이를 지켰다. 태어난 아이를 키우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생명을 놓지 않았다. 임신 과정에서의 괴로움, 출산의 고통을 모두 견뎌냈다. 아이를 지우라는 가족들의 강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들의 애정 어린 조언과 충고에도 생명을 선택했다. 그 과정이 쉬웠겠는가. 말 그대로 그녀는 내 딸을 살려냈다. 지켜냈다. 그리고, 안전하게 아이를 키워낼 수 있는 좋은 환경으로 보낼 방법까지 찾아냈다. 그녀가 엄마가 아니었다면 이 모든 일이 가능했을까. 그녀가 내 딸을 버린 게 맞는가.

  우리 부부는 입양 과정에서 센터에 남긴 친생모의 수많은 자료를 보았다. 그녀가 입양센터에 남긴 흔적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친생부모의 키, 몸무게, 생김새, 가족 병력, 학력, 직업 등을 포함해, 입양 결정 당시의 상황, 심지어 임신 시 먹고 싶었던 음식, 태몽까지 모두 적혀 있었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무엇을 버리기도 하는가.

   입양 센터를 통해 입양 특례법으로 입양되는 대상 아동들은 모두 출생 신고가 되어있다. 아이를 입양 보내려면 친생모가 먼저 출생 신고를 해야 한다. 1년에 가까운 입양 절차가 마무리되고서야 아이는 입양 부모의 등본으로 옮겨간다. 그런 일은 흔치 않겠지만, 만약 아이가 파양 된다면 아이는 출생신고 시 등본으로 다시 복귀하게 되어있다. 입양을 보낼 친생모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제로 입양 특례법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다.) 지금 현실에서 입양 특례법을 통한 입양이 친생부모 입장에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수밖에 없기에 친생부모들은 아기의 미래를 위해 모든 걸 감수하고서라도 이 방법을 선택한다. 내 딸의 친모도 마찬가지였다.

   친생부모를 떠나 입양아만을 놓고 생각해보아도 '버렸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걔네 엄마가 걔 버린 거잖아요!"라고 소리치는 아이에게 교사는 오만 원짜리 지폐를 건네며 질문한다.

  "내가 심부름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 너 이 돈 쓰레기통에 버리고 올래?"

  "돈이잖아요. 왜 버려요."

  "내 돈이니까, 내 맘이지."

  "그래도 돈을 왜 버려요. 싫어요. 저 주세요. 그럴 거면."

  교사가 성큼성큼 걸어가 쓰레기통에 돈을 넣는다. 아이들이 모두 놀라 소리를 지른다.

  "자, 이제 쓰레기통에 버렸으니까, 이 돈은 쓰레기일까?"

  "아니요."

  "겨우 오만 원짜리도 버릴 수 없고, 버린다고 그 가치가 없어지는 게 아닌데 아기는 어떨까?"

  "......."

  아기는 버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정말 그 친생부모가 그렇게 생각했다고 쳐도 아기의 가치는 조금도 훼손되지 않는다. 당연한 게 아닌가?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입양아가 친생모에서 '버려졌다'라고 표현한다. 버려진 아이라고 아이는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끊임없이 놀림을 받는다. 주변 어른들의 딱한 눈빛을 견딘다.

   "야, 우리 엄마가 그러던데, 너 친엄마가 너 버렸다며? 얘랑 놀지 말자. 얼레리 꼴레리."

   "그래서 왜 애를 버렸대? 쯧쯧."

   "지새끼 버리고 어떻게 사냐? 독해. 독해."

  입양의 시작을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버렸다'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쓴다. 대체로 상황이 안타까워하는 말이거나 친생부모를 비난하고자 하는 말이지만 사실 이게 입양아들에게 가장 상처가 되는 말이다. 그 표현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치로운 것을 버리지않는다. 입양아는 그 단어에서 무엇을 느낄까? '버린다'는 단어는 아이와 어울려 쓸 수 있는 단어가 절대 아니다. 꼭 비슷한 표현을 써야 할 순간이 있다면, '포기했다.'가 그나마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키울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에 대한 친권을 포기하며, 아이가 좋은 가정에 입양되길 부탁한 것이니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또래 엄마들의 임신, 출산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난 속으로 딸의 친생모를 떠올린다. 쉽지 않았을 여정을 해내겠다 마음먹고, 그 시간을 버텨낸 그녀의 단단한 모성애가 느껴지는 것 같다. 자신의 아이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최선의 환경을 주려고 알아보고, 편치 않은 절차들이 있었음에도 입양 센터를 선택한 그녀에게 감사를 보낸다. 그 순간, 그녀는 분명 강인한 엄마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난 '엄마'의 자리 한 켠을 기꺼이 그녀를 위해 내놓겠다. 아이의 엄마가 '둘'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키우겠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절대 아이에게 줄 수 없었던 생명을 그녀가 내 딸에게 주었으므로.


*중간 소개된 지폐 일화는 입양단체에서 진행하는 입양인식개선 교육의 부분입니다.

*양부모가 친생부모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은 입양자녀의 자존감에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뿌리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부정적으로 인식한 아이가 건강한 정서를 갖고 성장하기 힘들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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