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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Aug 18. 2022

23. 대체로 엄마이긴 한데 가끔은 엄마가 아닌.

  딸을 위탁하면서 나는 대체로 엄마이긴 한데 가끔은 엄마가 아닌 사람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이미 딸의 엄마였지만, 딸의 이름도 그때는 법적으로 친생모가 지어준 이름 그대로라 내가 부르는 이름과 달랐다. 위탁 기간 동안 나는 부모가 아닌 위탁모로서 아이의 상황을 항상 복지사님께 말씀드렸다. 분유량이나 수면의 질, 발달상황들도 주기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해 보냈다. 말 그대로 우리는 아기를 위탁하여 양육하고 있는 가정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딸의 일은 무엇이든 우리 마음대로 정할 수 없었다. 만약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다쳐 수술이 필요했다면 우리는 당연히 센터와 먼저 의논해야 했을 것이다. 우리에겐 수술을 결정할 권리가 없었다. 병원비도 우리가 아닌 센터에서 지불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부모와는 분명 달랐다. 복지사님께 설명을 들어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아기를 데려와 키우면 그만이지 뭐가 다를까 싶었다. 처음엔 위탁이라는 개념이 우리에겐 법적 결정이 나기 전에 빨리 딸을 데려올 수 있는 방법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았다. 어떤 형식으로든 빨리 데려올 수 있다면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입양 전제 위탁’에는 여러가지의 장단점이 있다. 가장 큰 장점은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말할 것도 없다. 입양이 완료되기까지 아이는 계속 자란다. 신생아 입양의 경우, 백일 가량 첫 선보기를 한 아기들은 입양이 종료될 때쯤엔 돌에 가까워진다. 그 사이 아기가 크는 모습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아이와 빨리 가족이 되어 살 수 있다는 것은 입양부모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일이다.

  또, 위탁 기간 동안에는 복지사님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다. 딸은 출산에 이벤트가 약간 있어, 돌이 넘어서까지 대학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었다. 그때마다 복지사님이 항상 동행해 주셨다. 위탁 전의 아이 상태에 대해 우리가 정확히 알고 있지 않기도 했고, 당시에는 아이가 위탁 아동이니까 센터에서 복지사님이 출장 나와 함께 진료를 보는 게 당연했나보다. 물론 진료비도 센터에서 지출하셨다.(그게 아직은 우리가 부모가 아니라고 꼬집어 말하는 것 같아 그때는 돈 못내는 것도 그렇게 아쉬웠다. 하하.)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순 있지만 그 시절 아직 부모로서 초보인 우리에게 언제나 기꺼이 의논해주는 상대가 있다는 건 큰 위안이 되었던 듯싶다. 병원 대기실에서 복지사님을 만나면 어찌나 반갑던지. 대기하는 동안 아이의 일상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보고였던 셈인데도 그땐 그리 신났다. 내 아이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사람. 뭐든 물으면 알아봐주고 또 알려주는 사람이었으니까. 막상 위탁 기간이 끝나고 처음 우리끼리만 대학병원에 갔을 때의 알 수 없는 허전함이란. 이제 정말 우리끼리 다 해내야 한다는 게 실감되면서 복지사님이 그리웠었던 기억이 있다.

  또다른 장점으로는 위탁 명목의 지원금과 지원 물품이 나온다는 점이다. 정확히 금액을 밝히긴 그렇지만, 일반 위탁 가정만큼은 아니라고 했지만 일정 금액이 나왔다. 기저귀도 한 달에 쓰기엔 부족하지만 매달 규칙적으로 일부가 배송되었다. 만약 일반 위탁 가정이라면 그 금액이 절대 넉넉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많은 정성 뿐 아니라 돈도 들어가니까. 하지만 사실 입양을 전제로 한 위탁 가정이라 내 아이를 키우는 데 돈까지 준다고 생각해 솔직히 처음엔 좋았다. 돈 싫다는 사람이 어딨겠는가. 하지만 위탁이 계속 되면서 곧 그 돈의 대가가 ‘이 아이는 아직 네 아이가 아니다, 언제든 내놓으라면 내놓아야 한다.’라는 전제하에 지급되는 것이라는 걸 알고부터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그걸 깨닫고 나면 그때부턴 돈이고 뭐고 빨리 입양 절차가 끝나고 우리 등본에 아이가 오르길 바라게 된다.

  입양 전제 위탁의 단점이라면 아까 말했듯이 우리에게 아이에 대한 권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미 내마음은 부모인데 법적으론 그렇지 못하다. 그러다보니 무기력함을 느끼는 순간이 가끔 있다. 보건소에서 예방 주사를 맞히는 순간에도 우린 아이의 법적 보호자가 아니었다. 복지사님의 도움과 잦은 연락은 다른 시선으로 보면 우리가 여전히 딸의 부모가 아니라는 점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과 같았다. 이런 것쯤이야 조금만 마음을 긍정적으로 먹으면 괜찮다. 가장 큰 단점은 언제든 입양이 취소되거나 기각되면 아이를 센터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딸의 친생모가 입양을 포기하고 양육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바로 아이를 센터로 돌려보내야만 했다. 법원에서 입양이 기각되어도 마찬가지였다. 이 점이 나를 가장 불안하게 했다. 입양 부모들에게는 이것이 모든 장점을 무너뜨리는 단점이다. 위탁 기간동안 돈을 받아도 빨리 입양이 마무리되길 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그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지만, 내게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카페 글을 보면 간간히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 친지나 가족들에게 모두 인사를 시키고, 특히 형제가 있는 경우 큰 아이가 동생을 이미 마음으로 받아들였는데 다시 아기를 돌려보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하는 것이다. 어른인 양부모로서도 아이와 헤어지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형제인 자녀들에게 이 상황을 이해시키기란 쉽지 않다. 이미 내 동생이라고 받아들였는데 다시 돌려보낸다는 게 어린 아이에게 이해가 될 리 없지 않을까. 물론 친생부모가 아이를 키우겠다고 뒤늦게라도 마음 먹는 일은 입양 대상인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친생부모와 살 수 있는 일이므로 마냥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키우고 있던 입양부모 입장에서는 날벼락같은 일일 수밖에 없다. 나도 법원 결정 후 도청에 신고를 하고 등본 서류를 받아들고서야 마음을 놓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입양 부모 입장에서야 아이가 드디어 내 아이가 되었다는 안도의 순간이였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친생부모와의 끈을 끊어내는 순간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걸 생각하고보니, 마냥 좋아 웃었던 게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위탁 기간은 가정에 따라, 법원의 처리 속도에 따라, 절차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대체로는 6개월 정도 소요된다. 우리 부부는 4개월 만에 종국인용(법원에서 입양을 허가했다는 뜻)되었다. 우리 가정의 경우 가사조사관과의 면담이나 판사 면담이 없이 바로 종국인용이 되어 매우 빠른 편에 속했다. 인터넷 카페의 글들을 보면 때때로 법원의 서류 검토 기간이 길거나, 가사 조사관의 면담 일정이 늦게 잡히거나, 심리 검사를 다시 받기를 요구 받는 등의 절차상 문제가 생겨 위탁 기간이 1년 가까이 되기도 했다.

  우리 회사에서는 임신을 한 직원이 출산일이 가까워지면 출산휴가를 먼저 내고 쉬다가 아이를 낳은 후에 회사로 떡을 보냈다. 나도 다른 직원들의 출산떡을 자주 얻어 먹었다. 나는 위탁 기간이 모두 끝나고, 휴직을 육아휴직으로 전환하면서 그제야 직장에 떡을 돌렸다. 나는 여전히 휴직중이기도 했고 구구절절 설명하기에도 애매했으니, 자세히 모르는 분들은 진작에 입양을 해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서 왜 뒤늦게 갑작스레 떡을 돌리나 의아해했지도 모르겠다. 이제와 답하자면, 그때쯤이 내딸이 우리 등본에 이름을 올렸을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감사히도 내 위탁은 무사히 입양으로 마무리되었다. 그 감사한 순간을 내 동료들과 꼭 함께 하고 싶었다. 솔직히 이전에 출산떡을 먹을 때면 나도 그렇게 떡이 돌리고 싶었더랬다. 하하하. 돈이 아깝지 않단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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