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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Sep 18. 2022

아빠의 이야기도 시즌2가 있었으면 좋겠어

항상 앉아 있던 그 자리

아빠 생각을 하면 아빠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올라.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가죽이 닳고 밀린 아빠 자리. 


원래 우리 아빠 워낙 부지런해서 오랫동안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퇴근하고 와서도 정원 가꾸시고, 나중에는 목공까지 배우시고. 정원 일이든 목공 일이든 한 번 시작하면 저녁 먹으라고 불러도 멈출 줄 몰라서 엄마한테 매번 잔소리 들었잖아. 처음 몸이 이상한 걸 감지한 것도 목공 때문이었지. 목공 작업할 때 자꾸 왼쪽 손에 힘이 안 들어간다고.


아빠가 직접 만들었던 소파 테이블 그리고 아빠가 늘 앉아 있던 자리


차츰 몸에 힘이 빠지시면서 그렇게 정성들여 만들어 놓은 정원도 못 돌보시고 목공도 못하시고 점점 소파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아빠를 보며 슬펐어. 가만히 소파에 앉아 말라가는 아빠의 모습이 너무 고요해서 더 슬펐어. 아빠는 어떻게 그렇게 의연했어? 살고 싶다고 울고불고 매달리지도 않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원망하지도 않고, 점점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줄어 들어가는 나날들을 어떻게 그렇게 담담히 받아들였어?


소파에는 아직도 아빠의 고요한 시간들이 쌓여 있어. 가끔 혼자 집에 있는 날이면 빈 소파 자리 위에 그 시간들이 햇살과 함께 반들반들하게 빛나는 게 느껴져. 아빠와 함께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을 수 있었던 날들이 그리워. 함께 정원을 내다보기도 하고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고. 우리 늘 보던 텔레비전 루틴이 있었잖아. 아침에 일어나면 뉴스 보고, 저녁이 되면 <세계테마기행>이랑 <한국기행> 보고, 가끔 좋아하는 드라마 하는 날에는 채널 돌려서 드라마도 보고. 참, 우리가 중간쯤까지 같이 봤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끝이 났어. 인기가 좋아서 시즌2도 찍을 예정이래.


아빠의 이야기도 시즌2가 있어? 아마 난 알 수 없겠지. 시즌1이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었는걸. 아빠가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걸 알았을 때 난 그래도 최소한 우리에게 남은 이야기가 16부작은 될 줄 알았어. 그런데 6화도 안 된 전개 부분에서 갑자기 이야기가 끝난 느낌이야. 물론 소파에 앉아 있는 아빠 숨소리가 점점 가빠지고, 앉아 있는 시간보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질 때 짐작은 했었지. 아빠랑 같이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날들조차 어쩌면 곧 끝날 수도 있겠다는 걸.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다 끝날 줄은 몰랐어.


무엇보다 그렇게 아빠의 이야기에 엔딩크레딧이 올라갔는데도 나의 이야기는 이렇게 태연하게 이어질 줄은 정말 몰랐어. 아빠 없이도 가을이 오고, 추석이 지나가고, 셋이 앉던 소파에 엄마랑 둘이 앉아 새로운 드라마도 보고...


아빠, 그러니까 아빠의 이야기도 시즌2가 있었으면 좋겠어. 아빠 없이도 내 이야기는 이어지듯 나 없이도 어디선가 아빠의 이야기가 다시 행복하게 이어졌으면 좋겠어. 천국이든 극락이든 좋고, 환생도 좋고, 하늘의 별이 되는 것도 좋고,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도 다 좋아. 그냥 아빠의 존재가 어떤 방식으로든 고통 없이 이어졌으면 좋겠어. 이렇게 끝나기에는 아빠는 너무 멋진 주인공이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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