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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소밥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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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은 PainterEUN Oct 26. 2022

수수한 우거짓국

삶의 무게


엄마는 큰언니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급여가 끊겨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가셨다. 

작은 공기를 잡고 얇게 깔린 쌀을 담기 위해 쌀독을 기울여 싸악 싹 쌀독 바닥을 긁을 때면 엄마의 마음도 함께 할퀴어지는 것 같아서 쌀 한 알 한 알을 손가락으로 찍어 꺼내기도 하셨다고 한다. 

이 내일을 살 희망이었던 여느 날, 큰아버지께서 집에 방문하신다는 갑작스러운 연락에 내갈 찬이 없어 고심하던 엄마는 어린 딸을 업고 시장에 가셨다. 시장을 둘러보아도 무엇을 살 여력이 되지 않아 하염없이 시장을 돌고 돌던 엄마는 시장 한 편에 버려져 있는 우거지를 보고 발이 묶인 듯 서서 바닥에 있는 우거지를 주워 모아 팔지 많이 고민하셨다고. 엄마는 우거지를 볼 때면 늘 그때가 떠오르신다고 한다.


날씨가 쌀쌀해진 어느 날 엄마와 바닷가를 한 바퀴 거닐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 가장자리 공터에 우거지가 쌓여있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다.

엄마는 예전 생각이 나셔서 그랬는지 우거지 더미에서 눈을 떼지 못하셨다. 머뭇거리다 걸음을 내딛는데 멀지 않은 곳에 맞은편 집 할머니께서 길가에 나와계셨다. 아는 분이신지 엄마는 할머니께 인사를 건네셨다. 

“아이고 우찌 지냈는교?” “내사 마 맨날 아프지 뭐. 딸내미가?” 나를 흘긋 돌아보며 할머니께서 물으셨다. 

엄마는 내 등을 쓰다듬으시며 말하셨다. “예. 막내딸내미입니다.”  “안녕하세요.” 내 볼은 추위로 경직되어 있었지만, 최대한 무해한 미소를 띠며 인사드렸다. 지금 나의 인상이 엄마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우리가 있던 곳이 큰 외삼촌 댁과 멀지 않은 곳이라 곧 두 분은 큰 외삼촌과 숙모의 이야기로 넘어갔고 할머니와 엄마의 다른 형제, 자녀의 안위를 나누고서 엄마는 못내 미련이 남았던 공터에 있는 우거지에 관해 물으셨다. 

“얼마 전 마을 회관에서 김장할라꼬 배추 샀는데 겉잎은 상품 가치가 떨어져서 떼어 낸 거 아이가.” 

공식적으로 버려진 우거지! 엄마는 확인차 가져가도 되냐 물으셨고 상관없다는 기분 좋은 답이 돌아왔다. 발걸음이 가벼워진 엄마는 할머니께 담아갈 봉투를 부탁드렸다.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선물 세트 가방을 받았지만, 버려진 우거지를 아까워하던 차였기에 손잡이가 없어도 어떠하랴, 담아지기만 하면 되는 거지 싶어 우리는 호재라도 만난 양 꺄르륵 꺄르륵거리며 우거지를 주워 담았다.


흩어져 있는 우거지를 줍느라 엄마와 떨어진 내 곁에 조금 전 엄마와 반갑게 인사하던 할머니께서 슬쩍 다가오시더니 말을 거셨다.

"아나? 너거 엄마 얼마나 *뚝쟁이인지."

"네?" 놀란 표정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자, 할머니는 갑자기 소리치듯 말하셨다. 

“너거 엄마 뚝쟁이다. 뚝쟁이.”

(*사전적 의미와 다르게 주머니를 잘 열지 않는 사람을 뜻합니다. ex. 구두쇠)


느닷없이 엄마의 험담인 듯 아닌 듯 묘한 뒷말을 들은 나는 예상치 못한 인물에게서 전후 맥락 없이 별안간 물싸대기를 한 바가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순간 날아든 부모를 깎아내리는 할머니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뭐라 대응하지도 못했다.


내가 대나무 숲도 아닌데 할머니는 왜 내게 그런 말을 했을까. 이건 앞에서 한 말이라기엔 너무 무례하고 뒷말이라기엔 상대를 잘못 고른 느낌이었다.


엄마와 나는 집으로 돌아오며 그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지만, 나는 엄마의 마음이 염려되었다. 그 말을 그저 듣고 있었던 엄마의 마음이. 엄마가 가여웠다.


우리는 이곳으로 이사 온 후 집을 몇 번 고치고 새로 지었다. 집이 낙후되어(기와집+재래식 화장실) 허물고 새로 지은 적도 있지만, 생계를 위해 가게를 차리느라, 장사가 기울어 업종을 변경하느라 용도에 맞춰 건물을 고치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은 그게 큰 부의 축적으로 보였는지 당시엔 동네 돈을 이 집에서 다 벌어간다고 시샘하는 이웃도 많았다. 부자라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암암리에 번졌는지 사람들은 엄마의 씀씀이에 관해 관심이 많았다. 뭘 사는지, 뭘 입는지, 뭘 먹는지.

세간의 이목과 다르게 엄마는 대부분 시간을 공사 진행으로 진 빚을 달고 사느라 편히 잠들지 못하고 내내 골머리를 앓으셨다. 엄마 미간에 새겨진 내천(川) 자는 그날들의 기록이다. 엄마는 큰 소비를 하지 않으셨고, 일하는 날을 줄이거나 영업시간을 단축하거나, 가게를 비우는 일도 없으셨다. 외출은 하나로 마트가 다였던 그런 그녀의 검소하고 부지런한 모습을 되려 돈밖에 모른다, 돈독이 올랐다는 모습으로 해석되는 상황을 뒤늦게 전해 듣게 될 때, 엄마의 모멸감을 씻어줄 수 없어 속이 문드러지는 것 같았다. 마을 회관에 가서 묻지도 않은 집 사정을 방송이라도 해야 하나. 눈앞에 그런 상황이 펼쳐질 때라도 되바라지게 바락바락 받아쳐야 하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여전히 고민이 많다.


구태여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보자면.

우리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외부 사람. 발 없이 퍼진 소문을 사실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동네 할머니께선 길가에 버려진 우거지도 가져가겠다고 줍고 있는 우리를 보시기엔 억척스러워 보였을 수도 있으리라. 할머니의 그 생각(엄마=뚝쟁이)은 더 굳건해져 이윽고 그것을 내게 토해내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드셨는지는 모르겠다. 그 마음을 정확히 읽을 순 없겠지만. 긴 세월 동안 변하지 않는 사람들 뇌리에 박힌 인식이 엄마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다치게 하는 걸 볼 때마다 어려웠던 시절을 건너며 절약이 제 몸처럼 된 엄마가 나는 마음 아프기만 한데, 그걸 흉으로 보는 인심이 못내 야속하다.


발 없는 말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오랜 시간 오명에도 가장으로 열심히 살아온 그녀 덕분에 우리는 바르게 자라날 수 있었다. 그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살았고 경험한 나는, 세상에서 그녀를 가장 존경하며 사랑한다.


타인의 시선이 어쨌든 길에 버려진 우거지를 줍는 것은 실로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다.

바다에서 다슬기를 줍는 마음과 가까웠기에 오히려 재밌었다. 놀이와 보상이 결합한 퀘스트를 수행하는 마음이랄까.

어쩌면 나의 이 마음은 실로 가난하지 않았기에 생기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아마 엄마의 마음도 그러했으리라 짐작된다.

시장에서 발길이 묶였던 그때와 달리 웃으며 우거지를 주울 수 있었던 건 말이다.


산책을 돌아온 우리는 부수적인 재료를 넣지 않고 된장을 푼 맛국물에 우거지를 넣고 푹 끓여 먹었다.

나는 수수한 모습의 우거짓국이 마치 엄마의 검소함과 닮은 듯해 엄마에게 감사함과 엄마가 책임지고자 했던 삶의 무게를 느꼈다.


매운 걸 먹은 것도 아닌데 코끝이 시큰거렸다.



Painter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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